[관음] 한국의 관음성지 양양 낙산사

의상은 관음의 진용眞容을 원효는 관음의 화신化身을 보았다

2021-09-30     배금란

2.7일의 재계(齋戒)를 마친 의상(義湘)은 넘실대는 파도 위로 좌구(坐具)를 띄웠다. 결사의 각오로 그 위에 몸을 던지니 홀연히 천·룡 등 팔부신중이 나타나 의상을 굴로 인도했다. 하늘 우러러 엄숙히 예배할 때 허공 법신이 수정 염주 한 꾸러미를 건넸다. 동해의 용은 여의보주를 바쳤다. 다시 7일을 재계하니 마침내 관음보살이 장엄한 진용(眞容)을 나투었다. 보살은 의상에게 “산정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 땅에 불전(佛殿)을 지으라”고 계시했다. 과연 대나무가 땅에서 솟아 나왔다. 의상이 그 자리에 금당을 짓고 상(像)을 빚어 두 보주(寶珠)와 함께 모시니 대나무가 사라졌다. 그리하여 그곳이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이 사는 곳임을 알았다. 

동해 양양의 해안가가 관음보살 상주 성지인 ‘낙산(洛山)’으로 증험 되는 순간이다. 신라 시대의 성사(聖師) 의상의 수행과 자내증(自內證, 스스로 체득한 깨달음)을 통해서다. 고려 시대의 선승 일연(一然)은 낙산사 창건과 관련된 의상의 이와 같은 행적을 『삼국유사』 「낙산 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이하 「낙산 이대성」) 조에 신화적 필치로 생생히 기술하고 있다. 또 원효, 범일, 조신 등 당대의 고승들을 매개로 창출된 영험 설화들을 종합해 함께 수록한다. 이를 통해 낙산사가 우리 민중의 신앙 속에서 어떠한 의미와 상징성을 담보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낙산사 해수관음상. 관음보살이 사는 곳은 해안가 또는 해도(海島)의 산굴(山窟)로, 백화(白花)가 만발한 정토라는 의미의 ‘보타락가산(potalaka)’으로 불린다. 낙산은 이의 줄임말이다.

관음보살은 재난 구제, 자녀 출산, 삼독(三毒) 해탈, 정토왕생 등 세간·출세간의 원력은 물론, 삶과 죽음의 영역을 아우르는 실질적인 구호자로 동아시아 대승불교권에서 가장 대중적인 존숭을 받아온 신성이다. 대표적 소의 경전인 『법화경』 「보문품」에는 관음보살이 33가지 ‘화신(化身)’을 나투어 중생을 구호한다고 설하고 있다. 33은 구제의 대상이 되는 삼계육도(三界六道)의 모든 중생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숫자이다. 다양한 근기(根機)에 상응하는 양태로 몸을 나투어 일체의 유정(有情)을 제도하는 관음보살의 위신력을 나타낸다. 

『화엄경』 「입법계품」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살면서 교화하는 관음보살 ‘진신(眞身)’의 관념을 부각한다. 관음보살이 사는 곳은 해안가 또는 해도(海島)의 산굴(山窟)로, 백화(白花)가 만발한 정토라는 의미의 ‘보타락가산(potalaka)’으로 불린다. 낙산은 이의 줄임말이다. 선지식을 찾아 남순(南巡) 하던 선재 동자가 관음보살의 진신을 만나 대비행을 배운 곳이다. 이를 바탕으로 인도 및 동아시아 지역 해안가에 실제로 관음보살이 산다고 믿는 성지들이 건립됐다. 그 원형이 『대당서역기』에 현장(玄奘)이 직접 방문했다고 기록한, 인도 남부 말라야산(秣刺耶山) 동쪽에 있다는 보타락가산이다. 그리고 의상에게 연원을 둔 우리 땅 동해의 낙산사는 화엄법계관(華嚴法界觀)을 바탕으로 건립된 동아시아 최초의 관음성지라는 데 의미가 있다. 

낙산사 의상대.

 

관음보살의 진신과 화신 

관음보살이 ‘현신(現身)’을 통해 중생을 구호한다는 관념은 동아시아 불교 전통에서 다양한 영험 설화가 창출될 수 있었던 기반이다. 관음보살 화신의 도움으로 각종 재난과 위기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삼국유사』에도 여러 사례가 실려 있다.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三身) 체계로 정립된 대승불교 불신관(佛身觀)에서 화신은 근기가 낮은 범부(凡夫)의 인식에 감각되는 몸이다. 이에 비해 진신은 법신과 보신을 포괄한 개념으로, 특정 경지에 오른 수행자가 정진과 삼매를 통해 감득(感得)하는 불·보살의 몸이다. 

『삼국유사』의 「낙산 이대성」 조를 관통하는 모티프 역시 관음보살의 진신과 화신 관념이다. 의상은 진신을 친견함으로써 우리 땅 양양의 해안가가 관음보살이 사는 정토임을 증험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보살의 진용을 친견하는 의상의 모습에 보타락가산에서 관음보살을 만나 설법을 듣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 동자의 이미지가 투영돼 있다는 점이다. 용·천 등 팔부신중, 수정 염주, 여의보주 등의 신화적 메타포는 「입법계품」에 묘사된 보타락가산의 이미지와 중첩된다. 이를 통해 선재가 나아갔던 보타락가산과 의상이 관음 진신을 친견했던 양양 해변이 동일한 화엄 정토이자 백화도량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징성은 「낙산 이대성」 조의 세 번째 이야기인 범일의 기사를 통해 더욱 부각된다. 신라 하대의 선승인 범일(梵日)은 당대에 쇠락해진 낙산사를 새롭게 중창하면서 정취(正趣) 보살을 봉안한다. 정취 보살은 「입법계품」에서 선재 동자를 만나기 위해 관음보살의 성지인 보타락가산으로 비천(飛遷)해 오는 신성이다. 범일이 정취 보살을 봉안한 것도 이러한 서사에 기인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낙산사는 선재 또는 의상으로 상징되는 화엄행자가 견처(見處)를 따라 관음, 정취 두 대성을 알현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보타락가산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해안 절벽에 자리한 홍련암. 

의상의 진신 친견 기사에 이어지는 서사는 원효가 신라 기층민의 모습으로 나툰 두 명의 관음 화신을 만났다는 이야기이다. 진용을 친견할 목적으로 낙산으로 향하던 도중에 원효는 벼를 베고 있는 백의(白衣)의 여인을 만난다. 원효가 희롱하며 그녀에게 벼를 달라고 하니 여인은 ‘벼가 아직 영글지 않았다’고 응수한다. 다음으로 월수백(月水帛, 생리대)을 빠는 여인을 만나 마실 물을 청하자 여인은 빨래하던 물을 건넨다. 원효가 이를 부정하게 여겨 쏟아버리니 불현듯 청조(靑鳥)가 나타나 ‘제호(醍醐, 천상의 맛)를 마다했다’며 힐난한다. 청조가 앉았던 소나무 아래에 신 한 짝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것과 쌍을 이루는 나머지 한 짝이 낙산사 관음상 아래에서 발견되고, 이를 통해 원효는 노상에서 만났던 두 여인이 낙산사 관음보살의 화신임을 깨닫는다. 

이야기 속에서 희화화된 원효의 모습과 기사 말미에 ‘진용을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언급이 있어 얼핏 원효가 진신을 만나는 데 실패했다는 서사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의상의 진신 친견 기사와 연동해 원효는 우리 민중의 모습으로 나툰 관음보살의 화신을 매개하는 역할로 등장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발의 모티프를 통해 확인되듯 진신과 화신을 체용(體用) 구조로 배치해 낙산 관음보살의 진신이 벼를 베고 빨래를 빠는 범속한 신라인으로 화현(化現)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의상-진신’, ‘원효-화신’의 모티프로 관음보살의 공능(功能)이 우리 민중의 삶 속에 발현되는 메커니즘을 제시하고 있다. 철저한 화엄행자였던 의상이 삼매를 통해 진신을 감득함으로써 우리 땅 동해변이 곧 관음 정토임을 증험하였다면, 대중 교화의 선봉자였던 원효는 친숙한 우리 이웃의 모습으로 나툰 관음보살 화신의 증명 법사로 요청됐다고 하겠다. 

또 자신이 흠모했던 여인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살면서 가난과 질병으로 처절한 고초를 겪는 꿈을 꾼 후 세속적 욕망의 허망함을 깨닫게 되는 승려 조신의 이야기도 역시 낙산사 관음보살의 영험에 대한 것이다. 조신이 꿈에서 결혼했던 여인은 다름 아닌 관음보살의 화신이다. 그리고 고려 시대 인물인 걸승(乞升)을 매개로 관음과 정취 두 대성(大聖)이 봉안된 전각이 화재를 면하고, 전란(戰亂)에서 상실될 위기에 처했던 낙산사의 보주를 지켜냈다는 일화도 재난 구제자로서 관음보살의 위신력을 부각하고 있다. 동시에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 동안 부침해온 낙산사의 역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홍련암 법당 내부. 

 

‘현실 정토’이자 화엄 연화장세계

낙산 관음성지의 건립은 이 땅을 불교적으로 수식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노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불교 전래 이후 신라국토는 과거불이 전법(傳法)했던 성지로 서축(西竺)인 인도와 대응하여 동축(東竺)으로 상정되기도 했고, 선덕여왕릉이 위치한 왕경의 낭산은 제석이 주재하는 도리천으로 비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담론들은 불교의 수미산 우주관을 바탕으로 신라 왕경을 그 중심에 위치시키려는 사유를 보여준다. 

이에 비해 낙산 관음성지는 화엄법계관을 토대로 신라국토가 그 자체로 이사(理事)와 사사(事事)가 무애(無碍)한 화엄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낙산사는 경설이나 신화 속에 제시된 관념적 경계가 아니라 신라국토라는 사법계(事法界) 내에 존재하는 ‘현실 정토’가 된다. 의상의 자내증을 기반으로 신라 동북방 변지(邊地)인 양양의 해안가가 불·보살이 상주하는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일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함으로써 기왕의 왕경 중심의 불국토관을 극복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화엄교학에 대한 투철한 이해를 바탕으로 신라 본위의 관음신앙을 구축함으로써, 관음보살은 이방(異邦)이나 서방(西方), 혹은 머나먼 천계(天界)의 신격(神格)이 아닌 이 땅 본연의 부르면 즉각 응답하는 내 곁의 신성으로 수용되고 있다. 또 더불어 살아가는 벗이나 범속한 이웃이 관음보살의 화신일 수 있다는 믿음을 정초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당대까지 전승돼온 우리 민족 공동체의 신앙기억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하여 관음성지로서 낙산사의 위상을 고취하고, 이 땅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하며 대비(大悲)로 우리 민중을 구호하는 관음보살의 현존성과 역동성을 상기시키고 있다.  

 

배금란
서울대 종교학박사. 현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대표 연구로 「신라 관음신앙 연구: 관음성현의 구조와 기능을 중심으로」, 「산중불교의 새로운 가능성: 불교문화상품의 포교적 의미와 기능」, 「한국불교에서 여성을 ‘보살’로 호칭하는 문화원형에 대한 시론」, 저서로 『전라북도의 종교와 신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