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철학 시점] 돈은 똥! 쌓이면 악취, 흩어지면 거름

무소유와 풀소유 |

2021-03-30     이일야

무소유와 풀소유, 대립 관계인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아이콘 법정 스님의 스테디셀러 『무소유』에 나오는 구절이다. 오래전 이 말에 꽂혀서 20년 넘도록 실천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바로 세탁기 없이 생활하는 것이다. 물론 세탁기가 필요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수행으로 여기면서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문득 세탁기가 떠오른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손빨래를 고집하면서 살고 있다. 두꺼운 점퍼나 겨울 이불을 빨 때면 세탁기에 대한 유혹이 밀려오지만, 그때마다 ‘아 참, 이건 빨래가 아니라 수행이지!’ 하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 그 무슨 고집이냐는 주위의 지적도 있지만, 마음의 근육이 아직까진 잘 견뎌내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난해 풀소유 논란에 휩싸인 어느 스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 스님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가치 판단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사건 이후에 보인 스님의 태도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거들고 싶다. 사람이란 경계에 부딪혔을 때 진짜 모습이 보이는 법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밑천이 드러난다는 얘기다. 스님은 대중들의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변명도 없이 쿨하게 참회하고 출가자의 본분으로 돌아가 수행에 힘쓰겠다고 했다.

『중용』에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知恥近乎勇]”라는 구절이 나온다. 평소 부끄러운 행동을 많이 하는 중생이다 보니, 이 말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채찍질하고 있다.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만 아무나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용기다. 용기는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새롭게 살겠다는 발원이 있을 때만 작동하는 삶의 에너지다. 스님의 행위가 그 정도로 비난받을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중들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자기 성찰의 시간에 들어간 점만은 인정하고 싶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무소유와 풀소유’란 이야기가 대중들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두 단어는 서로 대립적인 관계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것의 반대편에는 뭔가 가득 채우고 있는(full) 상황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무소유의 반대말이 풀소유라 해도 딱히 반박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엔 뭔가 개운하지가 않다. 그래서 무소유와 풀소유는 과연 대립 관계일까 하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이를 살펴보았다.

철학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지적 활동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좀 더 합리적이고 타당한 대답을 찾아낼 수 있기에 생각하는 일은 철학의 기본 중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은 아무 때나 일어나지 않는다.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의 지적처럼 생각은 낯선 상황과 만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예컨대 평소 긴 생머리에 치마를 고집하던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만 입는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익숙한 상황이 아니라 매우 낯선 상황이다. 그때 사람들은 생각을 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처럼 낯선 상황과 만나게 되면 우리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이 좀 더 깊이 있는 사색으로 이어질 경우 잠자고 있던 삶[生]이 깨어나는[覺] 놀라운 체험을 할 수도 있다. 붓다를 출가와 깨침으로 이끈 것도 다름 아닌 낯선 상황과의 만남이었다. 평소 궁전의 좋은 환경에 익숙했던 젊은 싯다르타는 어느 날 성 밖을 나가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낯선 상황과 만나면서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잠자고 있던 그의 삶이 깨어나 출가를 하고 성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결국 중생 싯다르타를 깨친 붓다로 이끈 비밀이 생각(生覺)에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무소유와 풀소유가 반대말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낯설게 해보면 어떨까?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충분히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를 우리는 경전이나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불교는 돈과 관계없는 철학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일종의 편견임을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다. 그렇게 하면 찜찜했던 내 마음이 조금은 개운해질 것 같다.

 

“바보야, 문제는 집착이야”

겉으로 볼 때 무소유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소유는 마치 불교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이를 훨씬 더 철저하게 실천했던 종교는 다름 아닌 자이나교였다. 자이나교는 당시 불교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던 신흥종교였다. 자이나교의 사문에게 무소유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생명과 같은 계율이었다. 예컨대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소유물이기 때문에 사문들은 가질 수가 없었다. 민망한 일이지만 그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 교단이 분열하게 된 원인도 옷을 입는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무소유가 원칙이라 하지만 히말라야가 자리하고 있는 인도 북쪽에서는 생존을 위해 백의(白衣), 즉 얇은 흰색 옷을 입고 활동했다. 그러자 전통을 강조하는 따뜻한 남쪽 지역 사문들은 계율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결국 자이나교는 흰옷을 입는 백의파와 아무것도 입지 않는 공의파(空衣派)로 분열했다. 그들에겐 무소유가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자이나교의 분열을 보면 외형에 치우친 나머지 무소유에 담긴 실존적 의미를 간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많이 소유하고 있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면 무소유의 마음으로 사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진 것이 하나도 없지만, 소유의 욕망으로 가득하다면 무소유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무소유 여부는 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소유물을 바라보는 마음에 달린 셈이다. 특히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는 오늘날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물건의 소유 여부에 따라 존재 가치가 결정되는 순간 자신 역시 물건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인이고 소유물은 단순한 물건일 뿐인데, 주인과 노예의 자리가 뒤바뀌는 것이다. 무소유를 집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잠깐 집착이 일어나는 구조를 철학적으로 분석해보자. 그 시스템을 알아야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집착은 마음속 생각과 현실 사이의 간극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 간극이 넓으면 넓을수록 집착의 강도는 더욱 커진다. 예를 들어 평소 매우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해보자. 현실에서는 물건이 없지만[無], 마음에는 물건에 대한 영상이 아쉬움으로 진하게 남아 있다[有]. 아무리 쿨하게 잊어버리자고 다짐을 해봐도 자꾸만 잃어버린 물건이 생각나는 것이다. 이것이 중생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솔직한 모습이다. 생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이것이 집착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그리고 집착의 대상이 자신의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클수록 그 강도는 무한대로 확장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은 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돈도 이러한데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어떨까. 예컨대 어린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경우를 가정해보자. 자식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 엄청난 괴리와 간극이 집착을 낳는 것이다. 죽은 아이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 시신과 함께 생활했던 어느 어머니의 엽기적인 행동도 여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녀는 도저히 마음으로 아이를 보낼 수 없던 것이다. 집착의 결과는 곧바로 고통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괴로움은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서 기인하지만, 근원적으로는 아이의 부재를 마음으로 인정할 수 없기에 일어난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마음으로 아이를 떠나보내는 일이다. 그래야 생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다. 힘들고 잔인하지만, 고통에서 벗어날 다른 방법은 없다.

이처럼 집착은 괴로움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이를 버려야 한다고 수없이 강조한다. 무소유와 풀소유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내가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는 무소유의 정신과 별로 관계가 없다. 중요한 것은 결국 집착의 여부에 달려있다. 집착에서 벗어나야 대상으로부터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 이상을 섭취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마치 너무 많은 음식을 먹으면 비만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이런 상태를 계속 방치하면 각종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기에 사람들은 헬스장이나 야외에 나가 운동한다. 한마디로 몸속에 쌓인 불필요한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면서 생존을 이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과잉 에너지를 운동과 같은 건전한 방법으로 배출하지 않으면 신경질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기 쉽다는 사실이다. 비만인 채로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만 생활하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어찌 보면 둘 다 생존을 위한 전략이자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양상은 매우 다르다. 운동이 상쾌한 분출이라면, 성냄은 불쾌한 배출이다.

돈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 이상의 돈을 소유하게 되면, 누군가는 여행이나 공연 관람과 같은 건전한 소비를 하거나 나눔으로 에너지를 분출한다. 반면에 그 돈으로 값비싼 물건을 사서 자기 과시를 하거나 갑질을 하는 데 쓰는 사람도 있다. 한때 사회적 이슈였던 ‘땅콩회항 사건’*의 갑질이 여기에 해당한다. 

*땅콩회황 사건: 2014년 12월 5일 대한항공 오너 일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륙 준비 중이던 기내에서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부린 뒤, 비행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을 내리게 만든 사건.

그래서 돈을 쓰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밑천, 그러니까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유쾌하고 건강한 소비를 할 것인가, 자신과 상대 모두를 불쾌하게 만드는 소비를 할 것인가는 결국 나에게 달린 문제다.

경전에는 건전하고 상쾌한 소비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로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등장한다. 글자 그대로 고독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나눔을 실천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붓다에게 기원정사를 지어드린 일화로 유명한데, 오늘날로 보면 풀소유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붓다는 그에게 소유하는 행복과 누리는 행복을 말한 적이 있다. 언뜻 보면 무소유 정신과 어긋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붓다는 우리에게 열심히 땀 흘려 정당하게 재물을 소유하고 그것을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 나아가 사회를 위해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그는 평생을 유쾌한 소비, 즉 나눔을 실천하면서 살았다. 어찌 보면 그것이 곧 집착에서 벗어나는 지혜로운 길이자 무소유를 실천하는 삶이었던 셈이다. 붓다가 말한 소유하는 행복, 누리는 행복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붓다는 결코 재물을 멀리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돈과 관련한 붓다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멋지게 쓰라는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재물의 경」에서 붓다는 재산에 의지해서 자신과 부모, 아내와 자식, 친구와 동료, 수행자와 성직자를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돌보는 것이 재물의 공덕이라고 하였다. 앞서 언급한 소유하고 나누는 행복과 같은 취지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곧 무소유 정신에 바탕을 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다.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은 상쾌한 소비, 즉 나눔에 있다는 말이다.

 

돈은 똥이다

“돈은 똥이다. 쌓이면 악취를 풍기지만, 흩어지면 땅을 비옥하게 한다.” 

평생 나눔을 실천하다 2015년 세상을 떠난 이인옥 할머니의 명언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기초생활 수급자로 생활하면서도 그 돈마저 저축해서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내놓은 분이다.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돈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쓰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돈을 쓰는 모습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붓다는 돈 쓰는 일을 샘물에 비유했다. 아무리 맑고 시원하며 맛이 좋더라도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샘물은 마른다. 그렇기에 형편없는 사람이 재물을 소유하면 남에게 베풀 줄도 모르지만, 자기 또한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지혜로운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가치 있게 쓴다. 샘물이 마를 것 같지만, 쓰면 쓸수록 계속해서 물은 다시 채워진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우리는 돈을 똥처럼 생각해서 나눔을 실천하고 삶을 비옥하게 만든 풀소유의 불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동국제강의 창업자이자 대한불교진흥원의 설립자인 대원(大圓) 장경호(張敬浩, 1899~1975) 거사는 오늘의 한국불교를 있게 한 주역이다. 그는 큰돈을 벌어 한국불교의 중흥을 위해 바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1975년 그는 평생 모은 전 재산 30억 6,000여만 원, 오늘날 자산 가치로 3,000억 원이 넘는 거금을 기부하고 아름답게 떠난 인물이다. 교토 세라믹을 세계 10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나모리 가즈오는 자신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경영 철학을 가지고 사업을 영위한 독실한 불자였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캐논의 창업자 요시다 고로 등도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겉으로 볼 때 풀소유의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무소유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재산에 집착하지 않고 나눔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돈만큼 많은 속성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한마디로 압축하면 돈은 결국 마음이다.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번 ‘무소유와 풀소유’의 논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철학적 교훈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의 중심에 있던 스님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의 모습을 지켜보면 될 일이다. 가치 판단은 그때 해도 늦지 않다.   

 

장경호(張敬浩, 1899~1975) 거사는 동국제강 창업자이자 평생을 한국불교 중흥을 염원하고 몸소 실천한 기업가다.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통도사에 다녔다. 27세에 통도사 구하 스님으로부터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 모든 존재는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란 화두를 받고 국가의 기간산업을 일으켜 불교에 헌신하겠다고 발원했다. 1954년 동국제강을 설립해 굴지의 기업으로 키웠고, 1960년대 경영권을 자식에게 위임하고 불교 신행 생활에 정진했다. 이후 대원정사, 대원회, 대원불교대학, 불서보급사, 시민선방 개원 등 불교의 대중화·생활화·현대화에 평생을 헌신했다. 1975년 전 재산 30억 6,300만 원을 기부하고 향년 77세 일기로 별세했다. 이 정재(淨財)로 훗날 BBS불교방송의 모태가 된 대한불교진흥원이 설립됐다.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1932~)는 일을 통해 남을 돕고 자신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경영을 실천한 기업가다. 이나모리는 일명 ‘경영의 신’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경영 실력을 자랑한다. 1958년 교토세라믹주식회사(현 교세라)를 창업해 세계 100대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1984년에는 다이니덴덴(현 KDDI)을 설립해 일본 제2의 이동통신 회사로 만들었다. 65세 정년 퇴임한 그는 임제종으로 출가해 스님이 됐으나, 77세가 되던 해 파산 직전에 몰린 일본항공(JAL) 회장직을 맡아 2년 만에 회생시켰다. 최고경영자 자리를 내놓고 불교에 귀의한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많은 경영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는 세계적인 IT 기업 애플의 창업자로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아 디지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입양가정에서 자란 잡스는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가정집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한 후 이듬해 개인용 PC를 생산했다. 1985년 경영악화를 이유로 이사회가 잡스를 애플에서 쫓아내자 넥스트를 설립, 1986년 컴퓨터그래픽 영화사 픽사를 인수해 재기에 성공했다. 1997년 애플로 복귀해 CEO가 된 그는 아이맥,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출시해 IT업계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잡스는 일본 정통 선불교 지도자인 스즈키 순류 스님이 샌프란시스코에 세운 타사하라 선 센터에 다니며 선불교에 깊이 매료돼 평생 선 수행을 실천하며 살았다. 애플 기기의 심플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은 이런 그의 선불교적 사상에서 영향받았다. 

 

요시다 고로(吉田五郎, 1900~1993)는 불교 사상을 토대로 세계적인 카메라 회사인 캐논(Canon)을 창업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카메라를 분해하고 조립하길 좋아한 요시다는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 도쿄로 상경해서 영화 촬영 카메라와 영사기를 수리하고 개조하는 견습공이 됐다. 1933년 일본제 카메라를 만들기 위해 사위 우치다 사부로와 우치다의 부하였던 미타라이 다케시와 함께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가 후에 세계적인 카메라 회사인 캐논이 됐다. 요시다는 1934년 최초로 만든 시제품 카메라에 ‘관음보살의 자비에 힘입어 세계 최고의 카메라를 만들겠다’는 염원을 담아 관음의 일본식 발음인 ‘콴논(Kwanon)’이란 이름을 붙였다. 렌즈 또한 붓다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마하가섭’의 이름을 따 ‘카샤파(Kasyapa)’라고 이름 지었다. 

 

이일야
전북불교대학 학장 및 (사)부처님세상 이사장. 전북대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저서로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제13회 불교출판문화상 대상)와 『동화가 있는 철학 서재』(2020 세종도서), 『안다는 것, 산다는 것』,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란 무엇이 아닌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