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악선생시단(東岳先生詩壇)

사상의 고향

2007-09-16     관리자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26번지 동국대학교 내 소재

조선 중기의 문인 이안눌(李安訥)이 중심이 되어 당대의 명사들과 시모임을 가지던 장소 혹 은 시회(詩會)를 동악시단이라 하였다. 이에 관한 기록은 이안눌의 후손인 이석의<동강유고 (桐江遺稿)>에 실려 있는 동원기(東園記)에 있다. 이에 의하면 이곳에서 당시의 대표적인 시인들과 시를 짓고 풍악을 즐기면서 놀던 다락을 시루(詩樓)라 하였고 그 단을 시단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동원 마루터기 바위에다 시단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현손인 이주진 이 영조 초에 동악선생시단이라 새겨놓았다고 한다. 이 동원(東園)은 유득공의 <경도잡지> 에 기록되어 있듯이 서울을 내려다보는 신선의 고장이라하여 낙선방(樂善坊) 청학동(靑鶴洞)이라 불렸다. 동원에 드나들며 시를 통해 우정을 나눈 문사로는 정철의 제자였던 권필을 비롯하여 이호민, 홍서봉, 이정구 등이 있었다.
원래 동악선생시단이 새겨 있는 바위는 84년에 건립된 동국대 고시학사 자리에 있었다. 공 사중 자연 그대로 옮기려 하였으나 심한 풍화에 쪼개져 그 조각을 동국대 박물관에 보관하 고 있으며 이 비는 새로 이 동국대에서 세운 것이다. 동악시단은 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당 대의 문인 층 지식인들의 모임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시사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으며 같은 장소에 설립되어 있는 동국대가 특히 대대로 문학부가 성했다는 점에도 의미가 자못 깊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