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유산 연등회] 오래된 젊은 축제

“차별 없는 세상 우리가 주인공”

2021-05-28     허용호

봄날의 오래된 축제 연등회

따뜻한 봄날, 고즈넉한 산사에서부터 번화한 도시의 거리까지 등이 내걸린다.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례가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정성껏 깨끗하게 차려입은 이들이 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을 맞는 대한민국의 봄 풍경이다. 연등회는 등을 밝혀 부처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이다. 

연등회는 『삼국사기』 첫 기록에 서기 866년으로 전하고 있어, 천년 이상 오랜 연원을 자랑하기도 한다. 연등회에서는 다양한 공연과 대동놀이도 함께 벌어져 축제라 말할 수 있다. 부처님 탄생을 축하하는 종교행사로 시작한 연등회가 이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봄 축제가 된 것이다. 

연등회의 대표 상징은 등(燈)이다. 탐내고 성내는 어리석음을 부처님의 지혜로 비추어 없애고자 하는 마음이 ‘연등(燃燈)’, 곧 ‘등 밝히기’에 담겨있다. 사찰과 거리를 밝히는 등은 장인들이 만든다. 장인들은 전통적인 등 제작 방식을 연등회 참여자들과 공유한다. 이에 따라 누구나 등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연등회 참여자들은 한 편으로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등을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과 사회를 위해 등을 만든다. 어두운 마음을 지혜의 등으로 밝히고자 하는 염원을 자신과 가족에서, 이웃과 사회로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연등회는 아기 부처님을 불단에 모셔 목욕시키고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으로 시작한다. 종교적 믿음으로 정갈하게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을 되새긴다. 이어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이 만든 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부처님의 지혜로 세상을 밝히려는 행렬은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대한민국 전역에서 이어진다. 참가자들은 신명 나게 즐기면서도 차별 없는 세상을 기원하며 걸어간다. 행진이 끝나면 참가자들이 어우러지는 한바탕 놀이가 펼쳐진다. 인종과 세대, 그리고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경계를 넘어서 하나가 되는 절정의 순간이다. 

연등회의 정신은 ‘다 함께’이다. 대동놀이에서의 어우러짐은 연등회 정신의 구체적인 구현이다. 나라, 인종, 세대, 종교가 달라도 어우러지는 화합의 장이다. 

 

연등회 공동체의 구심

연등회는 ‘제한 없는 자발적 참여’를 지향한다. 그래서 불자는 물론이고, 불자가 아닌 사람들 역시 참여할 수 있다.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연등회 연행자이고, 연등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 이들은 대체로 불교 종단, 사찰, 신행 공동체별로 단체를 구성하여 행렬에 참여한다. 워낙 대규모로, 그리고 지역별로 다양하게 연등회가 벌어지기에 어떤 구심이 필요하다. 바로 ‘지역봉축위원회’와 ‘연등회보존위원회’가 구심 역할을 맡아 연등회 운영 거점이 되어 연등회를 지원한다.

지역봉축위원회는 서울을 포함한 각 지역에서 연등회 거행을 위하여 여러 단체가 연합한 조직이다. 웬만한 중소도시에서는 지역봉축위원회가 구성된다. 지역봉축위원회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축하하고 그 뜻을 널리 새긴다는 지향점을 공유하며 해마다 유연하게 구성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연등회보존위원회(서울), 부산연등축제조직위원회(부산), 달구벌관등놀이축제준비위원회(대구), 태화강연등축제조직위원회(울산), 빛고을관등회봉행위원회(광주) 등의 이름으로 상설화되어 있기도 하다. 지역봉축위원회에는 해당 지역의 사찰, 종단, 남녀노소별로 조직된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한다. 지역봉축위원회는 각 지역에서 연등회를 연행하고 전승하는 거점이다. 이 조직을 중심으로 개개인은 연등회를 준비하고 연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등회 관련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전승한다.

연등회 연행과 전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조직이 연등회보존위원회다. 주로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연등회보존위원회는 전국적으로 연등회 관련 지식과 기술 공유의 매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정 지역 혹은 특정 공동체에서 창안한 유의미한 지식과 기술을 전국적으로 공유하고 연결하는 지원 조직이 연등회보존위원회다. 연등회와 관련된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전승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전통등 연구, 전통등 제작과 그 방식 공유, 연등회 경험의 지속적인 축적과 공유 등을 담당한다. 

서울 지역은 물론이고 전국적 차원에서 연등회를 체계적으로 전승하는 데 연등회보존위원회가 힘쓰는 것이다. 

 

화합과 공감의 젊은 축제

연등회 참여자들이 만들어내는 연등회는 화합의 장이다. 종교적 의례로 참여자들은 정신적 일체감을 느낀다. 동시에 함께 등을 만들고 행진하면서 공동체적 일체감을 재확인한다. 그 일체감은 가장 느린 사람의 보폭에 맞추어 행진하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연등회 행렬의 움직임이 다소 느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 함께’, 이것이 연등회의 정신이다. 대동놀이에서의 어우러짐은 연등회 정신의 구체적인 구현이다. 나라, 인종, 세대, 종교가 달라도 다 함께 어우러지는 화합의 장을 연등회가 만든다. 

일반적으로 연등회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장이 된다. 바람 불면 바람 앞에서 등을 밝히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등을 밝히며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나누었다. 힘든 시기에도 연등회는 진행됐다. 연등회를 통하여 마음을 하나로 모아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연등회가 사회와 교감을 바탕으로 하는 행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1998년 외환 위기로 온 국민이 좌절하고 있을 때는 ‘다시 일어섭시다’라는 구호로 용기를 북돋웠다. 2014년 세월호 사고로 온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 빠졌을 때는 흰색 추모등과 만장 등으로 ‘국민의 슬픔을 나누고 희망을 함께 모으는 연등회’를 만들었다.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국인과 함께해 온 문화유산이 연등회이다.

연등회에서는 남녀노소가 제각기 능동적으로 자기 역할을 한다. 특히 연등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여성과 어린이의 적극적 역할이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춤추고 노래하며 참여한다. 예로부터 사월초파일은 어린이 축제이자 여성 축제날이었다. 그러한 흐름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개성이 발휘되는 장이 연등회이기도 하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연등회를 이끌어 온 주체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창의적으로 등을 만들고 등 수레를 끌며 연등회의 중심 역할을 자임한다. 연등회가 살아 움직이는 유산이자 생동감 있는 축제로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마다 새로워지는 연등회의 원동력은 남녀노소가 능동적으로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서 나오는 셈이다.

 

젊은 축제의 개방성과 포용성

연등회에 대해 한 참여자는 “무신론자이건 스님이건 히잡을 쓴 무슬림이건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즐겼다”라고 말했다. 연등회가 개인, 지역, 종교, 국가 등을 넘어선 화합을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연등회는 불교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특정 개인, 공동체, 국적 등을 문제 삼지 않는다. 연등회에는 태국, 스리랑카, 몽골, 일본, 인도 등의 국적을 가진 개인이나 공동체가 참여하여 자신들의 문화를 알린다.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성을 연등회가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연등회 행렬에는 신체적 조건 때문에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도 참여한다. 불리한 신체조건으로 어려움을 겪는 그들을 좋은 자리에 위치시키고, 행렬의 보폭 역시 그들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연등회에는 이주 노동자, 다문화 가정을 위한 부스도 설치되어 고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연등회는 ‘차별 없는 세상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지향을 실천한다. 부처님은 우리가 모두 이 세상의 주인공이며 하나같이 존귀한 존재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왔다고 한다. 연등회는 이렇게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을 되새기며 실천한다. 

연등회에는 규모가 크고 풍족한 단체와 소규모의 단체가 공존한다. 하지만 규모가 크고 풍족한 단체라 해서 화려하고 큰 등을 만들어 뽐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껏 등을 만들고는 소규모 단체와 나눈다. 연등회는 과시하며 혼자 노는 장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장이기 때문이다. 상호 배려와 조화는 지역 간에도 나타난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의 연등회 경험과 지식을 중소도시나 작은 마을과 공유한다. 과시와 경쟁을 지양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연등회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연등회이지만 절제와 배려가 돋보인다. 

젊은이들이 개성을 발휘하는 장이 연등회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연등회의 주체는 젊은이들이다. 

 

연등회를 바라보는 유네스코의 시선

2020년 12월 유네스코는 연등회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했다. 유네스코 결정은 연등회가 인류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서 살폈듯이 연등회는 의식과 놀이가 어우러진 축제이다. 등 제작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전통공예의 요소도 갖고 있다. 사회구성원이 다양한 불교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연등회에서 마련된다. 국적, 인종, 종교, 장애 등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례가 연등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연등회가 갖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다. 

연등회 공동체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연등회 공동체는 다양하고도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연등회 연행공동체는 정체되지 않는다. 연등회는 공동체에 의해서 재창조되고,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천년 넘는 오랜 역사를 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생동감 있는 축제가 되는 이유다. 연등회는 ‘오래된 젊은 축제’인 것이다. 그 오래된 젊은 축제가 만들어내는 화합과 공감의 장, 그리고 개방성과 포용성의 구현 역시 유네스코가 연등회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유다. 

유네스코에서 연등회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주목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등재 결정문에서 유네스코는 ‘등재가 어떻게 무형유산 전체의 가시성 확보와 무형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사례가 될 수 있는 잘 준비된 신청서를 제출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무형유산의 중요한 속성이라는 점’과 ‘일반적인 연례행사가 무형유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연등회가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이는 연등회를 주목하는 유네스코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를 말해주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유네스코가 높이 평가한 두 번째 사항은 ‘연등회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이후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보호조치를 제안한 점’이다. 연등회 등재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으로 ‘화려하고 돋보이는 것 중심의 강조’, ‘연등회의 획일화와 지역 간 경쟁’, ‘전문적 기·예능 전승의 약화’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연등회 연행과 전승의 핵심 주체가 ‘무소유’, ‘베풂’, ‘나눔’ 등을 핵심적 실천 과제로 삼는 불교 공동체라는 점은 부작용의 가능성을 낮게 만든다. 그런데도 의도하지 않거나, 혹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의 대처 방안에 유네스코는 주목했다. 이 역시 연등회 전승의 미래와 관련해서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연등회의 미래를 위한 첫걸음

연등회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할 것을 결정하면서, 유네스코는 두 가지 사항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모범사례’라는 칭찬까지 곁들였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유네스코가 높이 평가하고 주목한 사항은 연등회 전승의 이후 과제다. 구체화해 본다면, 연등회 공동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유네스코가 주목하는 것 사이의 간극에 대한 점검, 전승 환경의 안정화, 전수 교육의 체계화, 연등회 가치와 의미의 천착과 확산, 지역과 공동체별 특성에 맞는 지원과 관리의 다원화, 연등회 관련 단체 간의 교류와 협력망 구축, 전국 연등회 현황 모니터링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정리해놓고 보니, 이후 과제의 부담감이 만만치 않다.

이 과제에 대한 해결은 연등회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 연등회 등재 전후에 보여준 국민의 관심과 유네스코의 찬사에 화답하는 길이기도 하다. 관심과 찬사에 화답하고 연등회의 밝은 미래를 위한 첫걸음은, 아직도 다 포착하지 못한 전국의 다양한 연등회를 정리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특히 한적한 사찰이나 작은 지역 공동체의 연등회에 주목해 보는 것이다. 이는 연등회의 연원이라 할 수 있는 ‘빈자일등(貧者一燈)’ 정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평범하고 관례적인 것으로만 생각했던 행위들의 무형유산적 가치를 재인식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서울 중심부에서 거대하게 벌어지는 연등회와는 또 다른 독특함을 보여줄 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곳에 존재하고, 그 탄생을 기념하는 행위도 두루 존재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허용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가면극, 인형극, 굿, 농악 등 한국 전통연희 전반에 관한 연구에 전념해 왔다. 최근에는 한국의 무형문화유산 정책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관련 연구로까지 관심 영역을 확장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전문위원이자 한국민속학회 부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