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닿는 암자] 화강암 바윗덩이 미륵산 사자암

행복과 자유를 향해 열린 곳

2021-07-30     유동영

1993년 발굴조사에서 백제 와편과 함께 ‘지치 2년(至治二年) 사자사조와(師子寺造瓦)’라는 문구가 새겨진 고려시대 암막새가 발견되면서, 이곳이 틀림없는 백제 사자사 자리임을 확인해 주었다. 

겨우 동네 뒷산이나 될까 하는 430m 높이의 작은 산길이 어찌 암자에 다다르는 내내 돌덩이다. 마침내 암자 초입에 닿았을 땐 갈기를 휘날리는 흰 사자의 머리통이 불쑥 튕겨 나온다. 거대한 화강암 덩이다. 이제 보니 디디고 왔던 그 바윗덩이들은 사자의 꼬리이자 몸통에 지나지 않았다. 사자의 머리통 속에서 한 스님이 나온다. 

“한 스님이 내게 물었다. ‘사자암, 사자암 해서 찾아왔더니 사자는 보이지 않고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합니다.’ 밖에서는 개가 짖고 있었다. ‘눈은 없고 귀만 달랑 붙어 있어 그런 겁니다.’ ‘그럼 사자를 보여 주십시오.’ 내가 포효하듯 소리쳤다. ‘악!’” 
__ 향봉 스님의 책 『선문답』

포효하듯 할을 한 스님은 다름 아닌 사자암 향봉 스님이다. 

암자에 오르내리는 평일 3일 동안 미륵산 정상을 향해 가는 등산객들만 지날 뿐 법당에 드는 이를 보지 못했는데, 일요일 오전이 되니 울력을 위해 열댓 명의 불자들이 모였다. 거사들이 풀과 우거진 대나무를 베고 갈라진 계단 틈을 메우는 사이, 보살들은 법당을 청소하고 공양을 준비했다. 메뉴는 맛있는 카레였다. 일거리를 안내하는 스님의 목소리는 미륵산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이때만큼은 낯선 이들이 지날 때마다 사납게 짖어대던 큰 개 두 마리도 얌전히 앉아 있었다. 스님은 불자에게는 절을 받거나 인사를 차리지 않으나 불자가 아닌 고위직 공무원이 찾을 때는 다르다. 부처님과 스님에게 예를 갖추게 한다.

인도·티베트·네팔·중국 등에서 15년을 공부한 스님은 비로소 비우고 놓는 것을 알았다. 

“해인사에서 한 스님이 전화로 내게 물었다. ‘본래 한 물건도 몸과 마음에 지니지 
않았을 경우 어느 곳에 이르게 됩니까?’하여 내가 답하였다. ‘놓아버리십시오.’ 
‘한 물건도 지니지 않았는데 무얼 놓으라는 말씀입니까?’ ‘몸과 마음에 한 물건도 지니지 않았다는 그 생각마저도 놓아버려야지요.’”
 __  향봉 스님의 책 『선문답』 가운데 

스님은 자유로우니 행복하다. 평원에 솟은 미륵산을 중심으로 사방에 동네가 있다. 

미륵산 남쪽으로는 미륵사지가 있다. 

개는 시도 때도 없이 짖으나 사자의 포효는 때가 있었다.

내 죽어
따스한 봄바람으로 돌아오리니,
피고 지는 돌꽃무리 속에 돌아오리니,
아침에는 햇살처럼 저녁에는 달빛처럼
더러는 눈송이 되어 더러는 빗방울 되어,
__  향봉 스님의 시 ‘내 죽거든’ 중 셋째 연

미륵산 북쪽으로는 미륵산성이 있다.   

 

글·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