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스승과 제자의 ‘리턴 매치’

강의를 많이 하다보니 저절로 알아지는 것들

2021-06-22     백승권

주민자치회 회장이 된 대기업 팀장

주말에 쉬는데 A의 전화가 왔다. 수원에서 함께 저녁을 먹은 뒤 한동안 적조하게 지냈는데 1년 만에 연락이 온 것이다. A는 필자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데 꼭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인다. 예의 계면쩍어하는 목소리로 안부를 묻고 한참 뜸을 들인다.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는 모양이다.

“선생님, 제가 마을신문을 만들려고 하는데요. 제가 신문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시민 기자와 어린이 기자도 교육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죠?”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다. 즉답하지 못하고 어쩌다 마을신문을 창간하게 됐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한 달 전 제가 사는 동의 주민자치회 회장이 됐어요. 올해 사업으로 마을신문 제작과 어린이 기자단을 운영하려고 시의회에 예산을 신청했는데 그게 통과돼서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과연 A답구나’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A는 유수의 대기업에 다니는 팀장이다. 대기업 팀장 생활은 직장 내 업무만으로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텐데 주민자치회 회장이라니. 우리나라 대기업 팀장 가운데 주민자치회 회장을 맡은 사람은 A가 유일할 듯싶다. 대기업 직장인 가운데 A만큼 사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은 아마도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 것이다.

1년 전 수원에서 만나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A는 아파트 입주민 회장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직책은 주로 현업에서 은퇴한 나이 많은 사람의 차지 아닌가. 

A는 2008년 이후 10년 정도 우리나라의 퇴행적 정치 현실을 겪으며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부터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출마했고 마침내 당선까지 된 것이었다. A는 또 자신이 지지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당선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노라고 밝혔다. 

20대 때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30대 때 언론운동, 환경운동에 참여했으며 40대 때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일한 ‘386 운동권’ 출신인 필자가 보기에도 A의 열정은 뜨거웠다. 무엇보다 절대 식는 법이 없었다. 필자는 이미 사회적 이슈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생업과 개인적 관심사에만 충실하려고 꿍꿍이를 하고 있는데, A를 접하면 마음 한쪽이 괜히 찔리는 걸 감추기 어려웠다.

 

최선을 다해 살고 있지만 

A와 필자가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프레시안 직장인 글쓰기 강좌 수강생이었고 우연한 계기로 지금까지 그 인연이 이어지게 됐다. 강좌 두 번째 날, 자기 삶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한 편 써서 제출하라고 수강생들에게 과제를 내주었다. A의 글을 집에서 읽으며 글쓰기 차원과는 다른 고민에 빠져들었다. 

A의 글 속엔 A가 살아낸 삶의 경로와 태도가 아주 선명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A는 삶의 어느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대학을 다니며 다양한 사회봉사에 참여했으며 대기업에 입사하고 난 뒤엔 야학 교사로 활동했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약속을 잡으면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늦게까지 남았다. 궂은일, 꺼리는 일엔 주저없이 손을 걷어붙였으며 너무 사소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일까지 빈틈없이 챙겼다. 그러나 그의 헌신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가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서운함의 무게도 커졌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다른 사람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일까?’.

A의 마음은 문장 표현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정말, 매우, 아주’ 따위의 정도를 나타내는 부사를 많이 썼으며 어떤 상황과 심정을 표현하는 데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자세하고 곡진했다. 자기 뜻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평소의 답답함과 절박함이 이런 문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살고 있지만 그에 합당한 인정과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니 얼마나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까, A의 심정이 읽혀 지나칠 수 없었다. 글쓰기 강좌의 본령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마음을 부리는 일에 대한 몇 가지 걱정과 조언을 적어 A에게 보냈다. 늦은 밤 A의 답장이 메일로 왔다. 

백 선생님이 제 글 말미에 달아주신 문구가 어제 집에 돌아가는 내내 머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선생님의 조언에 전 정말 100% 공감합니다. 전 평소 말이 별로 없지만 제 생각이나 주장을 과도하게(그게 바로 저의 ‘감정적’인 모습일 겁니다) 주변에 전달하고 선생 노릇을 하는 편입니다. 주변에서 저와 함께하지 않을 때는 저 혼자서라도 일을 수행하곤 - 대부분 저의 생각이 옳았고 결과도 좋았습니다 – 했습니다. 회사에서든 자원봉사 활동이든 제가 중요한 일을 많이 했지만 저에게 돌아온 감사와 칭찬은 대개 기대치 이하였습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겠지만 이제라도 자기 수양과 ‘관계’에 집중하겠습니다.

 

가르치고 배우고, 배우고 가르치고

A를 처음 만날 무렵, 필자는 글쓰기 강사를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초짜’였다. 프레시안 강좌가 유일무이했다. A는 어느 날 인사팀장으로 발령받았다며 필자에게 신입직원 교육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초짜’에게 너무 과분한 프로젝트였다. 그는 필자에게 강의 커리큘럼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친절하게 안내해주었으며 참고할 만한 책과 자료를 소개해 주었다.

어찌어찌 신입직원 교육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견간부 교육을 또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이건 필자의 역량으로 감당하기엔 불가능한 과제였다. 필자가 난색을 표하자 A는 PPT 교안을 미리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A는 보완하고 추가할 사항들을 직접 알려주었다. 

갈림길(11p)-갈림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 위해 텍스트를 아예 없애고, 사진으로 꽉 채웠으면 합니다. 블랙스완은 뒤 페이지와의 연계성을 알 수 없네요.(15p) 타타타(18P)-노래를 음성 파일로 링크하여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명과 코골이, 입 냄새(20P)-도식화(다이어그램)하여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교육이 끝난 후에는 이렇게 피드백을 보내주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백 선생님은 ‘강의빨’이 센 강사들(약장수류)에 비해 흥미도나 카리스마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흥미를 끄는 비디오, 오디오, 적절한 액티비티 등을 강의와 적절히 섞어 배열하면 집중력 저하를 예방할 것 같습니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좀 더 구조화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일러스트나 도해를 적극 활용하고 강의내용을 프로세스화 하면 교육생들이 훨씬 쉽게 이해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교육생들한테 교재의 글을 읽게 하는 것은 40여 명이나 되는 대단위 강의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동료들이 쓴 글이 읽힐 때는 교육생들이 귀를 쫑긋하고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현장경험이 풍부한 강사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유익한 강의였음’이란 어느 교육생의 평가처럼 매우 훌륭하셨습니다.

A가 준 기회를 통해 필자는 글쓰기 전문강사로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무엇보다 큰 자신감을 갖게 됐다. A 회사의 교육 이후 신기하게 여러 기관과 회사에서 강의요청이 이어졌다. 4년 만에 연간 200여 회가 넘는 강의를 하는 전문강사가 됐다.

A와 필자는 각자 삶의 경로를 따라가다 글쓰기를 통해 조우하게 됐다. 서로의 삶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상대방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풀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처음엔 필자가 가르치고 A가 배웠으며 나중엔 A가 가르치고 필자가 배웠다. 이제 다시 리턴 매치*가 시작됐다. 이렇게 행복한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관계를 맺게 해준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다니! 필자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 분명하다.  

 

*리턴 매치(Return Match): 권투 등에서 선수권을 빼앗긴 사람이 새로 선수권을 얻은 사람에게 다시 도전해 대결을 펼치는 것.  

 

백승권
글쓰기 컨설팅 전문업체 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 대표로 업무용 글쓰기 강사로 활동 중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조계종 화쟁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