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유산 연등회] 세상을 품다

“살아 돌아오라” 타는 목마름으로

2021-05-27     최호승
세월호 침몰 참사 3년 후인 2017년, 연등회에서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 추모의 연꽃등을 밝혔다. 

“연등회는 일반적으로 기쁨과 행복을 나누는 장을 제공하지만, 사회적 어려움이 있을 때는 사회를 응집시키는 데 기여한다.”(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결정문) 

유네스코가 연등회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다. 연등회는 고인 물이 아니다. 고인 물은 썩지만, 연등회는 시대와 함께 흘러왔다. 연등회는 박제되지 않았다. 사회와 호흡하며 살아 숨 쉬고 있다. 매년 발표하는 개회사와 봉축사, 기원문에는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희망을 염원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부처님 오심의 뜻과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세월호의 아픔, 함께 슬퍼하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축제 분위기로 열렸던 연등회는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한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봉축 점등식이 열려서가 아니다. 이날 오전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참사는 연등회의 포용성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점등식 식전행사였던 연등회 서포터즈 소속 내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의 플래시몹(약속장소에 모여 짧은 시간 동안 특정 행동을 한 뒤 순식간에 흩어지는 퍼포먼스)을 취소하고 엄숙함을 유지했다. 

곧바로 전국 곳곳 봉축행사와 연등회는 추모와 애도로 전환했다. 진도 팽목항에 구호봉사대와 임시법당이 설치됐고, 스님들과 봉사자들이 급히 건너가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연등회는 축제가 아닌 실종자 무사귀환을 발원하는 국민추모행사로 급히 선회했다. 준비했던 연등회를 불과 10일 앞두고 모든 계획을 뒤바꿨다. 연희단의 공연을 취소했고 흥겨움과 화려함을 담당했던 회향한마당도 희생자를 애도하고 실종자의 귀환을 염원했다. 

연등회의 가장 큰 볼거리이자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인 연등행렬에는 아픔을 위로하는 글을 적은 만장이 등장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꼭 돌아와 줘” “살아 돌아오라”는 문구는 행렬에 임한 참가자나 이를 지켜보는 시민 모두를 숙연케 했다. 행렬등도 달라졌다. 몇 개월에 걸쳐 제작한 오색찬란한 등 대신 스님들은 백색등을 들었다. 참가자들 모두 가슴에 노란 추모 리본을 달고, 국민적인 슬픔을 함께했다. 

당시 개회사와 봉축사, 기원문은 애도와 참회에 방점이 찍혔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며, 기본 상식을 지키지 않은 우리 모두의 공업”이라며 “재발하지 않도록 뼈아픈 통찰과 참회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아이들에게 더는 부끄럽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 상식과 양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민 모두 그 길을 걷자고 호소했다. 그리고 두 손 모아 등을 밝히며 공동의 책임을 통감하고 참회했다. 

“저희는 나 자신만의 생각에 눈멀어 또 다른 나인 이웃을 슬픔과 절망으로 멍들게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은 슬픔과 비통함, 분노를 넘어 부끄러운 마음을 돌이켜 눈물짓게 합니다. 부처님, 참회합니다. 저 차가운 바닷속에서 어린 생명이 엄마를 부르며 불쌍하게 죽게 만든 어른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간절히 간절히 참회합니다. 중생이 행복해야 내가 성불할 수 있다는 보살과 같이 고통받는 지옥 중생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구제하겠다는 보살과 같이 동체대비의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나겠습니다.”(2014년 연등회 기원문 일부)

1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연등회는 세월호 참사가 아팠다. 이역만리 네팔 지진의 충격과 고통도 위로했다. 2015년 봉축사는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로 남았다. 
“우리들의 가슴 속에도, 세월호가 남긴 상처가 아직 채 아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린 영혼들의 목숨과 맞바꾼 ‘안전한 나라’, ‘생명이 우선한 사회’를 향한 작은 한 걸음조차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더 늦기 전에 모두가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를 향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남북 평화와 번영을 꿈꾸다

슬픈 일만 있진 않았다. 남북 정상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을 때 연등회는 기쁨을 함께 나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종전선언,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이산가족 상봉 추진, 비핵화 공동목표 재확인 등 한반도 평화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면서 평화의 기운을 싹틔웠다. 

‘판문점 선언’은 연등회를 불과 보름 앞두고 찾아온 기념비적인 남북 화해 분위기였다. 전 세계 120여 개국 30만 명의 내외국인이 참여하는 5월 12~13일 연등회 주제로 평화를 택했다. 연등행렬에 한반도 평화와 화합을 위해 복원한 문헌상의 ‘북한등’ 19점이 행렬 선두로 나섰다. 연꽃수박, 학, 누각, 치자 등 다양한 북한 전통등이 국민을 만났다. 장엄등 외 10만 명이 직접 만든 ‘T자’형 행렬등 한쪽에 개인의 서원이 담긴 등을, 다른 쪽엔 평화와 화합을 염원하는 기원지를 붙였다. 테마등에도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 한반도의 평화를 연주하는 ‘주악비천(奏樂飛天, 하늘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상상의 인물)’을 형상화한 등 4점이 등장했다. 연등행렬에 앞서 진행된 연등법회의 모든 발원은 평화에 닿아 있었다. 개최사와 봉축사, 기원문 모두 그랬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에 움트는 평화의 기운을 더욱 확산하려는 연등회였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진정한 평화의 봄, 상생의 봄, 번영이 시작하는 봄이 되도록 간절히 기원한다”는 평화 메시지를 발표하고 새로운 변화를 기대했다. 이때 개회사에는 “오래 닫혀있던 민족 간 빗장이 풀리고 있다”며 “우리가 그리던 평화의 봄이 전 세계로 펼쳐지고 있다. 이념과 편견이 만들어낸 장벽을 허물고 두루두루 행복한 대한민국을 건설할 주인공은 바로 우리 모두”라고 했다. 

부처님 지혜와 자비로 마음과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등을 밝히는 연등회의 취지와 닮았던 당시 분위기는 단연 평화였다. 그렇게 연등회는 분단의 긴 겨울이 지나고 언젠가 찾아올 평화의 봄에 필 화합의 꽃을 노래했다. 

연꽃등​​​​​​​
수박등
치자등
학등

 

울고 웃으며 천년 또 천년

국민적 기쁨과 아픔에는 늘 연등회가 동행했다. 외환 부족에 허덕이던 대한민국이 IMF(국제통화기금)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1997~1998년에도 연등회(당시엔 연등축제)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네 마음이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를 직시하고 자신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요청했다. 가치관의 혼돈과 극심한 경제난 등 고통에는 불자들에게도 커다란 책임이 있음을 자각하라고 충고했다. 또 이 고통을 해결하는 보살행의 실천처럼 밝힌 등이 자비와 지혜이자 희망을 뜻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인류 최대의 축제이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열렸던 2002년에는 화합과 평화의 축제가 되길 기원했다. 

연등회는 천년 넘게 사회와 울고 웃었다. 그리고 늘 희망을 염원해왔다. 중국 문학가이자 사상가였던 루쉰은 희망을 땅 위의 길이라 정의했다. 땅 위에 본래부터 길이 있었을까?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된다. 그렇다. 연등회가 추구하는 길이 어쩌면 희망일지 모른다. 과거에도 그랬으며,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러할 것이다. 

“연등회는 기쁨과 행복을 나누는 장을 제공하지만, 사회적 어려움이 있을 때는 사회를 응집시킨다”는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결정문이 유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