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뿌리, 1600년 불교 그림이야기

부처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남간(南澗)김기혁 화백

2007-09-17     관리자

불교설화 (佛敎說畵)-1천 6백 여년 간 전해 내려온 우리의 불교 이야기를 수백 장의 그림에 담아온 남간(南澗) 김기혁 화백, 남간 화백이 우리 문화의 원류인 불교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쯤이 된다. 1600여년 동안 우리 민족의 정신원류가 되어 온 불교를 회화로 형상화하여 보여준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뿌리 찾기의 일환이 될 뿐만 아 니라 우리 문화의 원류를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쉬운 일 이 아니었다. 우선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고, 또 전래과정과 배경 등에 대해 제 대로 알지 않으면 그릴 수 없는 것들인데 광대하고 심오한 불교를 다 이해하고 그것을 그림 으로 그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우리 것을 찾다보니 불교와 만나게되었습니다. 1600여 년 전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되어 우 리 민족의 정신축이 되면서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던 것은 누구 나 아는 사실입니다. 하나의 종교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의 근저를 이루는 사상이었어 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것, 우리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고민을 하다가 그리게 된 것이 이 그림들이지요. 서양물질문명의 혼돈의 가치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의 혼 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호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동서양의 차이를 두지 말라며 그림을 그리는 재료도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봐요. 우리의 것은 우리 문화의 정서에 많은 재료를 통해 표현해야지요. 그리고 옛것을 그린다고 해서 모방이나 모사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돼요. 그림이란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그릴 수 있어야 해요. 역사적 사실을 그린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만 그리기보다 그것에 회화성이 있어야 해 요. 그것을 환상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어야 근사한 작품이 되는 것이지요. 불화도 마찬가지 예요. 이 시대의 우리의 표현으로 그려야 하는 것입니다."
팔상록(八相錄)을 중심으로 한 석가세존일대기(釋迦世尊一代記)를 30폭에 그리고, 육로와 해 로를 통해 동방에 전래된 불교의 전래설화 16폭, 동방의 고승과 명찰에 대한 설화 90폭, 그 리고 한국 중국 일본의 불교교류에 연유된 설화 39폭, 경주 남산 불국사와 석굴암에 얽힌 설화 35폭, 경주 남산 설화 25폭, 신생 감로도(新生甘露圖)와 세시풍속 감로도, 육도윤회 업 보설화 등 총 300여점에 이르는 불교 설화들은 작품 규모(100CmX110Cm~160CmX180Cm)도 모두가 대작들이다. 주로 삼국유사와 사적지 그리고 중국 한국 일본불교사와 등 관련 서적 들을 섭렵하며 그린 그림들이다. 발제(跋題)는 여초 김응현 선생이 12폭에 담았다.
1천 년 이상의 보존을 위해 일반 화선지 대신 백 퍼센트 순도의 순닥종이에 화산석 석채(石彩)로 바탕을 칠하고 그 위에 농채(濃彩)로 그려지는 남간 화백의 그림들은 그 작업만 하더 라도 일반 담채(淡彩) 그림 10배는 넘는 품을 들여야 하는 그림과정들이다. 불변의 안료 개 발에도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했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은 쇠가죽처럼 두껍고 질겨져 들기 도 힘들 정도의 무게가 된다.
불교 줄거리를 따라 완성된 이 작품들은 올 5월 부처님 오신날을 즈음하여 전시되고 도록으 로도 출판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시사정이 여의치 않아 여러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전 시장 규모만 하더라도 천 평은 되어야 하는 대규모의 진시인 데다가 수백 점의 대작들을 전 시하고 그것을 도록으로 펴낸다는 것은 개인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버거운 일이었다.
남간 화백은 이 그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그것이 우리의 뿌리를 이해하는 계기 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건이 주어져 테마미술관으로서 이 작품들이 전시될 수 있는 미 술관이 건립된다면 기꺼이 이 모든 작품들을 기증할 생각이다. 미술관은 우리의 불교문화가 응집된 천년고도인 경주에 세워졌으면 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도 특정장르의 미술 관이 없는 상황에서 '불교 설화미술관 건립이야말로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설화 이외에 원시에서 고조선에 이르는 원시설화(150여점 완성)와 단군에서 박혁거세에 이르는 기원설화(100여점 진행중), 그리고 각 도의 민간설화(현재 300여점 완성)를 그리고 있다. 이 중 서울 설화는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하여 조선일보에 그림이 연재되었고, 150여 접의 작품이 현재 서울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한때 영문학을 공부하고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고려대학교 영문학과 연구교수로 영어용례사전 등 20여권의 저서가 있음)영문학자였던 남간 화백은 어느 날 사표를 냈다. 16 년 전의 일이다. 재직시절 불란서 초대전을 가질 정도로 이미 그림을 인정받아온 터지만 직 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강단을 떠나 그림 그 리는 일만을 하기 시작한 그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미국 프랑 스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 작품전시회를 가졌고, 유럽순회 부부전(부인 藝亭 정숙희 화백과 함께)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1991년에는 프랑스 조형미술협회 창립 백주년 기념행사로 파 리 그랑빠레에서 대규모의 초대전도 가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명작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명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 한 것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을 두지는 않는다. 다만 그림을 그리는 그림쟁 이로서 그림을 그릴 뿐이며, 쟁이라는 것은 그저 끊임없이 창작을 시도하다가 마는 것이 아 니겠느냐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배운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그는 그림도 혼자 했다. 그러다 보니 외 골수라는 말도 자주 듣고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러나 오히려 남간화백은 제도권 밖에 서 그 자신만의 독특한 화도(畵道)를 걸을 수 있었다. 그림을 통해 가슴에 담고 있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기만 했 다.
방대하고 유구한 우리의 문화를 그림으로 그려간다는 것이 비록 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그림 을 통해 우리 문화의 원류를 형상화해가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해 갈 그의 화업(畵業)이다.
그것은 분명 전통미술의 현대화라는 이 시대의 당면과제를 푼 한 전형으로 불교미술사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사에도 커다란 족적이 될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굳건하게 걷는 이 시 대의 기인(奇人) 남간 화백, 그의 예도(藝道)에 힘찬 갈채를 보낸다.

*남간(南澗) 김기혁(金基赫)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으며, 16년 전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를 그 만두고, '우리 문화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커다란 테마를 가지고 우리의 원시설화에서부터 기원설화, 불교설화, 민간설화 등 수백 점의 그림을 화폭에 담아가고 있으며, 이 작품들을 한 곳에 두고 볼 수 있는 한국설화 종합미술관 건립의 원을 세우고 있다. 아울러 설화(說畵) 장르마다 도록으로 묶고, 영문과 한글로 해설을 덧붙이는 일도 함께 하고 있는 남간 화백은 지금까지 국내보다는 국외전을 더 많이 가졌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