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무얼 도울 수 있을까요?"

오늘을 밝히는 등불들, 소쩍새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2007-09-16     관리자

요즘 소쩍새마을로 가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조계사 앞이나 동 서울 터미널에 가면 어김없이 소쩍새마을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풍성한 수확과 조상님네들의 음덕에 감사하는 추석을 앞둔 9월의 아침, 조계사 앞에서 올라 탄 셔틀버스엔 이른 시각인데도 비구.비구니 스님들과 보살님등 20여 명이 조용히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스님들은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학년 스님들로 올해부터 시작된 학과 실습 및 자원 봉사활동을 위해 매주 화요일 소쩍새마을을 찾고 있었다. 이 일은 또 현재 소쩍새마을의 원 장이자 중앙승가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이기도 한 보각 스님의 영향력이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비구니 스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회복지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스님 들에게 이렇듯 알맞고 훌륭한 학습과 봉사의 현장은 쉽지 않을 것이다.
7시 30분 조계사 앞을 떠난 버스는 8시 동서울 터미널 옆 우성아파트 101동 후문 앞에서 몇 분의 자원봉사자와 학인 스님들을 더 태우고는 정확히 10분 후 부르릉 소리를 내며 소쩍새 마을로 향하기 시작했다.
차 안에서 각 조별 봉사활동을 준비하는지 몇몇 스님들이 잠시 부산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앞자리 한쪽 짝을 맞추어 앉은 자원봉사자들은 이른 아침 가장 먼저 집을 나선 미안한 마음 에 아침상에 올려 놓은 반찬이며 출근하고 학교 갈 가족들 이야기에 서로들 귀를 맞대고 도 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버스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전정옥(57세), 정희남(56세), 최경숙(48세) 씨는 지난해 8월 간병 인협회에서 봉사활동 교육을 받고 지금까지 둘째, 넷째 화요일 마다 소쩍새마을에서 조그만 도움을 손길을 보태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을 둔 주부로서 집안 살림하랴 분주한 아침 출근 준비에 하루하루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말이다.
"소쩍새마을요? 작년 그 일(작년 7월 4일 MBC TV의 'PD수첩' 소쩍새마을 설립자인 일력 정승우 씨의 장애인 유기 및 성추행등 원생 학대와 후원금 착복에 관한 고발성 프로그램을 방영했다.)이 터졌을 때부터였지요. 말도 말아요. 거적떼기 뒤집어쓴 어두컴컴한 비닐하우스 안에 아이들, 다큰 원생,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우리가 가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번 안아 주면 떨어질 줄을 몰라요. 그 눈빛이면 품에 안겨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다 시 안 올수가 없더라구요."
"지금은 너무너무 좋아진 거지요. 목욕도 매일 할 수 있고 매일 빨아서 삶아 말린 속옷ㅇ ptlr사도 좋아지고 간식도 먹으니까요..."
"처음엔 7만 가까이 되던 후원자도 뚝 끊기고 봉사자들도 끊기면서 말도 못하게 어려웠지 요. 일력이라는 사람한테 속은 것이 분했겠지만 생각해 보면 그 때 더 후원도 하고 도와주 어야 하는 건데 말이예요. 하여튼 승가대 스님들하고 원주 인근 봉사자들이 다 뒷바라지하 면서 지금은 다시 봉사자들도 많아지고 후원자들도 되돌아오고 있다고 해요."
1년 여 소쩍새마을의 또 다른 가족으로서 자원봉사자인 이들이 저마다 이구동성으로 들려주 는 이야기는 작년 MBC TV 의 충격적인 보도 이후 그 동안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무성한 말들을 그대로 다 견뎌내야 했을 소쩍새마을 가족의 또 다른 힘겨움이었을터다.
10시 30분 가을들판을 가로질러 도착한 소쩍새마을(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2리 1312-2 Tel0371-762-9870)은 맑은 계곡물이 옆으로 흐르는 치악산 한줄기에 분홍색 울타리를 아담 하게 치고 있었다. 기차와 자가용 등을 이용해 먼저 도착한 승가대 스님들이 반갑게 맞아 주는 가운데 어느새 목욕조, 방청소조 등으로 나뉜 스님들은 제 위치로 신속하게 흩어졌고 주로 맞아오던 목욕일을 스님들에게 맡긴 전정옥, 정회남,최경숙 씨도 점심 준비와 김치 담 그기를 위해 시간을 서두르며 식당 쪽으로 거름을 재촉했다.
현재 비장애인 14명을 포함 107명의 오갈 데 없는 고아와 노인,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소 쩍새마을은 작년 보도 후 중앙승가대학에서 인수해 올 2월 정식으로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을 설립, 후원자들의 후원금에 의해 꾸려가고 있다.
그동안 치악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해 임으로 시설을 증개축하기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너무나 열악한 가족들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해 세 차례에 걸친 공사허가 신청 끝에 비닐하우스를 걷 어내고 180여 평 규모의 조립식 건물을 새롭게 지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은 지속적이고도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유아숙소를 비롯 장애인 여자숙소, 수세식 화장실 등으로 사용할 조립식 건물 3개동이 더 지어져 마무리 손질이 한창이다.
지난 12월 26일 이곳 가족 중에 두 쌍이 사모관대와 족두리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혼례를 치뤘다. 그리고 보금자리를 소쩍새 마을 한쪽에 마련했다. 1천여 명의 축하객들이 모인 가운 데 그 날은 또 법당 봉불식이 있었기에 부처님이 허허 웃으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소쩍 새 마을은 더욱 뜻깊은 날이었다. 이렇게 일을 추진할 수 있었던 던 데에는 현재 원장을 맡 고있는 '노랭이' 보각 스님(중앙승가대학 교수, 불교사회복지연구소 소장, 삼전종합복지관 관장)의 오랜 원과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도반은 물론 사제들에게도 밥 한그릇 제대로 사 준 적 없이 지난 10여 년 동안 모은 3억여 원을 중앙승가대학 발전기금과 강화선원사 양로 원 건립기금등 교육과 불사에 회향한 스님이 시설개선과 후원회를 되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발로 뛴 덕분이었다.
그리고 보각 스님은 10년 안에 소쩍새마을을 3,000명이 함께 사는 복지타운으로 만들고, 그 곳에 스님 양로원도 마련하겠다는 원을 갖고 계신다.
소쩍새 마을엔 현재 총무일을 맡고 있는 지유스님, 홍보를 맡고 있는 한북 스님 등 스님 세 분이 보육ㄱ교사, 특수교사 등 15명의 직원과 함께 상주하며 가족들을 돌보고 있다. 자원봉 사자들에게 '천사표'로 통하는 임명숙 선생님(27세)은 특수교사로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지 내며 큰소리 내는 일 없이 가족들의 뒷수발을 마다않는다. 또 소쩍새마을과 결혼했다고 서 슴없이 이야기하는 임재순 선생님(간호사 39세)은 하루에도 애여섯 명씩 부딪치고 넘어져 어디고 한군데씩 깨져오는 가족들의 치료에 여념이 없다.
목욕한 가족들 한 명 한 명 붙잡아 깨끗한 속옷을 입히는 김성진 선생님, 신발신기에서부터 학교 갖다오는 아이들 맞이까지 줄곧 그림자처럼 아이들을 따라 다니는 임소희 선생님... .
잠깐 지켜보기에도 이들의 하루하루가 쉽지 않겠다.
점심시간이 가까운 시각, 어느새 기차를 이용해 합류한 자원봉사자들이 저마다 일을 나누어 설거지며 간식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다음주 '우리 모임(연세대 재활학과 2학년 모임)'의 봉사활동을 위해 사전답사를 온 최성순 씨도 사전답사는 제쳐놓고 큰통에 한가득 절여진 김 치거리를 나르며 구슬땀을 흘린다. 안경 너머로 어렴풋한 그의 미소가 한결 아름답기만 하 다.
자원봉사자들이 타고 온 셔틀버스가 돌아갈 3시가 가까워 오면 소쩍새마을은 더욱 분주해지 기 시작한다.
키 크고 미남인데다가 서글서글하기까지 한 보심 스님의 열렬한 팬인 지영(뇌성마비, 18세) 이가 스님을 떠나보내는 애틋한 마음하며, 가족들의 운동과 자유시간으로 이어지는 오후의 일과 때문인지 최신 유행가가 울려 퍼지는 소쩍새마을엔 이제 얼마 전의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김치 담그는 일을 마저 도와주고 갈 정회남 씨를 비롯한 자원봉사들이 아직 남아 있고, 오 늘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야 할 홍성국 신경정신과 의원, 인하병원의 원장님들처럼 아무런 상도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돕고 있는 소쩍새마을의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영이의 예쁜 마음과 오늘 만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이들의 이름을 기억해본다. 그리고 셔 틀버스 운행이 아직 많이 알려지지 못해서인지 빈 차로 되돌아가는 날이 더 많다고 그런 날 은 웬지 더 서운하다고 허허롭게 웃던 조상곤 씨(셔틀버스 운전사.50세)의 마음도 떠올려본 다.
그리고 입구 게시판에서 보았던 누군가의 질문을 소리내어 읽어보며 이 풍성한 수확의 계절 소쩍새마을에 한번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게가 무얼 도울 수 있을까요?"
후원자들이나 방문자들이 오면 한결 같이 이렇게 고민한답니다. 걱정마세요, 당신의 직업이 무엇아냐에 따라 봉사할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미용사들은 가족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중 국집 아저씨는 짜장면을 만들어 주고, 사진작가는 사진을 찍어주고, 한의사 선생님은 가족들 에게 침을 놔줍니다.
... 사실 직업이 전업주부인 여성들이 가장 할 일이 많습니다. 청소하고 빨래해 주고 씻겨주 고 먹여주고 안아주고 요래 도와주고... .
"뭘 할까요?"
"당신의 직업은 뭐죠?"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