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진화 인류에게 도덕적 진화도 가능할까

트랜스휴머니즘과 불국정토

2021-03-22     이상헌

자연의 운명에 맞선 역사

죽음, 무지, 고통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과한 운명이다. 그러나 인류는 문명을 이루며 자연의 운명에 맞섰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어찌 보면 자연이 우리를 가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다. 인류는 먼저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했다. 자연이 부과한 죽음과 무지, 고통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 자신을 자연과 분리하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철학이 그 시초였다. 그 이후의 역사적 과정은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더욱 철저히 분리하고, 자연적인 것과 다른 인간적인 것을 정립하는 과정이었다. 근대에 들어서면 자연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된다. 인류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생각해 낸 것이 초자연이다. 초자연의 영역을 만들어내고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함으로써 인류는 자연의 운명인 죽음을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종교는 자연적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고 약속함으로써 인간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게 한다. 

인류는 언어를 매개로 사고하고 소통하는 지상 유일의 존재다. 언어 덕분에 인간은 자연적 존재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정신적 존재로서의 삶도 살 수 있게 됐다. 인간은 정신 혹은 마음의 산물을 통해 자연적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 또 언어 덕분에 인간은 자연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나아가 학문으로 체계화해 후대에 전승할 수 있었다. 인간은 세상에 등장한 이래 줄곧 자연에 대한 지식을 확장해왔다. 과학적 지식의 성장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에게 고통을 준 수많은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발견했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류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가속해왔다. 그 결과 인간은 자연이 제공한 삶의 터전보다 스스로 만든 것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고, 오늘날 대부분 도시에서 거주하고 생활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가한 제약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자연 밖에서 독자적인 삶의 영역을 구축하는 데 집중됐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전했어도 인류는 자연이 부과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명의 길로 들어선 이후 지난 1만 년의 시간 동안 인류가 이루어낸 것은 자연의 한계 속에서 자연적 운명을 조금 순하게 만드는 데 그쳤다. 평균 수명을 크게 연장했으며 자연과 인간 자신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질병의 고통도 크게 완화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채 100년을 살지 못하며, 자연과 우리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육체와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시각으로 이전과는 다른 시도를 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바로 자연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과학과 기술의 힘을 빌려 인류가 그동안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자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네 번째 불연속의 극복으로 향하는 길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역사학과 교수인 브루스 매즐리시(Bruce Mazlish)는 『네 번째 불연속: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라는 책에서 그동안 인간이 상상한 네 가지 불연속을 언급하고 근대 이후 인간의 역사가 이 불연속들을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매즐리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1915~1917년) 여덟 번째 강의에 기대어 인류가 지금까지 세 가지 불연속을 극복하는 경험을 했으며, 지금 네 번째 불연속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은 인간이 독특한 존재라기보다 우주 일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이 동물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에 의문을 던지고, 인간과 동물이 연속 선상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은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이라는 전통적인 인간상을 흔들어 놓았다. 인간의 행동 역시 자연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처럼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믿음을 퍼뜨렸다. 매즐리시는 이렇게 근대를 거치며 전통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정립한 토대였던 세 가지 불연속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정점은 네 번째 불연속에 대한 도전이다. 네 번째 불연속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불연속이다. 데카르트가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은 기계가 아니며, 아무리 정교한 기계라도 인간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고 인간적인 기계가 등장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매즐리시는 전망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견고한 게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매즐리시 주장에 따르면, 인간과 기계 사이에 연속성이 있으며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기계다. 신체 기관들을 점차 기계로 대체하고 있으며 우리의 지능도 기계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 유전은 일종의 정보전달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우리는 모종의 기계라고 생각된다. 

매즐리시의 주장은 조금 단순하고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인류는 매즐리시가 말한 네 가지 불연속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특히 인간과 기계 사이의 불연속에 대한 도전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그렇다. 대표적으로 유전공학의 발전 덕분에 인간은 자연적 생물 종으로서 한계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며,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발전 덕분에 물리적 한계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말하는 인간 향상(human enhancement)은 바로 매즐리시가 말하는 네 가지 불연속의 극복을 가정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네 번째 불연속의 극복 방식은 지금까지 인류가 자연에 대한 지식을 증진하면서 인간의 힘을 확대해온 방식과 전혀 다르다. 인류는 자연을 이해하고 활용했으며, 도구를 만들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도시를 건설해 자신이 가진 자연적인 능력과 힘을 증폭시켰다. 다시 말하면, 동물을 가축화해 동물의 힘을 자신의 힘처럼 사용했고, 도구를 만들어 우리의 물리적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생활하는 세계를 만들어 자신과 환경의 관계 효율성을 증진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은 인간이 자신 밖에 있는 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그 기법을 세련되게 한 것에 불과하다. 새로운 방식은 동물성과 기계성을 인간성 안으로 포섭하는 것이다. 네 번째 불연속 극복의 참뜻은 이것이다. 인간이 동물의 힘과 능력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유전공학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 기계를 제작해 활용하는 단계를 벗어나 기계의 힘과 기능을 인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인공지능과 생체전자공학 등의 공학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유전자 변형 인간이든 사이보그든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든 전통적으로 생각했던 불연속들의 극복은 인류를 새로운 진화의 단계로 끌어들일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꿈꾸는 미래가 바로 이런 것이다. 

2017년 개봉한 영화 〈공각기동대〉. 영화는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무너진 미래에 발생한 강력 범죄를 담당하는 엘리트 특수부대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절대적 무지는 없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게 인간의 본성은 현재 단계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존재다. 가속주의자 레이 브라지어(Ray Brassier)는 인간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존재론적 불확실성’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불확실한 존재다. 인간은 누구나 언제든 죽음과 마주할 수 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우리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 인간은 고통에 민감하고 취약하다. 인간은 누구나 언제든 고통받을 수 있으며, 누구도 마음대로 고통의 양과 질을 결정하거나 고통을 온전히 제어할 수 없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불확실성 속에서 삶을 지속하는 존재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인간 이해에 도전한다. 그들은 존재론적 불확실성에 반대해 ‘인식론적 확실성’을 주장한다. 

인간이 그 자신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는 모든 한계는 (그것이 물리적이든 지성적이든 혹은 심리적이든)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문제라고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믿는다. 다시 말하면, 기술로 인간 향상을 꾀할 수 있고,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의 자연적 한계는 모두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명 연장의 열쇠, 노화의 비밀, 탄생과 죽음의 신비, 물질과 에너지의 정체, 고통에 대한 온전한 통제 방법 등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정신은 마침내 삼라만상에 관한 모든 것에 닿을 것이다. 현재의 무지는 상대적이고 잠정적이며, 인간에게 영원히 무지의 영역으로 남을 절대적 영역은 없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의 신체 능력과 지적 능력, 정서 능력을 무한히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최근 국내의 학계에서도 한창 논의되고 있는 인간 향상은 트랜스휴머니즘의 핵심 쟁점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이런 믿음은 적어도 두 가지 가정을 토대로 한다. 하나는 이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진화가 영속적이며 진보라는 것이다. 인류는 끝없이 진화를 계속할 것이며 그것은 퇴락이 아니라 일종의 진보다. 인류 진화의 끝을 상상해볼 수는 없지만, 현재 인류와 전혀 다른 존재로 진화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막는 것이 정당화되지도 않는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또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진화한 인류의 형태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가정한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동물성과 기계성을 인간성 안에 포섭하는 방식으로 인간성을 확장한다면, 앞으로 등장할 진화 인류는 형태학적으로 자유로울 것이다. 서양철학에서 끊임없이 지적해온 인간의 한계이자 극복 과제였던 ‘신체로부터 해방’이 마침내 포스트휴먼 단계에서 이뤄진다. 

진화한 인류, 다시 말해 ‘기술로 향상된 인간(technically enhanced human)’은 동물과 인간의 혼종일 수도 있고 기계와 인간이 결합한 사이보그일 수도 있다. 혹은 그 밖의 어떤 다른 형태, 예컨대 인간의 마음을 다운로드한 로봇일 수도 있다. 심지어 물리적인 신체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네트워크 속을 떠도는 정보의 덩어리일 수도 있다. 옥스퍼드대학 인간미래연구소 소장인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은 포스트휴먼의 가능성을 세 가지로 언급했다. 포스트휴먼은 완전한 ‘합성 인공지능(synthetic artificial intelligence)’,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으로 향상된 인간, 그리고 생물학적 인간에게 기술을 통한 향상(human enhancement)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축적된 결과로 등장하는 인간일 수 있다. 

 

인류의 도덕적 향상 약속하는 도덕 공학

옥스퍼드대학 실천윤리연구소의 사블레스쿠(Julian Savulescu)와 페르손(Ingmar Persson)은 현재 인류가 직면한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인간 향상을 주장했다. 단순히 신체적 우월성이나 지적인 우월성을 획득할 목적으로 기술을 이용하는 인간 향상과는 다르다. 이들이 주장하는 인간 향상은 인류의 도덕성 혹은 도덕적 행위 능력을 증진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향상에 대한 윤리적 반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더욱이 인류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정당하게 요구될 수 있다고 한다. 

사블레스쿠와 페르손에 따르면, 현재 인류는 문명의 유지 내지는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접근성의 확대, 그리고 기후 변화 및 환경 문제 때문이다. 이 위기는 현실적이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 전체의 협력과 실천 없이 타개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인간이 갖추고 있는 심리적 특성과 도덕성, 기존의 수단으로는 이 위기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다. 그래서 긴급한 수단이자 저 위기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인간을 도덕적으로 향상하는 게 검토될 수 있다.

사블레스쿠와 페르손의 주장에 다수의 철학자가 동조하고 인간의 도덕적 향상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전개했다. 미국의 철학자 마크 워커(Mark Walker)는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방편으로 기술적 수단을 이용한 인간의 도덕적 향상을 주장한다. 워커는 ‘도덕적 행동의 유전적 상관자(genetic correlates of virtuous behavior)’를 발견하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인간의 덕성을 향상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해서 ‘유전적 덕성 프로젝트(Genetic Virtue Project)’를 제안했다. 워커는 유전적 악을 제거하고 인간 본성의 나쁜 기능들을 제거해 인간을 도덕적으로 향상할 수 있다면 이 프로젝트의 실행이 도덕적으로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상상한 유토피아들이 대부분 선한 사람들의 세상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워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이상헌
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 저서로는 『융합시대의 기술윤리』, 『철학자의 눈으로 본 첨단과학과 불교』 등이 있다. 「붓다의 시선으로 본 인공지능」, 「칸트 도덕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포스트휴먼」 등 논문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