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덕 칼럼]길 떠날 준비

2007-09-16     관리자


묵은 유행가 가사처럼 '인생은 나그네 길' 이라고 할 때 상당히 감상적인 말로 들릴 수 있 다. 그런데 실상 80고개를 눈앞에 둔 늙은이 심정으로 비록 지금은 건강해도 '죽음'이 남의 일 이 아니고 당면한 나의 일이기 때문에 감상에만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죽는 그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마음 의 자세 같은 정신적인 문제와 더불어 신변정리와 같은 실제적인 문제를 생각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우선 빚(負債)은 다 갚아야 하고, 상례(喪禮) 같은 사후(死後) 처리 문제도 할 수 있는 대로 대강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다.
빚이라고 할 때 꼭 물질적인 부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해야 할 의무도 다 못했으면 빚이고, 내가 받은 남의 후의(厚誼)와 은혜도 갚지 못했으면 빚이다. 사후처리 문제란 요즘 같이 전통적인 관습이 허물어지고 여러 가지 상례풍속이 난립하는 가운데서는 자손들에게 바라는 바를 명시해 두는 것이 편리할 것 같다.
며칠 전에 미국에 살고 있는 큰 아들이 직장 일로 한국 출장을 나왔다. 마침 하안거가 해제 되어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세 아들이 다 모이게 되었다. 나는 이 기회에 상례와 관계된 몇 가지 문제를 유언삼아 일러두었다.
이 일은 누구나 당하는 일이고, 불교적 가르침으로 보면 죽음이란 크게 야단스럽게 떠들 일 도 아니다. 나고 죽음이 바닷물에 물방울이 생겼다가 다시 바닷물로 돌아가는 연기연멸(緣起緣滅)의 현상일 뿐이니 임종석에서 소리내어 통곡하며 떠나는 사람 정신 헛갈리레 하지 말라는 부탁부터 시작했다.
두 번째로는 장의(의식)절차는 불교식으로 하는데 수년 전에 제자가 부친상 만났을 때 나와 언약한 바가 있으니 거기 연락해서 적에서 집행하도록 부탁하였다. 그리고 화장(火葬)하기를 바란다고 일렀다.
그 다음에는 장지(葬地)문제인데, 이미 화장하여 재가 된 후이니 산천이나 연고지에 뿌려도 되지만, 남은 자손들의 결속이나 화합을 위해서는 장지를 한군데 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화 장하였으니 하토(下土)하여 묻을 봉분(封墳)이 없으므로 어떤 형태의 표지물을 세워야 한다.
여기에 이르러 이름난 스님들이 돌아가신 뒤에 그 유골을 안치하여 세우는 둥근 모양의 돌 탑 부도(浮屠~浮圖 Stupa)가 생각났다. 우리 속인이 그 모습을 그대로 본딸 수는 없지만 그 러한 탑을 세운다는 착상은 요즘 탑 공원묘지(塔公園墓地)가 생겨서 선보이고 있다.
장지문제에서 또 한 가지 생각할 일은 이런 탑모양이든지 또는 비석이든지 한 사람이 한 자 리를 차지하는 것은 국토(國土)관리면에서 봉분을 만드는 것에 버금하여 낭비가 아닐까 싶 다. 그래서 절에 납골당(納骨堂)을 세워서 그곳에 안치하는 방안이 등장한 것으로 생각한다.
('납골당'이라는 명칭은 너무 '노골적'이라 다른 이름은 없을까)
이제 앞으로는 불교도뿐 아니라 화장은 국토관리상 일반 사람들에게도 보편화될 것으로 생 각하는데, 위에든 두 가지, 탑식 분묘와 납골당 처리가 성행할 것으로 보인다.
탑식 묘지와 관련해서 생각나는 것은 내가 본 일본의 스루가(駿河)지방의 묘지 제도이다. 그 마을에서는 화장은 안 하고 매장(埋葬)을 하는데 한 사람이나 한 가족 단위의 선산과 같은 장지에 묻는 것이 아니라, 마을 들판 한 귀퉁이 2백여 평 정도 넓이의 땅에 마을사람 누구 나 죽으면 묻히는 것이다. 아무개가 묻혔다는 표시도 없고 모양이 무덤처럼 된 것도 아니니 밭에다 시체를 차례차례 묻어 버린다고 할 한하다.
그 시체를 '삼마이'라 했다. 불교용어 삼매(三昧)에서 온 말이며 영혼이 떠난 육체는 사대 (四大)니 지.수.화.풍(地.水.火.風) 즉 물질로 돌아가는 것이니 그야말로 물질이 되어버린 고기 덩어리 시체는 그렇게 버려도 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소중한 것은 육체를 떠난 영혼이다.
그 영혼은 절에 모시는데, 절 뒷뜰에는 마을사람들의 집 단위(家單位)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 면(面)에는 '00가(家) 지(之) 묘(墓)'라고 새겨져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비석이 아니 라 한 집에 하나의 비석이니, 할아버지, 아버지, 형제 자손 모두가 그 한 비석 밑에 혼백지 를 사룬 재나, 전쟁에 나가 전사하더라도 화장한 그 재를 비석 밑에 묻는다 했다.
그 절은 보다이지(菩提寺)라 하여, 그 마을 사람들의 사후관리 전체를 맡고 있는 것이다. 망 자의 장례의식과 또 그 후에 오는 기(忌) 제사와 해마다의 우란분재(盂蘭盆齋)와 같은 천도 공양재까지 일체를 절에 맡겨 행하는데 죽은 후 99년 동안 보살핀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불 교가 일본고유의 신도(神道)보다 거의 국교(國敎)처럼 되어 있는 까닭을 알 만하다.
불교도로서 나의 죽음을 생각해 보았는데, 화장하여 탑식묘지로 한다는 것은 합의를 보았으 나 구체적으로 '어디에'라는 장소 결정은 자손들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였다.
화장제도는 다른 종교에서도 차츰 접근해 오고 있는 줄 알고 있다. 또 이미 선산(先山)을 가 지고 있는 '기득권'층도 묘지기를 두고 관리할 현실적 여건이 안 되고, 자손들이 고향을 찾 아와 관리하기에는 힘에 겨운 현실이라 조만간 변동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탑식묘지를 생각할 때 '한 사람 한 탑'의 형식이 아니라 '한 집(家) 한 탑'식으로 하는 것이 국토관리상 바람직하다는 것이 거듭 강조하고 싶은 나의 의견이다.
앞에서 일본의 보다이지 뒤뜰 묘지의 경우, 한 집 묘지로 한 평(坪) 정도의 면적이었으며 마을사람 집집마다 다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으니 이 마을의 공동묘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았다. 특별히 남보다 큰 면적도 없고 모두 일정한 크기로 하면 우리가 사후에 평등한 세계로 간다는 실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절과 신도 사이의 관계를 밀접하게 묶어 주는 구실을 이 사후(死後)관리제도가 얼마나 튼튼하게 해주느냐, 불교(절)의 장래를 위해서도 깊이 고려해야 할 문제다.
세워 놓는 표적물이 비석이냐 탑이냐 하는 것도 불교계가 생각해야 한다. 탑이 어원도 부도 와 한 가지로 범어'Stupa'에서 온 말인데 '불골(佛骨)을 모시거나 공양.보은(報恩)을 하거나 혹은 영지(靈地)를 나타내기 위하여 세우는 고층 건축물'이라고 사전에 풀이되어 있으니 우 리네 속인이 자기 묘 대신으로 '탑'을 세운다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 있다. 이 미 탑공원묘지의 발상이 있었으므로 거기에 준하여 생각을 펴 본 것인데 물론 비용은 비석 보다 더하나 아름답기는 탑쪽이 수승함은 두말할 것이 없다.
다음에 자식들에게 내가 그들을 키우면서 내 정성을 다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그 들이 입는 옷을 한번도 해주지 못한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당황함을 느꼈다. 어렸을 때는 형제 내리물림으로 입히려고 헐렁한 모양새 없는 옷이지만 손수 만들어 입혔지만 학교 다니 고 나서부터는 평생 내 손으로 옷 한 벌 지어 입히지 못했으니 이래가지고도 '어머니' 노 릇을 했다고 저승에 가서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아들이 귀국하는 날짜에 맞추어 나는 그를 위해 옷 선물 하나를 준비 할 수 있었다. 마침 낡은 손재봉틀이 있어서 몇 년만에 돌려보니 어제 쓰던 물건처럼 잘 돌아간다. 여름 더위에 입을 보시 적삼을 만들었는데 부산에서 보살 한 분이 마름질에서부터 몸체에 깃 달기, 깨 끼로 도련 하는 것까지 거의 다 만들어 주어서 완성 한 것이다. 나는 차례로 노트에 옷 만 드는 순서를 기록하면서 조수노릇을 하고 단춧구멍은 바늘 한 땀 한 땀 얌전하게 구멍을 뚫 어 완성하니 신기하고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큰아들 옷을 만들고 나니 둘째, 셋째의 옷도 공평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메모해 둔 노 트를 펼쳐 놓고 열심히 들여다보며 끙끙거렸다. 이것도 완성되어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다른 이들에게 구경를 시켰더니 '작품'이라고 칭찬해 주는 바람에 더욱 신이 났다. 이렇게 윗도리 셋은 만들었으나 그 짝이 되는 고의(袴衣)가 없어 대구에서 지은 한산모시 회색고의 와 제주도에서 감물 들여 만든 갈옷(枾衣)을 구하여 짝을 맞추니 훌륭한 여름 고의 적삼이 되었다.
이것으로 내가 다하지 못한 모든 나의 의무를 면죄해 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직 며 느리들과 딸에 대한 '빚'은 갚지 못했는데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이 세 벌 만들기도 있는 힘을 다 했으니 말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