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 그곳에 가면 나한이 있다

신의 집과 인간의 집, 화려함과 단순함의 경계

2021-08-30     조정식
돌계단을 오르는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은 국보 제14호 거조사 영산전. 앞면 7칸,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에서 봤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한국 절들은 대부분 경관이 수려한 깊은 산중에 있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되었던 초기에는 도심지에 자리했으며, 경주 황룡사나 불국사와 같이 본존불을 모신 금당과 탑을 회랑으로 둘러싸는 정형화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통일신라의 후기부터 선종이 유행하게 되면서 점차 수행과 예불을 위한 산지가람이 한국 사찰의 전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부석사나 화엄사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산지가람의 경우, 기나긴 진입로를 지나서 경내로 진입하면 자연적인 지세에 맞도록 기단을 쌓고 많은 불전이 적절히 자리 잡은 것을 보게 된다. 일견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크고 작은 전각들에 의해서  하나의 완성된 세계가 조성되어 있다.

한국의 전통사찰은 본존불을 모신 주불전(대웅전, 대웅보전, 대적광전, 무량수전 등)을 중심으로 많은 부불전이 어우러져 있는데, 각각의 전각들은 거기에 모셔진 불보살의 성격에 부합하는 명칭이 붙어있다. 그런데 각 전각에 걸려있는 현판은 일반인들은 읽기조차 어려운 한자로 쓰여 있을 뿐더러 같은 불상을 모셔도 사찰에 따라서 전각의 명칭이 다른 때가 있어서 혼란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관음전(원통전), 미륵전(용화전). 영산전(팔상전) 등이 그러하다. 그 밖에도 약사전, 대장전, 조사전이 있으며 민간신앙을 흡수하면서 산신각, 삼성각, 독성각 등 불교와는 무관한 전각까지 있다. 이쯤 되면 유명한 사찰에 평생 몇 번 정도 갈까 말까 한 일반인들에게 사찰의 전각명칭은 고도의 암호와 같이 여겨질 수밖에 없을 정도이다. 전통사찰이 한국문화의 정수라고 말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개략적인 전각의 명칭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이상과 같이 많은 전각 중에서 나한전(또는 응진전)은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제자인 아라한 또는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에 대한 종교적 정의는 불교학의 영역이기 때문에 건축학도인 필자는 전통사찰의 다양한 전각 중에서 나한을 모신 전각, 즉 나한전이 갖는 건축적 특징에 한정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쌍계사 나한전

나한전은 깨달음을 얻은 ‘인간의 집’이다. 따라서 여기에 구사된 건물 외관은 대부분이 소박한 건축기법이 적용되어있다. 지붕은 대부분 맞배지붕이며, 단청은 소박한 금단청 또는 모로단청이고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도록 처리한 연등 천장이다. 나한전에 닫집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도량 안에 높은 빈도로 분포한 나한전

오래전이지만 필자는 국내 사찰 25개소의 전각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중에서 주불전을 제외한 부불전의 분포상황을 보면 명부전(지장전)은 25건으로 모든 사찰에 건립되어 있으며, 그다음으로 나한전(응진전)이 16건으로 많고, 팔상전(영산전)이 14건, 관음전(원통전) 12건의 빈도로 나타났다. 그 밖에도 약사전 6건, 미륵전(용화전) 4건의 빈도로 분포하고 있었다. 이 내용은 한국의 모든 사찰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조사 대상 사찰을 넓히더라도 비율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명부전이 25개소의 모든 대상 사찰에 건립되어 있으며 그다음으로 나한전이 16개소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 두 종류의 전각은 숭배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생과 직접적으로 연관성을 갖는다. 즉 명부전은 인간의 사후세계를 관장하고 나한전은 현생에서 인간이 깨달음을 얻으면 보살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두 개의 불전이 많은 사찰에 있는 이유가 포교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깨달음을 얻은 인간의 집, 즉 나한전은 한국의 사찰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나한전에 모셔진 오백나한상의 얼굴을 보면 신적인 존재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인간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2018년에 공개된 영월 창령사 터의 나한상을 보고 우리가 열광한 이유는 그야말로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신의 경지에 도달한 초월적 존재조차도 해학적으로 다루는 한국적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겠지만, 과연 이런 불상들이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나한전이라는 건물은 부처와 여래를 모신 주요 전각과 달리 외관이나 내부공간이 ‘각자(覺者)의 집’이라는 의미에 어울리도록 지어졌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나한전의 건축적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약사전이나 관음전 등 다른 전각들과 비교하는 일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한국의 전통건축에서 건물의 중요도는 건물의 크기, 지붕 형태, 공포, 단청, 내부공간 등의 차이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사찰에서 주불전은 그 사찰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규모도 크고 공포나 단청이 화려하고 내부의 장엄 또한 극적인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비해 다양한 부불전들은 외관이나 내부공간의 구성이 주불전보다 격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분명히 나한전은 깨달음을 얻은 ‘인간의 집’이다. 따라서 건물 외관은 대부분 소박한 건축기법이 적용되어있다. 예를 들어 지붕은 대부분 맞배지붕이며 공포는 주로 일반 민가에서 사용하는 익공식(翼工式, 새 날개 모양의 익공이라는 부재가 결구되어 만들어진 공포 유형)으로 처리되어 있다. 장식적인 면에서 보면 단청은 소박한 금단청 또는 모로단청(부재의 두 끝부분에만 하는 단조롭거나 화려하지 않은 단청)이고, 내부공간을 보더라도 천장은 내부에 서까래가 드러나는 연등 천장이고 나한전에 닫집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렇다면 사찰 내 다른 전각들은 어떤 모습일까. 나한전과 함께 부불전으로 분류되는 약사전이나 관음전의 경우, 외관은 물론 내부공간까지도 매우 화려하게 처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들 전각에 모신 부처와 여래의 상징적 내용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순천 송광사의 약사전은 전후 1칸 규모의 작은 건물이지만 지붕을 팔작지붕으로 하고 공포도 화려한 다포로 처리하여 건물의 격을 높이고 있다. 또 창녕 관룡사 약사전도 전후 1칸인데 사찰의 차분한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맞배지붕으로 구성했지만, 처마의 깊이를 깊게 하고 전각의 벽에는 벽화를 그려서 건물의 격을 높이고자 한 건축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선암사 원통전

선암사 원통전은 전실을 거쳐서 안으로 들어가도록 구성했으며 건물 내부는 관음불을 모시기 위한 독립된 방으로 꾸며져 있다.

 

성혈사 나한전

 

화엄사 원통전

 

송광사 약사전

송광사의 약사전은 전후 1칸 규모의 작은 건물이지만 지붕을 팔작지붕으로 하고 공포도 화려한 다포로 처리하여 건물의 격을 높이고 있다.

 

관룡사 약사전

 

흥국사 원통전

흥국사 원통전(관음전)은 사찰 규모에 비해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한국의 전통건축에서 이례적일 만큼 독특한 형태이다.

 

해인사 응진전

 

금산사 나한전

전통사찰에서 형태의 다양성이나 장식적인 화려함으로 불전의 위계가 높고 낮음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단지 불전에 모신 불보살의 상징성 및 신격에 부합하는 형태와 장엄의 차별성이 있을 뿐이다. ‘각자(覺者)를 모신 나한전’은 중생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노력에서 비롯된 성과물이다.

 

한편 여러 사찰에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원통전(관음전)은 특이한 모습을 한 경우가 많다. 전라남도 여수에 있는 흥국사 원통전(관음전)은 사찰 규모에 비해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한국의 전통건축에서 이례적일 만큼 독특한 형태이다. 또한 화엄사의 원통전은 내부를 화려한 닫집으로 장엄하고 있으며, 선암사의 경우는 전실(前室, 집채의 몸채 앞쪽에 있는 방)을 거쳐 원통전에 들어가도록 구성하고 건물 내부에는 관음불을 모시기 위한 독립된 방이 꾸며져 있다.

전통사찰에서 형태의 다양성이나 장식적인 화려함으로 불전의 위계가 높고 낮음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단지 불전에 모신 불보살의 상징성 및 신격에 부합하는 형태와 장엄의 차별성이 있을 뿐이다. ‘각자(覺者)를 모신 나한전’은 중생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노력에서 비롯된 성과물이다. 최근에 많은 사찰에서 행하는 불사를 보면 시공자들이 경쟁적으로 솜씨를 뽐내듯 과도하게 전각의 규모를 크게 하거나 사찰 전체의 구도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화려하게만 치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접근은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 

분명히 나한전은 건축적으로 소박한 전각이지만 그렇다고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된다. 나한전은 신의 집과 인간의 집, 화려함과 단순함의 경계에 있으며, 불교에서 말하는 ‘불이(不二)의 미(美)’가 진정으로 실현된 건축이다.  

‘각자(覺者)의 집’ 나한전에는 초월적 존재이자 중생에게 친숙한 나한이 모셔져 있다. 쌍계사 나한전에 봉안된 나한상. 

 

사진. 유동영

 

조정식
동국대 건축공학부 교수. 동국대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京都大)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위원이며 한국건축역사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대한건축학회에서 「경전속에 나타난 탑의 건축적 요소에 관한 연구」 로, 한국건축역사학회에서 「박자청의 궁궐건축 감역 연구」로 논문상을 공동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