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유산 연등회] 연희・함께・신명

굉진천지(轟震天地) 다이너마이트

2021-05-27     윤소희
연등법회, 어울림마당, 연등행렬이 끝나면 회향한마당이 펼쳐진다. 
연등회의 모든 참가자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꽃비의 환희에 젖어 든다. 

‘연등회’라면 행렬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그 행렬의 몸체는 함께 신명을 내는 연희로 이뤄져 있다. 『고려사』에는 “원년 십사 년(1273년) 2월, 왕이 봉은사에 올 때 사문 밖에 등을 걸고 기회(技會)가 열렸다(王如奉恩寺. 以國家多故 除技會. 但於寺門外 設燈)”는 기록이 있다. 대회일에는 산대악인이 악관(樂官)과 함께 꽃과 주과(酒果)를 받았으며, 사문 밖까지 등을 걸고, 가무와 놀이를 했다. 이때 산대잡희를 행한 사람들을 산대악인이라 하고 이방인들을 팔방상공인(八坊廂工人)이라 통칭했다. 당시에 외국인들이 함께 춤추고 놀았음 또한 알 수 있다. 이때 기회의 규모가 1,350명이 넘었고, 이들이 주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천지를 진동시켰다(皆監飾 入廷奏樂 絃歌鼓吹 轟震天地). 굉진천지(轟震天地)를 요즘 식으로 말하면 “천둥 벼락과 같이 천지를 들었다 놨다 했다”는 것이다. 이토록 다이나믹하게 놀 줄 알았던 우리네 조상들의 DNA는 오늘날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한류가 되었다. 

연등보존위원회의 운영 방식을 보면, 연희율동에서 놀거나 연등행렬을 할 때 “마음대로 놀도록 방임”하는 것이 무엇보다 눈에 띈다. 그러나 마냥 내버려 두지 않는 원칙이 있으니 “크게 하고 튀어 보려는 자랑심”을 최대한 자제시키는 것이다. 이는 큰 나무가 어린싹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자비심의 원리이다. 

 

집단 유희와 놀이로 발화하는 법열

인류 문명사와 음악 이야기를 엮어 출판한 『문명과 음악』에서 필자는 “생존에 유리한 것이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렸다. 붓다의 설법이 세상에 뿌리내리기 시작해 2,500여 년이 지나기까지 지구촌에는 수많은 종교가 생성되고 전파되어 왔지만, 21세기 과학의 시대를 맞아 제반의 종교는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세계 지성인들은 한결같이 미래 종교로 불교를 꼽는다. 불교가 과학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인류의 생존에 유리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 유리함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그 답을 “존재의 희유”라고 말하고 싶다. 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유일신 계열, 온갖 신들이 난무하는 힌두교와 달리 불교는 자연 현상 그대로 바라보는 합리적인 존재 방식과 희유를 제시하기에, 깨달음을 성취한 도인들은 예외 없이 “법열의 기쁨”을 노래했다.

존재의 즐거움은 한 개체의 즐거움만으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개인이 행복하려면 가정이 행복해야 하고, 가정이 행복하려면 사회가 행복해야 하고, 사회가 행복하려면 국가가 행복해야 하고, 국가가 행복하려면 세계가 행복해야 하고, 세계가 행복하려면 지구와 자연이 편안해야 한다. 이러한 원리를 오늘날 코로나19가 잘 보여주고 있다. 선진국에서 아무리 방역을 완벽하게 하더라도 이웃 나라가 감염되어 있으면 소용없는 것을 우리는 여실히 겪어내고 있다. 연등회가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었던 요인도 전국 각 사찰에서 행해지는 연등 만들기의 정성과 신심이 서로 연결되어 집단 유희와 놀이로 발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자기하고, 소박하고도 알콩달콩한 나날의 정성이 있었기에 연등행렬로 귀결되는 에너지가 되어 연등불이 켜진 것이다. 여기에는 더불어 잘 놀기 위해 마음을 모아온 연등회 구성원들의 숨결과 손짓이 어우러져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이미 봄날의 연등회는 중단되었고,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는 형편이었지만 연등회에서는 여전히 전국 곳곳을 돌며 연등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사찰마다 연잎을 들고 다니며 연분홍, 다홍, 노랑 잎을 연밥에 감고 파란 잎사귀를 연대에 붙이는 마음들은 한 잎 한 잎마다 내 아들딸, 손주 손녀를 위한 염원을 읊조리고 있었고, 자신이 만든 자그마한 등을 집으로 가져가서 가족들에게 나누어주는 모습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나의 염원, 나의 정성, 내 식구들을 향한 소박한 염주 알들이 꿰어지는 순간이었다.

연등회가 부처님오신날과 연등에만 한정될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평화 등 인류 보편의 메시지로 품을 넓혀 보면 좋겠다. 너와 나, 세상의 모든 장벽을 넘어서 하나 되게 하는 연등연희의 마력, 하나의 멋진 곡이 화룡점정, 다이너마이트가 될 수 있다. 

 

유희하는 인간 호로 루덴스

연등보존위원회의 운영 방식을 보면, 연희율동에서 놀거나 연등행렬을 할 때 “마음대로 놀도록 방임”하는 것이 무엇보다 눈에 띈다. 그러나 마냥 내버려 두지 않는 원칙이 있으니 “크게 하고 튀어 보려는 자랑심”을 최대한 자제시키는 것이다. 이는 큰 나무가 어린싹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자비심의 원리이다. 일본 교토에서 열리는 기온마츠리(祇園祭, 일본 교토 기온 지역의 야사카진자를 중심으로 한 달간 열리는 민속 축제)를 보면서 참으로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축제가 끝난 뒤 거리는 온통 먹자 포장마차였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연등회 놀이마당에는 먹거리 포장마차에 세계 각국의 문화 포장마차와 놀이마당이 있어 그야말로 엄지척을 해 주고 싶다. 음악을 하는 필자라서 그럴까? 한국인 중에 음악에 두각을 드러내는 인재가 유난히 눈에 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에 조성진이 연주하는 피아노협주곡을 보면서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데다 같은 시기의 한국인이라는 것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안겨주었다. 그뿐인가.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세계인의 가슴을 뛰게 하는 데다 온 세계 아미(BTS 팬클럽)들의 열광은 그야말로 고려조의 연등회를 기록한 굉진천지이다.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보다가 어느새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Billie Jean)’에 이르러 희열감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어떤 댓글에 “마이클 잭슨은 신이 인간의 몸을 빌려 인간에게 즐거움이 뭔지 알려준 것 같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거참 맞는 말일세”하고 무릎을 쳤다. 마찬가지로 연등회의 연희 마당을 보면서 불자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긍심과 희열을 누리곤 한다. 희열은 나와 남의 구분을 없애버리는 마력을 발휘한다. 그러기에 한국 사람인 필자가 마이클 잭슨에 홀딱 넘어가는가 하면 온 세계 사람들이 BTS의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뜰히 챙기면서 목이 터져라 BTS를 외친다.

필자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갔을 때는 삼바축제 행렬 다음 날이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행렬 참가자들 사이사이에 여흥의 열기를 식히지 못한 사람들이 춤추고 있는데, 지나가는 나그네라도 그들 열정의 용광로에 녹아들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열정의 원동력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거기에는 남미 여러 나라 중에서도 브라질이 지닌 특성, 브라질에서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생겨나야만 했던 태생적 원인이 있었다. 남미의 모든 나라가 스페인어권이지만 브라질만이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기질적 차이가 있다. 

태양신에게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쳐온 잉카인들의 원색적인 제의(祭儀) 혈통이 있고, 거친 포르투갈인들의 노예가 된 원주민들이 사순절이라는 어두운 터널에 접어들기 전에 미리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자 했던 억눌림의 해방구가 오늘의 삼바축제다.

유희적 인간 호모 루덴스! 인간의 폭력성은 건강한 유희로 해소할 수 있다. 그러기에 전쟁과 갈등의 답은 호모 루덴스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연등회를 통해 함께 놀고 신명을 낸다는 것은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도 그 가치와 의미가 매우 크다. 

 

‘Heal the world’ 같은 연희음악 기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이르도록 더 멋지게 놀아볼까? 연등회 연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놀아야지”하고 놀면 그것은 이미 노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연희 참가자들은 그저 신나게 놀면 된다. 다만 연등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그들이 노는 마당에 어떤 돗자리를 깔아야 할지를 심도 있고 면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나라의 특정한 문화 현상이나 축제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문화 단층을 살펴보아야 하듯이 연등회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그 뿌리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전통을 알고, 그리고 오늘의 감성으로 내일을 내다볼 필요가 있다. 백희잡기를 보면 산대희, 탈춤, 인형극, 만석중놀이, 그림자극, 걸립패와 풍물 등 다양한 놀이 콘텐츠들이 있다. 오늘과 내일을 향한 연등연희를 이야기하는 마당에 과거의 전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나의 색깔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체성 확립이라는 당위가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 각처를 둘러보면 연등회와 비슷한 모습들이 너무도 많다. 이러한 중에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우리의 방식은 전통에 기반하는 것 외에 다른 묘안이 없다. 이를 실행하는 데 있어 전통의 깊이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얻되, 그 실행은 젊은이들의 실험적 도전성이 마음껏 발휘되도록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마당을 열어줘 보면 좋겠다.

BTS 현상과 마이클 잭슨의 마력을 보면, 마이클 잭슨의 기교적인 스텝, 노래와 달리 한국의 아이돌과 걸그룹은 여러 사람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기를 잘한다. 여기에는 한국 특유의 ‘우리’라는 문화적 코드가 작용하고 있다. 무대에서 마이클 잭슨 외의 모든 사람이 백스텝이 되는 것에 비하면 한국의 ‘우리’ 문화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매우 민주적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퍼포먼스”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한 중에 BTS가 차별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각 멤버의 목소리, 손짓, 발짓, 몸짓을 가려낼 수 있을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가 개별적으로 살아있으면서도 서로 모여 하나가 되는 조화가 뛰어나다. 게다가 팬을 향한 소통과 공감의 노력이 무엇보다 컸다. 그러한 점에서 앞으로 연등회도 BTS의 방식에서 모티브를 얻을 수 있다. 

연등회에서는 매년 새로운 곡들을 창작하여 연희율동에 활용하고, 음반 제작도 해왔다. 그러기를 십여 년이 지나다 보니 이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봤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유난히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한국 뮤지션의 인적 자원을 생각해 보면, 세계인의 마음을 울릴 연등회 음악을 만들어낼 저력도 충분하다.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 ‘I will be there’, ‘Heal the world’와 같은 곡을 들으면서 “저런 노래 연등연희 때 부르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연등회가 부처님오신날과 연등에만 한정될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평화 등 인류 보편의 메시지로 품을 넓혀 보면 좋겠다. 또 율동에만 맞추려다 보니 일정한 틀에 갇혀 버리는 경향이 있고, 일정한 예산으로 여러 곡을 만들어내다 보니 고가의 비용이 드는 분야에는 도전할 수 없었던 한계도 있다. 

그간 연등회를 위한 곡들이 상당수 축적되었다. 이제는 시대를 앞서가는 굉진천지할 연등연희 노래 한 곡 만들어보면 어떨까. 너와 나, 세상의 모든 장벽을 넘어서 하나 되게 하는 연등연희의 마력, 하나의 멋진 곡이 화룡점정, 다이너마이트가 될 수 있다. 

 

윤소희
한국불교음악학회 학술위원장. 「대만불교 의식음악 연구」로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한중불교음악연구』, 『동아시아 불교의식과 음악』, 『범패의 역사와 지역별 특징』, 『문명과 음악』, 『문화와 음악』 등이 있다. <윤소희의 음악과 여행>, <윤소희의 세계 불교음악 순례> 등 다수의 연재를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