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춤의 구도 여정 50년_안무가 김복희

반세기 동안 불교·춤이 지은 집에 만 가지 덕을 쌓고 풀다

2021-04-26     최호승
안무가 김복희.

만 가지 덕을 쌓은 집 만덕장(萬德藏). 마당 곳곳에 돌부처가, 거실 곳곳에 불상 그리고 옆에는 향꽂이가 놓였다. 때가 묻은 향꽂이엔 언뜻 봐도 한두 개 향을 다 태운 재가 쌓였다. 매일 불상 앞에서 향을 공양한다는 오랜 증거다.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이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오랫동안 만덕장에서 함께 해오고 있다. 만덕장 거실에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신비로운 존재, 꼭두가 곳곳에 놓였다. 꼭두란 우리나라 전통 장례식 때 사용하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이다. 그래서일까. 거실 한쪽에는 커다란 상여도 자리했다. 

만덕장에는 특이함이 가득했다. 죽음 관련 물건들이 있었고, 익살스러운 꼭두의 이목구비도 제각각이었으며, 좌우 상하가 정비례하지 않고 3등신이거나 삐딱한 자세로 선 불상이 모셔졌다. 균형미나 조화미보다는 비대칭이 자연스러웠다. 집주인은 비대칭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단다. 정형화되지 않아서 아름답다는 것. 또 무대라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 무용을 구현하느냐가 작품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만덕장은 안무가 김복희(73)의 집이다. 그는  3월 5~7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김복희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공연을 올린 뒤 만덕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가 반세기 동안 걸어온 길을 그를 닮은 만덕장에서 더듬어봤다. 

안무가 김복희의 집 만덕장에는 불상과 꼭두 그리고 상여가 놓여있다. 사진 최호승.

 

노장? 창작열로 신작 <우담바라> 선봬

“미국 현대무용의 개척자인 마사 그레이엄은 92세에 별세했던 그해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다. 현대발레의 혁명가인 모리스 베자르는 2007년 80세로 별세하기 두 해 전에도 신작을 냈다. 나도 ‘한국적 현대무용’이라는 끝이 없는 길을 힘닿는 데까지 가볼 생각이다.”

김복희 안무가가 저서 『춤으로 삶의 집을 짓다』에 직접 쓴 말이다. ‘한국적 현대 무용가’로 불리는 그는 희수(稀壽, 70세)를 넘긴 노장이다. 그러나 현역이다. 

그는 최근 남지심 작가의 장편소설 『우담바라』를 현대무용 <우담바라>로 재창조해 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공연 무대에 올렸다. 3일 동안 총 3번 무대에서 공연한 <우담바라>에 칭찬이 쏟아졌다. 원작 작가는 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공연 관람 후 그에게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전했고, 유희성 서울예술단 이사장은 이 기념공연에 이런 평을 남겼다. 

“평소 그와의 예술적 동반자인 제자들과 후학들이 함께해, 그 돈독한 인연의 축제처럼 빚어진 무대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특히 <우담바라>에서 바라춤의 깊은 기량과 내적 에너지, 인간적 번뇌와 인연, 다음 세대에 대한 소박한 바람까지 몸과 마음에 담아 춤추고 연기하는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깊은 잔향이었다. 또 시를 낭송하는 내레이션까지 완벽하게 낭독하여 작품에 집중하게 했다.”

“미국 현대무용의 개척자인 마사 그레이엄은 92세에 별세했던 그해 서울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다. 현대발레의 혁명가인 모리스 베자르는 2007년 80세로 별세하기 두 해 전에도 신작을 냈다. 나도 ‘한국적 현대무용’이라는 끝이 없는 길을 힘닿는 데까지 가볼 생각이다.”

 

초연작도 불교, 50주년 신작도 불교

『우담바라』는 안무가 김복희가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생각한 작품이다. 김복희는  23세이던 1971년 불교적 사유의 <법열의 시>를 창작, 발표했던 초심으로 춤을 만들었노라 고백했다. 

그는 『우담바라』를 80년대 후반 출간 당시 읽고, 무용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읽고, 대사를 만들고자 또 읽었다. 현대극무용 <우담바라>는 소설의 이야기가 기본 골격이지만 이야기 형식으로 이어가지 않고, 부분 부분을 강조해서 마치 여러 장의 그림처럼 표현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관계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감정의 충돌을 표현하며,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무한정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우담바라>는 인생의 늪에서 살아가는 채련, 동미, 한태서 등 등장인물의 감정과 갈등이 드러나는 1장 ‘삶의 늪’, 다른 가문의 피를 지키기 위한 이 씨 할머니를 중심으로 이미지를 끌고 간 2장 ‘타들어 가는 香(향)’, 삶의 고통이 있는 곳에서도 순결한 사랑이 싹트고 지효를 사랑하는 봉두의 마음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목각으로 사랑과 이해의 화합을 보여준 3장 ‘가슴 속 가슴’, 화합과 사랑 그리고 불교적 윤회의 의미를 담은 4장 ‘울림’으로 구성됐다. 

“불교적 작품을 오래하다 보니 『우담바라』도 춤으로 가능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무용은 추상성과 상징성이 많은 장르라서 연극처럼 대사로 내용을 이해시키기 어렵죠. 항상 춤은 시적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시적으로 그려낼까 고심했고, 대사도 적절히 배치해서 관객의 이해를 돕고 싶었어요.”

3,000년 만에 한 번 핀다고 하는 귀한 꽃, 우담바라. 그는 우담바라가 뭘 의미하는지 곱씹었다. 답은 불이(不二)였다. 

그는 “결국 인간”이라고 했다. “윤회하는 중생인 우리는 언젠가 어디선가 그대의 우담바라로 피는 꽃일 수 있다”며 “우리는 우담바라를 피우기 위한 존재일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현대 무용가로서 그의 첫 안무작이었던 <법열의 시>가 불교적이었던 게 우연이 아니라는 증거다. 단순히 무용단 창단 50주년을 숫자로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 아니다. 평소 안무 철학이 담긴 작품이다. 

“불교적 작품을 오래 하다 보니 『우담바라』도 춤으로 가능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무용은 추상성과 상징성이 많은 장르라서 연극처럼 대사로 내용을 이해시키기 어렵죠. 항상 춤은 시적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시적으로 그려낼까 고심했고, 대사도 적절히 배치해서 관객의 이해를 돕고 싶었어요.” (김복희무용단 사진 제공)

 

문학 모티브로 ‘한국적 현대무용’ 열다

“무용을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구성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관객 이해를 돕기 위해 무용에 극적인 요소를 배치하기도 하죠. 제 작품은 극적인 요소를 강하게 표현하는 극무용, 시적 감성이 들어간 시극무용이에요. 그래서 소설이나 시 등 문학과 예술 작품을 많이 참작하지요.”

70여 편이 넘는 ‘한국적 현대무용’을 창작해온 안무가 김복희는 시, 소설, 그림 등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안무를 고안했다. 대표작으로 이광수의 소설 ‘꿈’을 원전으로 한 <꿈, 탐욕이 그린 그림>, 스페인의 저항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동명 희곡을 춤으로 연출한 <피의 결혼>,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를 읽고 창작한 <천형, 그 생명의 수레>, 서정주 시인의 시 ‘신부’에서 착안한 <삶꽃 바람꽃-신부>가 있다. 

‘한국적 현대무용’으로 불리는 김복희의 작품 모티브에는 국외 작품도 여럿 보인다. 김복희의 독특함과 신선함은 여기 있다. 그는 한국의 정서를 전혀 어색하지 않게 안무에 녹여냈다. <천형, 그 생명의 수레>에서 꼽추 콰시모도는 사찰의 볼목하니로, 집시 에스메랄다는 남사당패 어름사니(줄을 타는 줄꾼)로 분했다. 원작에서 끊어졌던 둘의 인연은 <천형, 그 생명의 수레>에서 죽음 뒤 윤회를 거쳐 다시 만난다. 

“서양적이고 현대적인 것을 보고 세련되고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한국적인 것을 끄집어내면 ‘촌스럽다’고 하고요. 하지만 한국적인 작품도 그걸 만든 저 자신도 전혀 촌스럽지 않았어요.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에요. 오늘의 우리 춤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죠.”

국외의 작품들이 한국 정서를 잘 반영했다면, <삶꽃 바람꽃-신부>는 그의 독창성이 번뜩였다.

시 ‘신부’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초록 저고리와 다홍치마 입고 첫날 밤을 기다리는 신부를 음탕하다고 오해한 신랑은 그 자리를 떠났고, 수십 년 뒤 같은 장소를 찾은 신랑은 그 자리에 고스란히 앉은 신부를 발견했는데…. 어깨를 어루만지니 신부는 재가 돼 폭삭 내려앉았다. 

첫날 밤 신랑의 오해로 버림받은 여인의 한을 어떻게 그렸을까. 종이로 만든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각시탈을 쓴 김복희는 남성 무용수가 가면을 앞에 세워줄 때 저고리와 치마를 찢고 쓰러졌다. 관객은 일어나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피, 죽음, 윤회 그리고 불교

김복희의 작품에는 피, 인연, 죽음, 윤회 그리고 불교가 관통한다. 그는 ‘한국적 현대무용’ 속 ‘한국적인 것’을 불교에서 찾았다. 첫 작품 <법열의 시> 이후 <흙으로 빚은 사리의 나들이>, <향>, <요석, 신라의 외출>, 에밀레종을 소재로 한 <뒤로 돌아 이 소리를>, 선을 주제로 한 <아홉 개의 의문, 그리고> 등에서 불교적 소재와 이미지를 ‘한국적 현대무용’으로 구현해왔다. 

“삶과 죽음은 같이 있는 거 아닌가요? 우리가 가는 길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죠. 그런데 죽음이 끝은 아니에요. 우리, 중생은 윤회해요. 사랑하는 이가 떠났지만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일이 잖아요. 저와 인연 맺은 모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불교는 한국의 정서이자 뿌리이자 문화이죠. 종교로만 받아들인다면 그 예술가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이런 생각을 작품에 그대로 투영했다. 대표적 레퍼토리 <피의 결혼>은 한 여자와 두 남자 사이의 사랑과 죽음을 비극적으로 그렸다. 한국의 전통혼례와 이미지를 접목한 춤으로 표현했고, 별처럼 식장을 나서야 할 신부는 피의 길을 걸었다. <우담바라>에서는 피의 질긴 인연을 상징한 빨간 천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인을, <꿈, 탐욕이 그리는 그림>은 조신 대사가 여인 달례를 통해 벗어나기 힘든 인간 본능의 굴레를 초월하는 내용을 표현했다. 안무가 김복희에게 불교는 삶이자 집이었다. 

“제게 불교와 춤은 집이자 삶 그 자체에요. 불교와 춤이라는 큰 집에서 반세기 넘게 살았네요. 삶을 돌아보니 불명대로 사는 것 같아요. 춤이라는 하나의 길을 걸으며[一印行], 눈 내린 바다 위 달[雪海月]처럼 살았어요.”

 

“춤추는 교수 왔구나”

“춤추는 교수 왔구나.” 성철 스님이 김복희를 만나면 늘 반갑게 건네던 인사였다. 불심 돈독한 어머니 손을 잡고 툭하면 큰스님을 친견하고, 절에서 방학을 보내던 어린 소녀가 지금의 김복희다. 효봉, 구산, 금오 스님 등 근현대 한국불교의 어른과 인연이 두터운 그다. 효봉 스님은 같은 무자년생이라며 ‘동갑이’라 불렀고, 금오 스님은 어린 시절 김복희에게 큰 눈깔사탕을 어김없이 내어줬다. 구산 스님에게는 불명 설해월(雪海月)과 만덕장(萬德藏)을, 성철 스님에게 불명 일인행(一印行)을 받았다. 

그는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서 법정 스님을 뵀던 날을 잊지 못한다. 해가 진 어두운 암자에서 화장실 가기 무서웠던 선배는 몇몇과 함께 다녀왔다. 이때 법정 스님의 짧은 한마디가 그에게 성성한 법문이자 화두로 남아 있다. “현 상황은 그대로인데, 조금 어두워졌다고 그렇게 무서운가요?” 대상은 제 자리에 그대로이고, 잠시 어두워진 것뿐인데 ‘무섭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쩔쩔 매는 마음을 꾸짖는 법문이었다. 

안무가 김복희에게 불교 그리고 춤은 삶일지 모른다. 그에게 불교와 춤의 의미 그리고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제게 불교와 춤은 집이자 삶 그 자체에요. 불교와 춤이라는 큰 집에서 반세기 넘게 살았네요. 책을 쓰고 있는데, 삶을 돌아보니 불명대로 사는 것 같아요. 춤이라는 하나의 길을 걸으며[一印行], 눈 내린 바다 위 달[雪海月]처럼 살았어요. 이제 만 가지 덕을 쌓은 저 자신의 집[萬德藏]에서 춤이든 정신이든 제가 가진 재능을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안무가 김복희, 그의 말마따나 불명대로 살어리랏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