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시·만화·영화· 소설이 재현한 4人 4色 싯다르타

문화로 만나는 싯다르타

2021-02-24     류현정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 그의 불교관을 엿볼 수 있는 만화 『붓다』의 한 장면. 출처 데즈카 오사무 공식홈페이지.

여기, 깨달은 자라는 뜻의 ‘붓다(Buddha)’로 더 잘 알려진 ‘싯다르타(Siddhārtha)’라는 인물이 있다. ‘목적을 달성한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는 수많은 사람에게 ‘위대하다’고 칭송받았지만 수천 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가 직접 남긴 어떠한 저작도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를 직접 만날 방도가 없다. 그런데도 그의 일생은 어째서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지금까지도 재현되고 있는 것일까? 

이를 한 마디로 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싯다르타’라는 공통 키워드를 가진 네 개의 작품들을 소개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그 의미를 더듬어보고자 한다. 

무릇 위대한 인물의 ‘위대함’이라는 것은 필경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법이다. 이야기란 으레 화자의 관심사와 문화적 배경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달된다. 한편 우리는 이야기를 들을 때, 그 내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이하거나 혹은 정반대로 그럴듯한 서사 속에서 진행돼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 더욱 집중해 듣곤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에게 전해지는 붓다, 싯다르타의 생애 이야기는 이 양쪽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석가족 성자의 이야기는 한없이 기이하고 탄성을 부르는 일화들로 가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평범한 인간의 근본적인 고뇌와 욕망에 대한 성찰, 그리고 그 극복과정이 촘촘한 서사 속에 담겨 있다. 과연 싯다르타 이야기의 어떠한 부분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것인지, 지금부터 서로 다른 시기와 장르에 속한 네 명의 싯다르타를 만나보겠다.

 

유려한 필치로 그려진 아슈바고샤의 『붓다차리타』

첫 번째로 만나볼 싯다르타는 기원후 1~2세기 인도의 고전 서사시에서 등장한다. 흔히 붓다의 생애를 다룬 전기(傳記) 문학을 불전(佛傳)문학이라고 부른다. 경전에서의 집성이 아닌 독립적인 한 시인의 문학작품으로서 처음 이 소재를 오롯이 다룬 불전문학은 마명(馬鳴) 보살로도 잘 알려진 시인 아슈바고샤(Aśvaghoṣa, 1~2세기경)의 작품이다. 

아슈바고샤는 본래 인도 사케타 지방의 브라만 출신 스님으로 붓다의 일생을 묘사한 『붓다차리타』(Buddhacarita, 붓다의 행적)와 붓다의 이복동생 난다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고단한 과정을 그린 ‘사운다라난다’(Saundarananda, 아름다운 난다)라는 수준 높은 카비야(kāvya, 고전 산스크리트 정형시) 작품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붓다차리타』는 산스크리트본(14장) 외에 더 많은 장(章)을 가진 티베트역본과 『불소행찬(佛所行讚)』이라는 한역본(28품)으로도 전해지는데, 최근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후반부의 산스크리트 사본 일부가 발견돼 학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싯다르타의 일대기가 처음부터 완전한 모습으로 전해진 것은 아니다. 불전 전승은 초창기 율장과 같은 경전 속에 포함된 단순하고 단편적인 일화에 다양한 삽화와 신화적 이야기가 증보되면서, 단계적 변화를 거쳐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 구조로 완성됐다. 이 싯다르타 서사의 최종적인 형태로 부를 수 있는 것이 바로 『붓다차리타』다. 이 작품은 아름답고도 유려한 필치뿐만 아니라, 초창기 파편적으로 경전 속에 존재하던 붓다의 일대기를 ‘탄생-사문유관-유성출가-설산고행-깨달음-전법-열반’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완전한 서사를 가진 싯다르타 이야기로서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다시 말해 『붓다차리타』의 싯다르타는 완성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그 시작점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주소년 아톰 아버지가 그려낸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

두 번째 싯다르타는 시간을 훌쩍 넘어 1972년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한다. 필자가 이 싯다르타를 접한 때는 이보다 조금 후인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누가 사다 놓았는지는 모를 일이었으나 집 책장에는 『블랙잭』과 『우주소년 아톰』으로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떨친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 1928~1989)의 만화 『붓다』 한 질이 꽂혀 있었다. 당시 필자는 사찰에서 엄숙하게 가부좌를 틀고 사람들에게 절을 받는 가공의 인물이 붓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불교에 대해 무지했다. 그런 필자를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캐릭터로서의 싯다르타와 처음 만나게 해준 것이 바로 이 만화책이었다. 이전까지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대상에게 처음으로 매료된 순간이었다. 이처럼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에 등장하는 싯다르타는 어린아이였던 필자조차도 가슴 졸이며 볼 수밖에 없었던, 생생하고 극적인 묘사와 연출을 통해 되살아난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붓다차리타』가 싯다르타 일대기의 인도적 원형을 장엄하고 유려하게 구사해 낸 고전 서사시였다면,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는 그야말로 작가의 상상력을 총동원한 생생한 극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붓다』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싯다르타 일대기 전개는 기존 전승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작가 스스로가 ‘하나의 판타지 작품으로 읽어주길 바란다’고 밝혔듯이 이 작품은 그가 곳곳에 펼쳐 놓은 새로운 인물과 소재들로 가득하다. 경전에는 등장하지 않는 다양한 가공의 등장인물과 뚜렷한 개성 묘사, 그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극적인 이야기 구조는, 깨달음 이후에도 인간적 고뇌를 멈추지 않는 싯다르타의 진중한 모습과 맞물려 전혀 다른 싯다르타의 이미지를 끌어낸다.

 

환생담과 우화, 현재와 이어지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리틀 부다>

세 번째 싯다르타는 다층적 구조를 지닌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다. 다시 말해, 앞선 두 작품이 붓다로서의 싯다르타 자체를 전면으로 다뤘다면, 영화 <리틀 부다>는 싯다르타의 이야기가 현재 인물들에게 전해지는 방식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리틀 부다>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로도 유명한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1941~2018)의 1993년도 작품이다. 티베트의 고승인 도르지 라마의 환생체를 찾기 위한 여정을 그려내면서 세 사람의 환생체 중 한 명, 제시라는 미국 소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몸·말·마음[身口意]으로 대변되는 세 명의 환생체를 찾는 과정을 아름다운 영상미 속에서 우화적으로 담아내어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물론 다분히 서구적 시각에서 바라본 불교(특히 티베트불교)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답습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싯다르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리틀 부다>에서 싯다르타의 서사는 그림책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제시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제시가 그림책을 펼치는 순간, 혹은 도르지의 제자 노부 라마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화면은 모래 먼지가 흩날리는 듯한 장면으로 전환되고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분한 싯다르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싯다르타 서사는 ‘탄생-사문유관-출가-깨달음’과 같은 핵심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단순하게 전해지는데, 그 내용 자체는 『붓다차리타』의 기본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승의 구현 방식이다. 싯다르타와 제시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다 어느 시점에서는 한 화면 속에 중첩되고, 관객은 주요 인물들의 여정과 싯다르타의 서사가 아스라이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천 년의 시간적 간극과 이역만리의 공간이 주는 거리감, 문화적 차이가 주는 이질감이 영화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서 교묘하게 섞여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처럼 영화는 과거와 현재에 속한 이질적인 두 요소를 한 화면 안에 매우 현실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게끔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영상적 재현이 지니는 힘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드러난다. 서사시 『붓다차리타』가 주는 원형적 심상, 만화 『붓다』가 주는 생생한 캐릭터 극화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현재와 연결된 세 번째 싯다르타가 <리틀 부다>에서 재현되는 순간이다.  

 

‘고타마’를 지향하며 고뇌하는 또 다른 인간,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앞에서 소개한 세 작품과는 약간 궤를 달리하는 소설을 하나 더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독일 출신의 문호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다. 제목부터 인물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헤세가 『데미안』 등의 저작으로 전환기를 맞이하면서 내면의 세계로 눈을 돌린 이후의 작품이다. 당시 헤세는 심한 우울증을 겪은 후 이 작품을 집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진리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일생에 꼭 한 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시도한 작품이 바로 『싯다르타』”라고 언급했다. 그의 말처럼 이 작품은 주인공 싯다르타의 정신적 성장과 다양한 경험을 통한 깨달음의 여정을 섬세한 필치로 담고 있는데, 재미있는 점은 작중 주인공이 우리가 아는 붓다와는 별개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사색하기 좋아하는 청년이고, 종국에는 깨달음을 위해 여정을 떠난다는 면에서 분명히 붓다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붓다인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은 ‘고타마’로 등장, 주인공 싯다르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에게 자극을 준다. 하지만 주인공은 고타마의 깨달음을 인정하면서도 그와 헤어져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이후 싯다르타는 아름다운 여인 카말라와의 사랑, 부유한 상인 카마스와미와의 관계로 대변되는 세속적 경험을 거쳐, 뱃사공 바수데바와의 인연으로 자신만의 성찰 과정을 겪는다. 결국에 그는 (싯다르타의 친우 고빈다의 표현을 빌자면) ‘고타마의 미소’와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서사 구조상 ‘고타마 싯다르타(붓다)’와 주인공 ‘싯다르타’는 전혀 다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싯다르타(붓다)’와 중첩되는 느낌을 준다. 이는 아마도 앞서 언급한 헤세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오리지널’ 싯다르타에 대한 헤세만의 지극히 고뇌하는 인간으로서의 진심 어린 오마주이자, 그야말로 싯다르타 서사의 창조적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각각의 싯다르타는 동일한 서사구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현돼왔다. 각 작품이 지니는 장르적 특성에 따라, 혹은 창작자의 관심사와 관점에 따라 수많은 싯다르타가 묘사되지만, 그럼에도 변치 않는 한 가지가 있다. 애초에 싯다르타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신화적 요소로 장식되면서 작금의 시대에 숭배와 귀의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한 인간으로서 어디에나 존재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관조하는 눈을 지녔고, 연민의 마음을 가졌으며, 죽음과 삶, 인간 고통의 근원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직접 깨달음을 성취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과거에 머무른 채 그저 옛 전승을 답습할 뿐인 이야기는 시대에 따라 변해 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기에, 싯다르타의 서사 또한 다양한 외피를 입으며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천해 왔다. 싯다르타 이야기는 단편화된 설화로부터 시작돼 수 세기를 거치면서 온전한 서사시로 재현됐고, 2,000년을 훌쩍 뛰어넘은 오늘날 공상 과학 만화가의 손길을 통해 생생한 캐릭터로 그려졌다. 이후 한 영화감독의 카메라 속에서 현재의 인물들과 이어졌으며, 어느 작가 내면의 고뇌를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동명의 또 다른 인물로 창조되기에 이른 것이다.

많은 경전에 수록된 붓다의 언설과 행적은 이후 펼쳐진 철학적 논설들과 더불어 그의 가르침을 전하며 수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즉각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경구 한 구절보다는 누구나 공감 가능한 상황 속에서 재현되는, 어쩔 수 없는 한 인간의 서사일 것이다. 결국 정형화된 숭배의 대상이나 철저한 타인이 아닌, 고뇌하는 인간으로서의 경험들이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개인의 경험과 공명하는 바로 그 순간, 그 지점이 바로 ‘싯다르타’를 진정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류현정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고전 산스크리트 문학, 인도 신화, 종교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야기의 전파와 변용에 관심이 많으며, 현재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강사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