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 한국의 관음성지, 강화 보문사

민중 염원 품은 계단 관세음보살에 닿기를

2021-09-30     허진

강화도 서쪽 석모도 낙가산에 있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도량이다. 신라 선덕여왕 4년, 회정 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이곳에 와서 절을 창건했다.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남해의 섬 이름을 따서 산 이름을 낙가산으로 짓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광대무변한 원력을 상징해서 절 이름을 보문사로 지었다.

4년 전까지만 해도 석모도에 들어가려면 강화도 외포리에서 배를 타야 했다. 지금은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가 개통돼 접근이 더 쉬워졌다. 배를 타고 이동하며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는 재미는 없어졌지만, 여전히 차창 밖으로 바다를 보며 탁 트인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석모대교에서 15분가량 달려 보문사에 도착했다. 주차장 관리인에게 도량을 둘러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묻자, 대답 대신 생수 한 병 사갈 것을 권한다. 

입구부터 바로 시작되는 가파른 경사에 숨이 막혔다. 그리 넓지 않은 도량임에도 입구에서 법당까지 길이 멀게 느껴진다. 생수로 목을 축이며 천천히 도량을 둘러봤다. 보문사에서 나한전 역할을 한다는 석실은 천연 동굴 안에 감실을 설치해 22나한상을 모시고 있었다. 여기에는 보문사 창건 전설도 전해진다. 한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사람 모양의 22개 돌덩이가 그물에 걸리자 이를 버렸는데, 꿈에 노승이 나타나 어부가 버린 돌을 다시 건져 명산에 봉안해주기를 당부했다. 어부는 노승의 당부에 따라 돌덩이를 건져 현재 낙가산 보문사 석굴에 안치해 모셨고, 큰 부자가 됐다. 관음성지 보문사가 나한도량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유다.

보문사가 관음도량임을 상징하는 마애관음좌상은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 아래 새겨져 있다. 배선주 주지스님이 금강산 표훈사의 이화응 주지스님과 함께 새긴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대한 상이란다. 도량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이 마애관음좌상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 푯말을 따라 가파른 계단을 30분 정도 올라야만 만날 수 있다. 내 마음이 관세음보살에 닿기를 간절히 바라며 수많은 사람이 오르내렸을 돌계단, 민중의 애환과 염원을 오롯이 품고 있을 돌계단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30분 정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보문사 마애관음. 놓치는 곳 없이 세상을 굽어살피겠다는 듯, 아득하게 펼쳐진 서해바다를 한눈팔지 않고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모진 오르막길에 숨이 넘어갈 즈음 비로소 마애관음보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생 가장 가까이에서 중생을 보살피는 보살답게 정감 가는 투박한 외모다. 관음은 마치 놓치는 곳 하나 없이 세상을 굽어살피겠다는 듯, 망망한 하늘 아래 아득하게 펼쳐진 서해바다를 한눈팔지 않고 지긋이 내려다본다. 그 앞에는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마다의 소망을 품은 발걸음은 해질녘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삶이 팍팍해질수록 성찰의 시간은 더욱 소중해진다. 필자도 기도하는 이들과 마음을 함께 했다. 붉은 노을이 관음보살의 미소가 되어 경내를 비췄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