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아이 키우기

삶의 여성학

2007-09-16     관리자

"아이 를 누가 키우다니? 아이야 당연히 엄마가 키워야지!" 전철 안에서 친구와 장차 출산할 아이를 두고 걱정을 나누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앉아 있던 할머니는 별소리 를 다 듣겠다는 표정으로 얼른 단답형 대답을 해준다. 그리고 임신을 한 여성 쪽에서 "제가 직장을 다니거든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라고 말하자 직장 그만 두고 여자는 애를 키워야 한다며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여성들이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결혼 후 집안 살림에만 전념했던 할머니의 경험에 비 추어 보면 고민하고 자시고 할 필요조차 없는 걱정일 수 있다. 아마 할머니의 마음속에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자가 살림하고 애 낳고 키우는 것'은 변할 수도 없고 변해서도 안 되는 여자의 길이란 생각이 철석같아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상은 할머니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집에서 살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결혼한 주부들이 남자처럼 바깥에서 일하고 돈을 버는 숫자가 전체 기혼 여성의 약 반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경제적인 이유 외에 자아 실현과 인간적인 자기 발전을 이유로 사회 참여를 기정 사실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뿐만 아니라 남자 혼자 벌어서 언제 잘살아 보겠느냐며 신부감을 구하는 남자 측에서도 오 히려 작장 가진 여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지식을 쌓은 여성 인력 활용에 대한 우리 여성계의 요구도 크지만 여성의 능력이 후기 산업 사회의 국가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시각에서 세계 각국은 여성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 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을 두고 '아이는 엄마가 꼭 붙들고 키워야 한다'는 윗 세대 할머니의 육아론 은 현실감을 잃은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서 임신을 한 여성은 애도 잘 키우고 다니던 직장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애를 맡길 만한 곳(탁아소)은 집 가까이 있거나 직장 안에 마련되어 있지도 않고 개 인 탁아모를 구하려니 비용이 엄청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걱정만 태산 같은 것이다. 정 안 되면 직장을 그만두어야겠지만 한 번 그만 두면 애 딸린 기혼여성이 다시 그 만한 직장(일 내용과 수입 면에서)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란 생각을 하면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들 젊은 여성들 중에는 자신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가 육아를 선택하는 여성도 있을 것이 고, 주위 어디를 둘러보아도 구원을 청할 데가 없기 때문에 전업 주부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맞벌이 부부들은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부모들에게 SOS를 보내는 것이 요즈음 아이 키우기의 현실이 되고 있다.
아이는 부부가 함께 가졌지만 임신 당사자가 여성이다 보니 우선 어머니 쪽에 어려운 부탁 을 하기가 쉽지 않은 탓도 있고 '직장 그만 두고 애나 키우라.'는 엄명이 떨어질까 겁나는 부분도 배제할 수 없는 탓인지 미안하지만 친정 어미니 쪽에 부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 다. 부모에게 아기를 맡기면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지만 일시적인 부탁을 넘어 계속되는 경우 노부모의 희생이 따르는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젊은 세대나 노부모 세대 모두 부담을 가질 수 있다.
50대 여성들이 모인 모임에 가서 엿들어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친 정 어머니 수난시대'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이야기도 많다. 딸 대학 공부시켜 죽을 (있는)힘 을 다해 시집 보내 놓았더니 끝난 것이 아니라 갈수록 태산이라는 하소연도 심심찮게 들려 온다.
딸 먼저 보낸 친구가 말할 때는 설마 그럴까 하고 속으로는 자기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 다고 벼른 사람도 자신이 친정 어머니가 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 별 수 없이 하게 되더라고 한다. 딸만 셋을 둔 한 어머니는 시집 보낸 첫 딸이 여름에 몸을 풀자 산 바라지에 연이어 혼자 외손녀를 보느라고 너무 힘이 들어서 몸살이 겹쳐 허리 병이 났다면서 나머지 딸 둘을 또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지레 겁을 먹는 것을 보았다.
언뜻 생각하면 아이는 네 아이니까 네가 책임지고 키워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맞는 것처 럼 생각하기 쉽다. 같은 논리로 여성이 임신하고 낳는 것이니 키우는 것도 엄마 된 여자 네 가 혼자 책임지고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한 것처럼 느끼기 쉽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어린애가 커서 한 가정, 사회, 국가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사실이 라면 아이 키우는 문제 역시 사회와 국가가 함께 책임을 지고 키우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이 다. 맞벌이 부부들이 노부모 세대의 수고를 빌리지 않고 적당한 비용으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양질의 탁아시설이 많이 생겨야 한다.
옛날 어른들은 '아이는 손이 여럿이 있어야 키우기 쉽지, 혼자 손에 키우기는 어렵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맞벌이 부부는 아기 봐 줄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하고 전업 주부의 경우에 도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엄마와 아이 둘 다에게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면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안다.
어떻게 하면 핵가족 속에서도 언니 동생이 함께 섞여 놀 수 있고 손이 여럿인 공간에서 아 이를 키울 수 있을까? 우리는 내 아이만 잘 키우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우리아이들' 을 우리가 함께 잘 키워야 할까를 더 고민하고 걱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미 아이 함께 키우기에 관심과 뜻을 가진 부부들이 모여 주식 방식 의 출자를 통해 공동기금을 모아 어린이집과 교사를 확보하고 공동육아를 실천하는 새로운 육아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무튼 더 많은 탁아시설이 세워지고 더 많은 공동육아장이 세워져서 우리의 다음 세대를 즐겁게 함께 키우는 육아환경이 확보이었으면 한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