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 한국의 관음성지, 남해 보리암

신화와 역사가 깃들다

2021-09-30     김남수
신화와 역사가 머문 곳, 남해 앞바다.

보리암은 전설이 많은 곳이다. 중국 진시황제의 아들 부소(扶蘇)가 왔다 해 부소암이 있으니 2,000년이 넘은 이야기다. 또, 원효 스님이 낙산사를 거닐다 만난 두 여인이 관음보살의 현신인지 미처 알지 못하다가 보리암에서 친견했다. 원효 스님이 절을 짓고 보광사라 이름했고, 뒷산은 보광산이 됐다. 1,500년 전의 이야기다. 태조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해 조선을 개국했다. 은혜에 보답하고자 이름을 남겼으니 산 이름이 비로소 금산(錦山)으로 불리게 됐다. 이 역시 600년이 넘었다.

진시황 아들 부소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부소암(扶蘇岩).
남해의 쪽빛 바다는 보리암의 마당이 되어 기암 절벽과 어우러진다.

관음포

보리암이 위치한 남해는 역사가 있는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산화(散華)한 노량해전이 남해 바닷가에서 벌어진 전투이니, 충무공의 피와 뼈가 묻힌 곳이다.  

고려 시대 몽골이 한반도를 휩쓸고 있을 때, 남해에서는 팔만대장경이 판각되고 있었다. 고려를 지키고자 했던 스님들과 민초들의 염원이 있는 곳이다.  고려말에는 정지 장군이 남해에서 고려에 침입한 왜구를 크게 무찌르니 고려말 왜구를 무찌른 대첩 중의 하나로 꼽힌다.

위 사건이 일어난 곳이 지금은 관음포(觀音浦)라 불린다. 보리암을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의 하나로 치고 있으니, 관음포라는 지명이 예사롭지 않다. 

석불전. 이름난 기도 도량에는 굴이 있다. 
파사석탑.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기도 도량 

바닷가에 위치한 관음보살을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 한다. 해수관음은 뱃일을 업으로 하는 어부와 뱃사람들의 의지처였다. 뱃사람들에게 등대를 대신한 것이 북두칠성이다.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보고 항로를 파악했을 것이다. 보리암에는 특이하게도 남반부에서 잘 보이는 남극의 노인성(老人星)을 신앙하는 간성각(看星閣)이 있다. 우리나라 남쪽에서만 정월에 관찰되는 별자리다. 희유하기에 기도처가 됐을 듯하다. 

보리암의 뒷산, 금산은 바위마다 이름이 붙어있다. 상사암, 부소암 등 곳곳에 기도터였음 직한 바위들이 즐비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산에 들러 기도를 올렸을까? 관음보살과 산신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도에 응답해줬을까?

남해 역사를 지켜본 관음보살님, 우리 기도에 응답해주세요. 

뭇 중생들의 안위를 보살피는 해수관음보살.
산신탱화.
산령각으로 현판이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