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 관세음보살 그리고 6관음과 33관음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나투실까 천백억화신 관세음보살

2021-09-30     목경찬

다양한 모습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불단 위의 관세음보살을 보면, 전체 모습은 여자인 듯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대부분 수염이 있다. 그렇다면 남자일까? 관세음보살을 남자라고도 여자라고도 단정할 수 없다. 관세음보살은 어떤 경우에는 여자의 모습으로, 어떤 경우에는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 외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무진의보살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어떻게 이 사바세계에 다니며, 어떻게 중생을 위해 설법하며, 방편의 힘은 그 일이 어떠합니까?” 

부처님이 무진의보살에게 말했다. 

“선남자야, 만약 어떤 국토의 중생이 있는데, 부처님의 몸으로써 제도할 이에게는 관세음보살은 곧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벽지불의 몸으로써 제도할 이에게는 벽지불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이하 축약) 성문·범천왕·제석천·자재천·대자재천·천대장군·비사문·소왕·장자·거사·관리·바라문·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장자의 부인·거사의 부인·관리의 부인·바라문의 부인·동남·동녀·하늘·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등 인비인(人非人)의 몸으로써 제도할 이에게는 곧 모두 그 몸을 나타내어 설법한다. 집금강신으로써 제도할 이에게는 곧 집금강신을 나타내어 설법한다. 무진의야, 이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공덕을 성취하여 갖가지 형상으로 여러 국토에 다니며,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한다.”

-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중에서

관세음보살이 중생 제도를 위해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모습을 ‘응신(應身)’이라고 한다. 중생이 원하는 바에 따라 응(應)하여 나타나는 몸[身]이라는 뜻이다.

금동십일면관음보살좌상(부산시지정문화재 제154호). 부산대박물관 제공.

 

자비와 방편의 관음보살 응신

독송할 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라고 읊조린다.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을 삼신불(三身佛)이라고 한다. 화신은 응신, 응화신이라고도 한다.

법신은 진리 그 자체[법(法)]의 부처님이다. 보신은 수행의 결과로 이루게 된[보(報)] 부처님이다. 화신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나타난[화(化)] 부처님이다.

진리 그 자체인 법신불은 번뇌 망상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다. 청정한 진리 그 자체이다. 그래서 청정법신이다. 수행을 통해 이룬 보신불은 부처님의 공덕을 하나도 빠짐없이 원만하게 갖춘다. 그래서 원만보신이다. 중생의 이해와 요구는 너무도 다양하다. 한두 분의 부처님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힘들어서 수많은 부처님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천백억화신이다.

삼신불은 별도의 부처님이 아니다. 한 부처님을 어떤 측면에서 보는가에 따라 법신, 보신, 화신이 된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예로 들어보자. 싯다르타 태자가 수행을 통해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진리와 하나가 됐다는 측면에서는 법신불이다. 싯다르타 태자로서는 수행의 결과로 부처님이 되었으니 보신불이다. 중생으로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그렇게 오신 모습을 보여주셨으니 화신불이다.

한편, 『대승기신론』에는 어느 정도 수행이 된 보살의 마음에 보이는 부처님을 보신이라 한다. 보살은 진여법(眞如法)이라는 참된 이치를 깊게 믿어 원만한 공덕을 간직한 부처님의 모습을 조금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지에 이르지 못한 범부에게 보이는 부처님을 응신(화신)이라 한다. 범부는 바깥 모습에 빠져 부처님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범부에게 나타나는 부처님은 응신(화신)이다. 진리 그 자체인 법신불은 중생에게 나타날 수 없다. 법신불은 모든 분별과 언어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습을 나타내어 분별과 언어로써 가르침을 주지 않으면 중생을 제도할 수 없다.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각 중생에 적당한 방편을 펼쳐야 한다. 그분이 바로 응신이다. 부처님뿐만 아니라 보살도 응신으로 나타나 중생을 제도한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방편으로 제도하고자 다양한 모습인 응신으로 나타난다. 보통 6관음 또는 7관음, 32응신 또는 33응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중생은 어리석고 어리석은지라 곁에 함께하는 관세음보살의 응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자기가 생각하는 관세음보살만 관세음보살인 줄 알고, 다른 모습의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인 줄 모른다.

낙산사를 참배한 사람이 보타전에 모신 7관음과 관음보살 32응신을 지나치는 경우와 같다고나 할까. 낙산사 참배자 대부분이 보타전을 그냥 지나치거나 삼배만 하고 법당을 나온다. 보타전 중앙 불단에는 7관음이 자리하고, 불단 뒤에는 1500관음, 32응신이 자리한다. 32응신은 부처님, 하늘신, 스님, 어린아이 등의 모습이다.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 대한불교조계종무위사 제공. 
33관음 중 백의관음은 비구 또는 비구니의 몸으로 중생을 제도한다.

육도 중생 제도하는 6관음

수나라 천태 대사(538~597)가 설한 『마하지관』에는 여섯 분의 관음, 6관음이 등장한다. 6관음은 각각 육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그 특색을 나타낸다. 대비관세음은 지옥, 대자관세음은 아귀, 사자무외관세음은 축생, 대광보조관세음은 아수라, 천인장부관세음은 인간, 대범심원관세음은 하늘의 장애를 없애고 그들을 제도한다.

『마하지관』에 등장하는 6관음은 이후 밀교에 등장하는 6관음으로 바뀐다. 그 변화는 몇 차례 걸쳐서 일어난다. 마침내 성관음, 천수관음, 마두관음, 십일면관음, 불공견삭관음, 여의륜관음으로 정리된다. 불공견삭관음 대신 준지관음을 포함하기도 한다. 불공견삭관음과 준지관음을 모두 포함하면 7관음이다. 6관음 또는 7관음의 특색은 설명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법당마다 조성한 6관음의 모습 또한 조금씩 차이가 난다.

성관음보살은 6관음의 중심 보살이다. 일반적으로 일컫는 관음보살이 바로 성관음보살이다. 하얀 몸에, 연꽃을 든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있다. 천수관음보살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중생을 제도한다. 성관음은 지옥, 천수관음은 아귀를 제도한다. 또는 반대로 성관음은 아귀, 천수관음은 지옥을 제도한다. 마두관음보살은 3면(혹은 4면)의 얼굴에 자비의 방편으로 분노의 모습이다. 머리 위에는 말머리상이 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위신력과 정진력이 힘차게 달리는 말과 같음을 나타낸다. 축생을 제도한다. 십일면관음보살은 본래 얼굴을 포함해(또는 제외하고) 11개의 얼굴을 지닌다. 정상부의 한 얼굴은 아미타부처님의 모습이다. 아수라를 제도한다. 불공견삭관음은 1면4비(1개의 얼굴과 4개의 팔), 3면4비, 3면6비, 10면8비, 11면32비 등 다양한 모습에 견삭(올가미, 고대 인도의 무기)을 지닌다. 준지관음보살은 준제관음이라고 한다. 준지는 청정을 뜻하는 말이다. 인간을 제도한다. 여의륜관음은 한 손에는 여의보주, 다른 한 손에는 법륜을 들고 있다. 삼매 속에 머물러 법의 수레바퀴를 굴림으로써 중생을 교화하고 힘을 주며 지혜를 베푼다. 천신을 제도한다.

6관음이 육도 중생을 각각 제도하지만, 그렇다고 각각 해당하는 중생만 제도하는 것은 아니다. 여의륜관음이 육도 중생을 모두 제도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6관음과 육도를 연결하는 것은 어느 중생도 빠뜨리지 않고 제도하겠다는 관세음보살의 서원을 분명하게 나타내고자 함이다. 불보살님의 자비와 지혜 광명이 비추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도갑사 삼십이관음응신도 모사본. 도갑사 성보박물관 제공.
관세음보살은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방편으로 제도하고자 다양한 모습인 응신으로 나타난다.

 

중생 따라 다른 모습, 관음보살 33응신

현재 우리나라에는 33관음도량 순례 여정이 있다. 관음보살 33응신에 맞춘 숫자다. 그런데 경전에서 관음 응신과 관련해 33이라는 숫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능엄경』에는 32응신이 등장한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중심으로 하는 관음신앙에서 주로 33응신을 말한다. 하지만 『법화경』에도 33이라는 숫자는 없다. 부처님, 벽지불 등 33분의 관음 응신이 등장한다고 볼 뿐이다.

그런데 『법화경』에 등장하는 한 분 한 분을 헤아려보면, 관음 응신은 33분이 아니라 34분이 되기도 한다. 경전에서 언급하는 인비인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 인비인은 글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아닌 이’, 또는 ‘사람인 듯 사람 아닌’으로 풀이된다. 이 풀이에 따라 관음 응신은 33분, 34분, 35분까지도 간다. ‘인비인 등’에서 ‘등’을 부각하면 35분 이상의 응신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33이라고 할까. ‘3’이라는 숫자의 상징성 때문으로 보인다. 예부터 3이라는 숫자는 완전하고 성스러움을 의미했다. 10이라는 숫자도 완전함을 의미한다. 33이라는 숫자는 완전하고 성스러움을 의미하는 숫자들이 겹쳐 있다. 그래서 모든 형상, 모든 존재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활용된다. 33분 이상의 응신이라도 33이라는 숫자로 정리하는 이유다.

이때 33은 단순하게 33이라는 숫자에 그치지 않는다. 33응신이라고 해도, 관음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나타나는 모습은 33가지에 그치지 않고 ‘천백억화신’처럼 헤아릴 수 없다.

석굴암 본존불 뒷벽 십일면관음보살상(국보 제24호). 양병주 제공.
6관음 중 십일면관음보살은 본래 얼굴을 포함해(또는 제외하고) 
11개의 얼굴을 지닌다. 아수라를 제도한다.

 

우리 이야기 속 33관음보살

의상 스님의 낙산사 창건 설화가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에 묘사돼 있고, 중국에서 보덕낭자로 나타난 마랑부관음보살 이야기가 우리나라 금강산 보덕암으로 이어진다.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불단 뒷벽에는 백의관음이 자리한다. 수월관음, 마랑부관음, 백의관음처럼 우리 이야기에 등장하는 관음을 모아서 33관음보살이라 한다. 이러한 33관음보살의 명칭과 형상을 최초로 나타낸 책은 『불상도휘』(1783년 일본 간행)다. 33관음보살은 경전 밖 우리 이야기지만,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등의 내용과 연결 짓는다.

양류관음은 자비의 화신으로 애욕을 없애주고, 용두관음은 천, 용, 야차 등을 제도하고, 원광관음은 빛이나 불을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하고, 유희관음은 금강산처럼 높은 곳에서 떨어지더라도 상하지 않게 구원한다. 농견관음은 불에 떨어져도 불구덩이가 연못으로 변하게 하고, 시약관음은 허공에 뜬 해처럼 자비로 항상 우리를 보살펴 몸과 마음의 병을 제거한다. 어람관음은 바다에서 악귀나 나찰을 만났을 때 우리를 보살펴 주고, 다라존관음은 원수로부터 보호해 준다. 암호관음은 독한 벌레나 뱀으로부터, 연명관음은 저주와 주문으로부터, 능정관음은 배가 표류를 했을 때, 쇄수관음은 물에 떠내려갈 때, 아뇩관음은 독용과 잡귀신들로부터 구원해 준다. 일여관음은 무서운 우박과 큰비의 어려움에서 보호해 준다.

지경관음은 성문의 몸으로, 백의관음은 비구 또는 비구니의 몸으로, 연화관음은 소왕의 몸으로 제도한다. 수월관음은 벽지불의 몸으로, 일엽관음은 재관의 몸으로, 청경관음은 부처님의 몸으로, 위덕관음은 천대장군의 몸으로, 중보관음은 장자의 몸으로 제도한다. 아마제관음은 비사문의 몸으로, 엽의관음은 제석천의 몸으로, 유리관음은 자재천의 몸으로 제도한다. 합리관음은 보살의 몸으로, 육시관음은 거사의 몸으로, 보비관음은 대자재천의 몸으로, 마랑부관음은 부녀의 몸으로, 합장관음은 바라문의 몸으로 제도한다. 불이관음은 집금강신의 몸으로, 지련관음은 동남동녀의 몸으로 제도한다.

『불상도휘(佛像圖彙)』 내 33관음 삽화. 원각사 성보박물관 제공. 33관음보살은 인도 기원 관음보살이 가장 많지만, 중국, 한국, 일본의 관음신앙에도 등장한다. 각 지역의 이야기가 관음신앙과 결합해 새로운 관음 응신으로 중생에게 자비를 베푼 결과이다.

이러한 33관음보살은 인도 기원의 관음보살이 가장 많지만, 중국, 한국, 일본의 관음신앙에도 등장한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각 지역의 이야기가 관음신앙과 결합해 새로운 관음 응신으로 중생에게 자비를 베푼 결과이다.

관음보살의 자비가 이 시대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며 33관음보살을 법당에 모시기도 한다. 서울 관문사 옥불보전이 그렇다. 33관음보살은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우리를 제도하실까. 곁에 오신 관음보살을 알아 뵙고 가르침을 잘 따라야 할 터인데. 

 

목경찬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유식불교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국역경원 번역사업에 참여했으며, 현재 여러 불교대학에서 불교 교리 및 불교 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논문으로는 「성유식론에서 식의 상호관계연구」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유식불교의 이해』, 『연기법으로 읽는 불교』, 『대승기신론 입문』, 『정토, 이야기로 보다』, 『관음신앙, 33개의 나침반』, 『지장보살, 원력에 스며들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