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거부하다” 금수저 천재의 인생 리와인드

월간 「불광」 8번째 원테마 ‘추사 김정희’ 발간 ‘해동의 유마거사’로서 삶 추적한 흥미로운 글

2021-07-26     최호승
월간 「불광」 8월호 '해동의 유마거사 추사 김정희' 표지.

신라 진흥왕은 새로 넓힌 영토를 직접 돌아보고 비석 4개를 세웠다. 순수비다. 현재까지 4개가 발견됐는데 북한산에도 1개가 있다. 등산을 즐기는 이를 제외하고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면,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 존재를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방치된 북한산비가 순수비라는 사실을 조선시대에 밝힌 이가 추사 김정희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추사는 성리학이 주류인 사회에서 금석학(동기·철기·석비·화폐·인장 등에 새겨진 명문을 연구하는 학문)과 고증학(형이상학적 지향성에 반대한 실증적 고전 연구의 학풍)에 몰두한 양반이었다.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시대의 주류와 거리를 두고 서얼 출신 박제가를 스승으로, 중인이던 이상적 등을 제자로, 천민 취급받던 스님과는 벗으로, 깊이 교유했다. 무엇보다 유교 사회에서 자신의 인생을 ‘불자(佛子)’라는 정체성으로 마무리했다. ‘해동의 유마거사’로 불리던 추사 김정희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월간 「불광」 8월호 내지.

불광미디어(대표 류지호) 불교 전문교양지 월간 「불광」이 틀을 거부한 금수저 천재 추사 김정희의 인생, 불교와의 고리를 리와인드 했다. ‘원 테마’ 중심 잡지 월간 「불광」 8월호(통권 562호)의 여덟 번째 원 테마는 ‘해동의 유마거사 추사 김정희’다.

이번 테마에서 월간 「불광」은 추사가 평생 추구한 실사구시에 주목했다. 추사의 실사구시 정신이 금석학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예술에서 불교적 세계관으로 실현됐다는 점에 무게를 뒀다. 글과 그림에 스며 있는 깊은 선기(禪氣), 불교를 향한 치열한 문제의식, 기피 계층이던 스님과 오랜 교유 등 유교 사회 속 불교를 살다간 추사의 연대기를 한 권에 담았다.

월간 「불광」 8월호 내지.

전국으로 문화답사를 다니는 노승대 작가가 직접 추사고택과 화암사를 다녀온 뒤, 추사 김정희 집안의 뿌리와 불교적 정서의 시작을 가늠할 수 있는 글로 이번 테마의 문을 열었다. 허홍범 추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20대에 연행길에서 만난 스승 완원과 옹방강이 추사의 학문과 예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폈고, 장승희 제주대 교수는 추사체의 특성 중 괴(怪)와 졸(拙)을 철학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은 해붕, 초의, 백파 스님 등 방외(方外)의 벗들과의 교유에서 추사의 불교적 세계관에 접근했다. 방외의 벗 가운데 백파 스님과 선 논쟁은 빼놓을 수 없다. 정병삼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폭넓은 식견으로 당시 조선 불교의 주류였던 간화선 수행을 두고 논박하던 추사와 백파 스님의 속마음을 헤아렸다.

월간 「불광」 8월호 내지.

순탄한 삶을 살던 추사에게 닥친 유배는 그의 평생의 공적을 쌓은 시기였다. 석한남 고문헌연구가는 “심심해서 쓰고, 화가 나서 쓰고, 쓰고 싶어 쓰고, 마음 달래려 쓰고” 또 쓰며 긴 유배 생활을 보낸 추사의 행적에서 <세한도>와 추사체의 비밀을 유추했다. 추사의 시에 깃든 불교적 사유는 임종욱 한문학자가 풀었고, 추사의 글과 그림에 담긴 불교적 세계관은 전상모 경기대 한국화·서예학과 초빙교수이자 한국서예학회장이 해석했다.

마지막으로, 죽기 며칠 전 봉은사에서 자화참회를 한 추사의 만년과 당시 추사의 심정, 편액 ‘판전’의 매력 등은 홍성민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가 흥미롭게 풀어냈다. 특히 추사고택과 화암사, 병풍바위의 각자들, <제북화북진도>, <세한도>, <불이선란>, <완당선생해천일립상>, <완당 김정희 초상> 등 전시회를 보는 듯한 다양한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월간 「불광」 8월호 내지. ‘불광초대석’ 운산 스님. 

테마 외 연재도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건강한 혼밥 한 그릇’에서 제철 식재료인 가지로 만드는 가지덮밥 레시피를 소개했고, ‘길이 감춘 암자’에서는 지리산 반야봉 묘향대를 다녀왔다. 시야가 확 트이는 풍광 속 치열하게 정진하는 스님을 만날 수 있다. 이번 달 ‘불광초대석’은 안동 왕모산 자락에 자리한 암자 삼소굴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사는 운산 스님을 만나 자비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