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선심시심

2007-09-16     관리자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로학난성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춘초몽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이추성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도다.
한 치의 광음도
헛되이 보내지 말지어다.
못 둑에 풀포기 솟던 봄꿈도
아직 깨닫지 못했는데,
섬돌 앞, 오동나무 잎에
벌써 가을 바람 소리가 들리는구나.

이 주문공(朱文公)의 권학(勸學)의 시는 거의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다시 여기 소개하는 것은 바야흐로 등화가친의 계절에 이르러 나태에 빠진 자신을 일깨우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등불을 가까이하여 글을 읽는다는 가을, 얼마나 시적인 계절인가. 장장추야(長長秋夜)에 양 량(凉凉)한 기후. 우리의 정신을 살찌기에 이보다 더 좋은 철이 없을 것 같다.
가을이라고 결코 한가한 시즌은 아니다. 어쩌면 수확하기에 더욱 바쁜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주로 밤을 이용해 공부를 했다. 주경야독이라는 표현이 이를 자 설명하 고 있듯이 고금을 통해 우리의 삶이란 원래 낮에 책만을 읽고 있을 만큼 그렇게 여유로운 것은 아니지 않는가. 뜻이 높으나 생활이 빈핍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동진(東晉)의 차 윤(車胤)이나, 손강(孫康) 같은 학자의 사례에서도 이것을 알 수 있다.
낮에는 책을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고 밤에도 집이 가난하여 등유를 구하지 못해서 망 속에 개똥벌레를 잡아 넣어 그 빛으로 독서를 즐겼던 소년 시절의 차윤, 손강 역시 젊어서 눈(雪) 에 비치는 달빛을 이용하여 글을 읽었으니, 후세에 이것을 기려 형설(螢雪)의 공이라는 고사 (故事)가 생기게끔 되었다. 게다가 이 두 사람으로 말미암아 가난한 집에서 학자가 난다(文章出於困窮)는 격언도 입증이 된 셈이다. 전자는 이부상서(吏部尙書)에 후자는 어사대부(御史大夫)에 각각 높은 벼슬에 올랐으니... .
이 시가 경계하고 있듯, 시간의 허비만큼 인생을 기울게 하는 것은 다시 없다. 무한한 시간 의 흐름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는 자주 반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 문이다.
세상 만물은 시간 속에 내재해 있어 사람 또한 그 한정 속에 산다. 하지만 어떤 이는 그 제약 속에 묶이고 어떤 이는 그 속에서도 자유롭다. 그것은 한말로 기회의 포착여부에 달려 있다 하겠다.
삻ㅁ에 충실하다는 것은 때와 곳을 외면하고 있기 어렵다. 적시(適時)를 놓치고 당처(當處) 를 잃는다면 가을이 와도 제대로 열매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니까.
만고의 역사가 오늘에 있어야 하는 것은 잘못이 거듭되지 않기 위해 필요하고, 선각자의 가 르침이 요긴한 것은 길을 처음 떠나는 이들에게 지침이 되기 때문이다.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성년부중래 일일난재신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급시당면려 세월부대인

젊음은 두 번 오지 않고,
하루에는 새벽이 다시 오기 어렵다.
때에 이르러 마땅히 노력할진저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 법.

도연명의 잡시(雜詩) 가운데 한 수. 12구 중 단장취의(斷章取義)한 마지막 4구이다. (12구로 구성된 전체로 볼 때에는 권학의 뜻과 어긋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끝부분 4구만을 잘라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우는 교훈으로 통용되게 되었다.)
자기 논의 돌피를 뽑기에 앞서 남의 밭에 깜부기를 지적하듯, 자기 발밑은 살피지 않고 한 눈만 팔고 세월을 허송하는 그런 이들을 위해서도 광음은 역시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