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유산 연등회] 지금 여기 with 코로나19

첫 온(ON)택트 연등회, 천년 이어온 정신만은 그대로

2021-05-27     송희원
연등법회와 기념식에 함께한 전국 사찰·단체의 줌(Zoom) 화면.

일상에서 당연하게 영위해왔던 일들이 멈췄을 때 문득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코로나19로 일상의 많은 것들이 중단됐다. 매년 4, 5월 즈음이면 부처님오신날을 경축하며 국적, 인종, 종교, 장애의 경계를 넘어 다 함께 어울리던 축제, 연등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불교계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선제적인 조치로 연등회의 모든 행사를 전격 취소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연등회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후 처음 맞이하는 특별한 연등회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 나아가는 것, 그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 했던가. 불기 2565년 연등회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언택트(비대면), 온택트(온라인 대면)라는 달라진 일상의 풍경에 맞춰 진화했다. 

이틀에 걸쳐 성대하게 치러졌던 연등축제는 대면 행사를 대폭 축소하고 온라인 중심으로 대체됐다. 연등회의 시작을 알리는 어울림마당, 연등법회도 참석인원은 최소화하고 전국 사찰·단체에서 줌(Zoom)으로 참가할 수 있게 했다. 모두가 흥겹게 어울리며 강강술래를 추던 회향한마당은 취소됐고, 불교와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전통문화마당은 영상 콘텐츠로 제작돼 유튜브로 소개됐다. 

스님과 재가단체가 준비한 등을 들고 서울 도심을 행진하는 연등회의 백미인, 대규모 연등행렬 역시 소규모로 진행됐다. 대신 연등회 홈페이지에 가상행렬로 동참할 수 있는 온라인 연등행렬 공간이 마련됐다. 

올해 특별히 추가된 행사도 있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기념식이 거행됐고, 천년 넘는 연등회의 역사를 조명하는 ‘마음과 세상을 밝히는 연등회’ 특별전이 서울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열려 연등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재현한 높이 18m의 봉축장엄등이 붉을 밝혔다. 희망과 치유의 등불을 밝혀 하루속히 코로나19 전 일상으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희망과 치유의 연등을 밝힙니다”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든 모두를 위한 희망과 치유의 등을 밝힙니다. 오랜 시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 오며 심신에 커다란 무게를 견디어 온 사부대중 마음에 환희로운 자비의 꽃이 피기를 기원합니다.”

- 연등회보존위원장 원행 스님 점등사

4월 2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국보 제11호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원형으로 한 높이 18m의 거대한 붕축장엄등이 불을 밝혔다. 미륵사지탑은 639년 백제 무왕이 발원하여 건립한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탑이자 가장 큰 규모의 탑이다. 원래는 9층이었으나 오랜 세월을 견디는 동안 무너져내려 현재는 6층까지만 남아 있는 상태다. 미륵사지탑등(燈)은 복원된 9층 석탑의 실제 모습을 70% 크기로 축소·재현해 제작됐다. 500여 장의 한지로 장엄한 점등탑은 전통 한지 등 특유의 고풍스럽고 은은한 분위기가 잘 배어 나왔다. 미륵사지탑등이 올해 점등탑으로 선정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 참회와 자비행으로 십선도를 실천하면 언젠가 미륵이 이 땅에 하생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그 ‘미륵’신앙처럼, 코로나19로 전 세계인들이 고통받고 있는 이때 희망과 치유의 등불을 밝혀 우리 모두의 건강과 일상이 하루빨리 회복되길 바라는 간절한 믿음이 ‘미륵’사지탑등에 담긴 것이다. 

이날 점등식에는 자신과 이웃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을 기원하는 지극한 마음들이 모여 서울 밤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았다. 

2020년 12월 유네스코가 연등회의 인류무형문화유산 가치를 인정해 문화재청에 전달한 인증서가 이날 연등보존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전달됐다. 인증서가 전달되자 객석에서는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줌 참여자들의 소리 없는 축하의 박수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을 넘어 이제는 전 세계의 문화유산이 된 연등회의 위상과 자부심을 한껏 드높였다. 

“연등회 세계유산 등재를 축하합니다” 

수십여 개로 분할된 대형화면에 색색들이 연꽃이 피어났다. 지역도 소속도 성별도 나이도 다른 사부대중이 손수 만든 연꽃등을 들었다. 몸은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연등법회와 기념식 자리를 줌으로 함께했다. 화면마다 빼꼼 내민 얼굴들에는 환희심이 넘쳐흘렀으며, 오색찬란한 연꽃등 만큼이나 곱게 빛났다.

‘희망과 치유의 연등법회’가 열린 5월 15일, 이른 아침부터 비가 쏟아져 내렸다.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은 내린 비로 진창이 됐고 한때 우왕좌왕 소란이 일었다. 하지만 방역지침을 준수한 1m 거리두기 안내와 참석인원 제한 등으로 이내 질서정연해졌다. 

온·오프라인으로 법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불·법·승을 외치자, 축포와 함께 ‘희망과 치유의 등’이 점화되며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불교레크리에이션협회에서 연등회 한 달 전부터 공모한 어린이·청소년·청년·일반신도 율동 챌린지 동영상이 상영되자, 법회에 참석한 조계사 청년회 신도들 20여 명이 율동을 따라 하며 연희의 열기를 발산했다. 줌으로 연결된 이들도 연등과 봉축메시지가 적힌 판을 흔들며 현장과 하나 되어 흥을 냈다. 

법회가 끝난 뒤 이어진 ‘연등회 유네스코 등재 기념식’에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인증서’ 전달식이 거행됐다. 2020년 12월 유네스코가 연등회의 인류무형문화유산 가치를 인정해 문화재청에 전달한 인증서가 이날 연등보존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전달된 것. 인증서가 전달되자 객석에서는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줌 참여자들의 소리 없는 축하의 박수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을 넘어 이제는 전 세계의 문화유산이 된 연등회의 위상과 자부심을 한껏 드높였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산악인 엄홍길, 불자 가수 진성, 트로트 가수 나태주 등 각계각층에서 등재 축하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해왔다. “우리 불교문화가 세계적인 유산으로 인정받아 기쁘다”, “연등회가 앞으로도 잘 계승되고 발전되기를 발원한다”, “연등회를 통해서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이 온 누리에 퍼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더 많은 세계인이 연등회를 알게 되고 함께 참여하길 기대한다”, “연등회 파이팅!”.

“마음을 모아 밝힌 행렬등이 모양과 색깔마다 그 불빛은 달라도 한결같은 마음과 정성으로 밝히겠습니다. 연등행렬 참가자들과 함께한 인연과 등공양의 공덕으로 모든 생명들이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발원합니다.”
_ 이수민 조계사청년회 회장, 「연등회향 발원문」 중에서 

 

거리는 1m 마음 거리는 0m

연등회의 대미를 장식할 연등행렬 순서가 돌아오자 땅거미가 내렸다. 올해 연등행렬은 조계사 일주문을 나서 안국동사거리와 공평사거리를 한 바퀴 약식으로 순회하는 동선이었다. 연등회 깃발, 인로왕번, 병향로, 인례(정근)집전 스님을 선두로 불교계 주요 종단 대표 스님들과 봉행위원단, 조계사 신도 50여 명 등 소규모 인원만이 1m 간격을 유지하며 행렬에 동참했다. 

석가모니불 정근에 맞춰 한발 그리고 또 한발. 행렬이 중앙차선에 도열한 24개의 장엄등을 중간쯤 돌자 거짓말처럼 장대비가 잦아들었다. 펜스 밖에서 부모 품에 안겨 행렬을 지켜보는 아이,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 손을 잡고 다정하게 행렬을 지켜보는 커플까지. 그친 비로 하나둘씩 우산을 접자 환희심 가득한 얼굴들이 드러났다.

이날 현장에서든 온라인에서든 연등행렬을 지켜본 모든 이들은 일심동체로 코로나19 종식과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며 희망과 치유의 연등을 밝혔다.

20여 년 넘게 연등회에 참가했다는 한 불자는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연등회가 해마다 전통성을 지켜 개최된다는 게 참 대단할뿐더러, 코로나 시대이지만 유네스코 등재 첫 기념행사로 조촐하게나마 치러진 게 감사하다”며 “비록 행렬을 함께하지는 못 했지만 길옆에 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고 감동을 전했다. 

어둠이 짙어지자 서울 하늘을 수놓은 조계사 도량등과 종로 일대 거리등이 더욱 찬란하게 제 몸을 빛내기 시작했다.  

연등행렬 참가자들은 일심동체로 코로나19 종식과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며 희망과 치유의 연등 앞에 두 손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