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 구

나의 인연이야기

2007-09-16     관리자

2월 중순. 석모도 부둣가에 해가 기운다. "누구 재주 있으면 저 해 좀 붙들어." 스텝들 늦장 에 조명 감독의 요령 있는 채근이다.
'느낌' 이라는 TV드라마로 알려진 어린 여배우 우희진 양은 퍼렇게 얼어 바다 속으로 지 는 해를 보고 있다. 그런 모습을 아프게 바라보고 있는 여배우인 나. 우리는 극중에서 둘 다 병든 모녀 사이다.

모; 나 때문이라면 당장 돌아가. 에미는 다 산 목숨인데 뭘 더 바라겠어.
딸; 싫어 엄마, 난 이제 누가 떠밀어도 이 섬을 안 떠나 죽어도 안 떠나.
(둘은 끌어안고 운다.)

도란이와 단비를 캐나다에 보내고 마음이 공중에 떠 있을 때 의학 드라마 출연 요청이 들어 왔다. 잘된 일이라 선뜻 답하고 차를 강화도로 몰아왔다. 외포리 포구에서 주민등록증을 제 시해야 승선권을 주었다.
아주 중요한 곳, 외딴 곳으로 가는 기분이 들었다. 후진으로 차를 운전해 자동차를 탄 채 배 를 타는 것도 처음이라 재미있었다. 끼룩... 끼룩 하얀 갈매기가 외포리에서 석모도로 가는 철부선을 에워싸고 따라다녀 승선객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나도 차에서 나와 두 팔을 하늘 로 쭈욱 뻗어 보았다.
섬, 바다, 바람, 갈매기, 바위, 그리고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마지막 모구를 향해 가고 있는 한 중년여인을 재료로 그림을 그린다면? 아니다, 아니다. 그보다 히치코크의 영화 기법으로 갈매기 떼를 이용해 음산하게 풀어 보자.
얌냠 미로 속을 헤매는데 누군가 "손님, 안 내리실랍니까?" 해서 김이 확 샜다. 미로, 인생 의 미로.
그 속에서 나와 나를 보는 재미가 짭짭해 예까지 온 뱃길을 돌아보았었다. 강화 대교를 건 너 제일 먼저 갑곶 돈대를 만났다. 조선조 고종 때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으로 프랑스의 로 스 함장이 7척의 함대로 강화도에 상륙했다가, 40일 만에 조선군의 반격으로 피했다는 ' 병인양요'를 떠올려 보았다.
역시 고종 8년(1871년)에 대동강에서 불 살겨진 제너럴 셔어먼호에 대한 추궁 구실로, 미국 군함 3척이 강화해협에 침입해서 통상조약을 맺고자 했다가 우리 군사들 모두 전사하고 미 군이 승리했으나 우리 군사들의 사기에 꺾여 달아났다는 '신미양요'의 덕진진, 초진진, 광성 보의 전적지를 돌아보았다.
외포리 서쪽 포구에서 배를 타고 한 10분(?) 정도 만에 석모도에 와 있는 나. 120여 년 전 이나 지금이나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인데, 석모도 포구에 서서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하고 있는 나의 근원은 병인, 신미년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었을까.
만고풍상을 다 겪어 낸 석모도 낙가산 중턱 보문사에 계신 부처님은 아실까? 신라 선덕여왕 4년부터 서해를 내려다보고 계셨다니 1300여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모든 것의 뿌리를 아실까. 잠시 후 내가 당신 아래 엎드려 있을 것까지... .
부처님, 저는 성당에 다니는 마리아 보살입니다. 종교의 이치를 따지고 불보살을 가르지 마 십시오. 어디든 들어앉아 가슴에 손을 얹을 곳이 필요했으니까요. 이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섬의 전망이 좋군요. 염전뚝길과 바다, 소나무 숲이 서해의 낙조와 함께 매우 아름답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바닷가에 절을 짓는 멋쟁이였나 봅니다.
저는 조금 전 파도가 몰려 와서는 바위에, 모래밭에 하얀 거품으로 죽어버리는 것을 보고, 한낱 터럭 같은 인간의 목숨이나 진배없다는 허무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바다와 나와 우주 와 나, 나와 우주와 나와 바다는 결국 같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보문사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산나물을 파는 아주머니들을 보며 어쩌면 신미. 병인년에 내가 다른 얼굴로 저 자리에 앉아 있었을는지도 모른다는 답을 만들었구요. 제가 물거품처럼 스 러져 없어져도, 제 두 딸과 또 그 얘들의 자식들과 저는 끊이지 않고 연면히 살아가겠지요.
범아일여라. 여행자의 여수가 스스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가 봅니다.
이제 편한 마음으로 일터에 가 자궁암 말기로 죽음에 맞서고 있는 평범한 중년여인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