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계산서 따져 출가한 사업가 현안 스님

불광초대석 | '백만장자에서 출가자로' 청주 보산사 현안 스님

2021-07-22     최호승

상상해본다. 마당 넓은 집이 있고, 스포츠카 타고, 유럽에서 긴 휴가 보내고, 짧은 시간만 일하고 놀이를 즐기는 일상….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꿈같은 이야기? 아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젊은 여성 사업가가 그랬다. 부와 성공은 육신의 주림은 채웠지만, 마음의 허기는 채울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그에게 부와 성공은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그가 스승을 만나 수행하면서 점차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부터다. 그는 화려한 옷을 벗고 승복을 입었으며, 긴 머리카락을 깎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출가했다. 대체 왜? 

청주 보산사로 향했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 돌아와 수행하는 현안 스님과 마주 앉았다. 

 

사진. 유동영

 

연 매출 30억 사업가의 출가

한때 연 매출 30억 원에 가까운 사업을 운영하던 사람이 출가한 이유가 궁금했다. 백만장자였던 현안 스님은 왜 부를 헌신짝(?)처럼 버렸을까? “한국에 왔을 때 옛 친구들이 확인하러 왔었다”며 웃던 스님은 “버리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은 묻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묵직한 답을 내놨다. 

질문이 잘못됐다. 부와 성공을 누릴 수 있는 젊음보다 더 나은 삶이 출가였을까? 스님의 대답을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이렇다.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출가는 부와 성공이 주는 즐거움보다 더 나은 대체품이었다. 재가자로서 수행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굳이 애써 만든 부와 성공을 뒷전으로 하고 출가를 선택해야만 했을까?

“사업을 하면서도 수행하고 있었는데 꼭 출가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죠. 사업하던 사람이라 머릿속에서 손익계산서를 만들어서 3일 동안 골몰했어요. 답은 출가더라고요. 수행을 하면서 내 마음과 몸이 변하는 경험을 했고, 매년 향상했어요. 그 길 끝엔 얼마나 더 큰 게 있을까 기대되더라고요. 이건 제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거였어요.”

그에게 출가는 아무래도 좋았다.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삶에 다가가고 싶었다. 출가는 방편일지도 모른다. 2019년 10월, 그는 미국 위산사에서 영화 스님에게 출가했고, 가사를 받았다. 함께 수행하던 출·재가자 모두 그의 출가를 축하했다. 그 역시 기뻤다. 

막상 출가 후 달라진 삶은 조금 괴로웠다. 당장 원하는 곳에 나갈 수 없고 먹고 싶은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출가수행자 생활도 처음이었고, 지시하던 보스의 기질을 떨쳐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출가 전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매달 아등바등 손익계산을 맞춰야 하는 일상에서 벗어났고, 사업 실패의 두려움이라는 무의식 속 감정을 알게 됐다. 

“출가는 세속적인 걱정 다 놓고 (부처님이 발견한) 길을 따라 고속도로 달리듯 정진만 하면 돼요. ‘출가자는 깨닫는 것만 전념하라’는 영화 스님의 두려움 없는 목소리와 표정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스포츠카 몰다 만난 위대한 스승

그랬다. 현안 스님에게 스승 영화 스님은 위대한 존재다. 스승의 가르침은 부와 성공보다 매력적이었다.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10년 가까이 스승의 지도로 정진하며 가랑비에 옷 젖듯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부터다.

출가 전 스님은 부와 성공을 누리며 살았다. 물론 부와 성공은 거저 얻은 게 아니었다. 27살, 그는 꽤 과감했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바이오 제약회사에 사표를 던졌고,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다. 쫓기는 직장생활은 물론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모든 것들이 주는 압박감에서 탈출하고 싶어서였다. 가진 건 퇴직금과 조금 모아둔 쌈짓돈이 전부였다. 한 칸짜리 방에서 노트북 하나로 의료용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다. 자금 없이 혼자 모든 일을 기획하고 처리해야 했다. 매일 10시간 이상 일했다. 머릿속엔 온통 생각으로 가득했고, 쉬이 잠들지 못했다. 분노와 우울함이 불쑥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공허한 마음을 채울 무언가 필요했다. 이것저것 해봤지만 그때 뿐이었고, 명상을 하고 싶었다. ‘챤[禪] 메디테이션(Meditation)’ 정보를 접했다. 선(禪)의 중국식 발음 ‘챤’에 ‘명상(Meditation)’을 붙인, 그러니까 참선이었다. 영화 스님이 법을 펴는 노산사에서 열리는 무료 참선교실에 좌복을 깔았다. 2012년이었다. 

스승 영화 스님은 선화 상인(上人, 중국에서 큰스님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을 만나 출가한 마지막 세대 중 한 명이다. 선화 스님(불광출판사에서 『법화경 강설』 등 몇 권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은 중국 임제종, 조동종, 위앙종, 법안종, 운문종 등 선가 5종 법맥을 이은 허운(1840~1959) 스님에게 1956년 위앙종 법맥을 이었다. 선화 스님을 만나 1995년 출가한 영화 스님은 1999년 비구계를 받고, 모든 생명체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비영리 조직 ‘Boddhi Light International(BLI)’을 설립했다. 이후 2005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노산사에서 다양한 문화, 언어, 나이, 교육, 종교 배경을 가진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영화 스님은 그에게 왼발을 먼저 오른쪽 허벅지에 올리고 오른발을 그 위에 덮는 ‘길상좌(吉祥坐)’ 결가부좌를 권했지만, 너무 어려웠다. 대신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최소 30분쯤 반가부좌로 앉았고, 며칠이 지나자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거친 생각들이 줄었다. 아파서 눈물을 몇 번 왈칵 쏟은 뒤에야 결가부좌를 마스터했고, 선정의 깊이는 달라졌다. 일이 막혀 앞이 깜깜하고 답답할 땐,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나 해결책이 떠올랐다.

인터뷰 내내 결가부좌를 한 현안 스님은 아프지도 않은 듯 밝은 표정이었다.

“참선하고 지도도 하면서 알게 됐는데, 우울증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씨앗이 있었는데, 사업 실패나 부부갈등, 내 뜻대로 안되는 자식, 직장에서 받는 압력 등 조건을 만나면 드러나더라고요. 저도 바쁘게 살땐 몰랐는데, 이미 안에 있는 감정이었어요. 참선은 이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빈도를 줄일 수 있게 해요.”
참선을 배우는 동안 사업은 매년 2~3배씩 성장했고, 2017년에는 매출이 약 30억 원에 가까웠다. 제품 한두 개가 우연히 히트해 미국 전역을 휩쓸기도 했다. 항공사 마일리지만으로 비즈니스석을 예약해 날씨 좋은 콜롬비아 한 도시에서 한 달 동안 여행하며 고급 음식을 먹고 매일 쇼핑 다니며 놀았다. 토요타 캠리에서 아우디, 포르쉐까지 좋은 차도 몰았다. 그래도 마음은 늘 노산사로 향해 있었다. 수행할수록 필요한 것은 줄고 갖고 싶은 것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우리가 행복으로 여기고 추구하는 세속적 즐거움은 일시적이더라고요. 반면 선에서 얻는 즐거움은 훨씬 크고 지속적이었죠. 더 나은, 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원천이 됐어요. 어떻게 부와 성공을 버리고 출가했냐고 묻지만, 전 버린 게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선택했습니다.”

선칠과 불칠 그리고 보산사

현안 스님에게 출가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방향이자 길이다. 그래서 스님에게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삶의 어떤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지침의 집합체’다. 학창 시절 존재를 고민하며 『반야심경』을 일기장에 쓰고 늘 곱씹었다는 스님은 대학 전공도 미생물 공학을 택했다. 이과 전공생에게 정신적인 영역은 이질감이 느껴질 법도 한데, 스님은 아니랬다. 학창 시절 ‘나는 누구인가’, ‘나의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를 고민했고, 답을 찾고자 생명을 공부하는 미생물 공학을 전공했단다. 

“대학 시절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분해가 에너지가 되는 화학적 과정이 한 번에 이해가 된 적이 있어요. 완전히 몰입했었고, 갑자기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죠. 훗날 영화 스님에게 물었는데, 낮은 단계의 삼매라고 하더군요. 제겐 아주 특별한 경험이어서 살짝 기분 나빴어요(웃음).”

현안 스님은 불교 안에서 존재의 답을 찾고 있다. ‘지침의 집합체’를 믿고 따라가면 늘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했기에 믿음이 더 확고해졌다. 하지만 쉽진 않다. 내면 깊숙이 있는 자신의 허물과 오류를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답을 찾고자 스님은 청주 보산사에서 영화 스님의 가르침 따라 정진 중이다. 노산사와 위산사 그리고 금림선사 등 영화 스님이 미국에서 이끄는 대승수행도량의 첫 번째 한국 도량이 보산사다. 프로그램도 똑같이 돌아간다. 능엄주와 대비주, 약사염불, 아미타경 독송, 88불 참회 등 한국 불교와 큰 차이점이 없다. 특징은 법을 설하는 영화 스님이 출·재가 수행자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형식의 법문이 한국과 미국에서 실시간으로 동시에 진행한다는 점이다. 현안 스님이 질문과 답을 통역한다. 

안거와 비슷한 집중수행도 있다. 불칠(佛七, 염불)과 선칠(禪七, 좌선)이다. 불칠은 새벽부터 능엄주로 시작해 아미타경과 아미타불 염불을 7일간 이어가고, 선칠은 새벽 3시부터 자정까지 1시간 좌선과 20분 포행을 7일간 반복한다. 결가부좌로 불칠과 선칠을 하면 금상첨화란다. 모든 프로그램은 자율 보시다. 

불교 카툰작가 서주 스님 등 몇몇 비구니 스님도 현안 스님과 공부했고, 지금은 미국 도량에서 정진 중이라고. 코로나19로 큰 법석을 열지 못해도 알음알음 몇 명씩 와서 함께 결가부좌를 튼단다. 효과가 있는 걸까? 보산사에서 정진하던 재가자 2명이 출가했고, 1명은 미국 영화 스님 회상에서 습의 중이다. 

“사미니이니까 출가자로서 배워야 할 것을 미국에서 배우고 있어요. 출가자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바른 견해라든가. 영화 스님이 항상 출가자의 자세를 말씀하신 게 있어요. ‘출가자는 모셔지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이다. 출가자로서 마땅한 자세는 사람들에게 대접받기보다 그들이 필요한 것을 알아채고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제일 중요하죠.”

정작 현안 스님은 출가를 권하지 않았다. “그 사람 인생을 제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나요? 출가 안 해도 그 사람이 그 인생에 만족하고 그 길을 택했다면 그 사람에겐 좋은 일이에요. 물론 전 다시 수행할 수 있는 몸을 받는다면 다시 태어나도 출가할 거예요(웃음).” 그렇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더랬다. 

“참선을 지도하다 보면 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는 우울증, 불안증세 아니면 분노 조절 장애 등 여러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런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없어요. 경험 많거나 방법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세요. 교회도 좋고 절도 좋고 심리상담도 좋아요. 열린 마음으로 조언을 듣고 자신의 패턴과 다른 것을 시도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도움을 요청하고 조언을 구해보세요. 제게 지혜로운 사람은 영화 스님이었어요.”

출가수행자의 발이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결가부좌로 앉아 참선하는 현안 스님의 발이다. 앉았다 하면 결가부좌이니 잠깐 일어나면 발 곳곳이 벌겋다. 그래도 스님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현안 스님은 스승 영화 스님의 가르침이 한국 불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그래서 불교계 언론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법이 닿길 원해서다.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라는 책도 썼다. 

자못 궁금했다. 현안 스님이 걸어가는 방향과 길 끝에는 뭐가 있을까? “저도 잘 모르겠다”며 웃는 스님. 대신 예불 때마다 소리 내 읽으며 되새기는 종지(宗旨)에 답이 있었다. 현안 스님이 처음 수행할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자 늘 어긋나진 않았는지 되새기는 종지다. 

“얼어 죽어도 인연에 매달리지 않고, 굶어 죽어도 연을 구걸하지 않으며, 가난으로 적어도 연을 구하지 않는다. 연을 따르되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되 연을 따른다. 부처님 일[佛事]을 위해 목숨 바치고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해 삶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