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신화] 붓다의 대비심과 브라흐마의 권청

2021-01-26     동명 스님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붓다에게 설법을 권청하는 장면.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소장.

 

| 신화가 된 붓다의 생애

“친구야, 조오련하고 물개하고 수영 시합하믄 누가 이기겠노?”

영화 <친구>(2001)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이 대사에서 ‘신화’가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알 수 있다. 조오련은 1970년대 아시아를 대표하는 수영선수였다. 그는 은퇴한 후 대한해협을 맨몸으로 13시간 16분 만에 횡단해 1980년 다시 한번 전 국민의 주목을 받는다. 국민 영웅 조오련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면서 그는 신화화된다. 이처럼 영웅은 뭇 사람들의 꿈이 되고 위안이 되고 구원자가 된다. 

붓다의 일생 중 어디까지가 신화이고 사실인지 정확히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왜 신화화됐는지’, ‘그 이야기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도는 신화가 유난히 발달한 나라다. 인도에서 신화는 곧 종교와 다름없다. 인도인들이 숭배하는 신 중에는 역사 속의 인물인지 단지 신화에 불과한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그런 나라에서 붓다를 숭배하는 사람들도 붓다의 생애를 다른 신화 이상으로 특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붓다의 신화에는 위대한 붓다를 더 많은 사람이 믿고 따라서 궁극적인 평화와 자유,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

 

| 49일 동안 해탈의 지복을 누리다

마왕을 물리친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서 7일을 변함없이 결가부좌를 하고 해탈의 지복을 누리며 앉아 있었다. 이렇게 고요히 앉아 있는 동안 세속의 이름 싯다르타는 자연스럽게 붓다가 되었다. 팔리어 율장에는 붓다가 맨 먼저 사유한 것이 연기법(緣起法)이라고 나온다. 세존은 초야와 중야와 후야에 연기법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을 숙고했다.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행(行)이 있고, 행을 조건으로 식(識)이 있고, 식을 조건으로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조건으로 육입(六入)이 있고, 육입을 조건으로 촉(觸)이 있고, 촉을 조건으로 수(受)가 있고, 수를 조건으로 애(愛)가 있고, 애를 조건으로 취(取)가 있고, 취를 조건으로 유(有)가 있고, 유를 조건으로 생(生)이 있고, 생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시름/비애/괴로움/근심/번뇌가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 다발의 일어남이 이와 같다. 그러나 실로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지면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면 식이 소멸하며, 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육입이 소멸하며, 육입이 소멸하면 촉이 소멸하고, 촉이 소멸하면 수가 소멸하며, 수가 소멸하면 애가 소멸하고, 애가 소멸하면 취가 소멸하고, 취가 소멸하면 유가 소멸하고, 유가 소멸하면 생이 소멸하며, 생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시름/비애/괴로움/근심/번뇌가 소멸한다. 이와 같이 이 모든 괴로움 다발의 소멸이 있다.”

흔히들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 깨달음의 내용은 분명치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율장에서는 연기법으로 시작되는 세상의 이치가 바로 깨달음의 내용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다만 보리수 아래에서 붓다가 깨달은 바가 연기법뿐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연기법을 토대로 어떻게 살아야 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깨달았다고 봐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일차적인 답이 초전법륜에 나오는바, 다섯 비구에게 설한 사성제와 팔정도, 그리고 교단의 첫 출가자인 야사에게 설한 보시・지계・인욕 등 바라밀행이 그것이다.

밍군 사야도의 『대불전경』은 붓다가 깨달은 바를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대불전경』에 따르면 붓다는 숙명통・천안통・누진통을 얻은 후 예류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를 차례로 증득했으며, 4성제, 4무애지, 6불공지 등으로 구성된 붓다의 14종 지혜와 18불공법, 4무외지와 함께 일체지를 얻음으로써 삼계의 스승인 정등각자(正等覺者, sammāsambuddha)의 경지를 성취했다고 한다.1

이렇게 깨달음을 얻은 붓다는 49일 동안 여러 나무 밑을 옮겨 다니며 해탈의 지복을 누린다. 첫 번째 7일 동안 앉아 있었던 보리수 밑에서 해탈의 지복을 누렸으며, 두 번째 7일 동안은 보리수와 보리좌를 응시하면서 보냈고, 세 번째 7일 동안 천신들이 마련해준 보배 경행대 위를 경행했다. 일창 스님은 네 번째 7일 동안에 붓다는 천신들이 마련해준 보배궁전에서 아비담마를 숙고하면서 보냈다고 말한다.

다섯 번째 7일은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 앉아서 보냈고, 여섯 번째 7일째는 무짤린다 나무 아래로 옮겼다. 무짤린다 아래 있을 때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때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무짤린다 용왕이 큰 머리를 우산 삼아 붓다를 씌워줬다. 인도의 용왕은 우리에게 거대한 뱀으로 보인다. 생각해 보라. 머리가 일곱 개인 거대한 뱀이 등 뒤에서 머리 위까지 덮어주고 있다면 우리는 기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붓다는 그 어떤 생명체도 두렵지 않았으며, 오직 사랑과 연민의 대상일 뿐이었다.

일곱 번째 7일은 라자야따나 나무 아래에서 보냈는데, 상인인 따뿟싸와 발리까가 욱깔라 지방에서 그 지역으로 오는 도중이었다. 마침 그 두 상인의 친척 되는 하늘사람이 두 상인에게 말했다. “벗들이여,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세존께 음식을 공양하거라.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안녕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상인 따뿟싸와 발리까는 세존을 찾아가 보리죽과 밀떡을 공양하고자 했다. 그런데 붓다는 공양을 받을 발우가 없었다. 성도 직전 수자타의 공양을 든 후 발우를 강물 위로 띄워 보낸 터였다. 붓다는 손으로 음식을 받을 수는 없었는데, 그때 하늘의 사천왕이 돌발우를 바쳤고, 붓다는 거기에 음식을 받았다. 이렇게 하여 따뿟싸와 발리까는 붓다의 가르침에 귀의한 최초의 재가 신자가 됐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자 무짤린다 용왕이 자신의 머리를 이용해 붓다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에 세워진 상이다.

 

| “내 이제 감로의 문을 여노라”

성도 후 49일을 보낸 붓다는 삼매에서 깨어나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로 갔다. 붓다는 생각했다.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어려워서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을 것이다.’ 세존은 이같이 성찰하고 진리를 설하는 것을 망설였다.

붓다가 설법을 망설였다는 것은 붓다의 설법을 더 극적이고 귀하게 만들기 위한 신화일 가능성이 크다. 붓다는 이 세상에 올 때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겠다는 큰 원력을 세우고 왔는데, 본격적으로 그 원력을 실행할 때가 되자 오히려 포기하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어쨌든 붓다의 가르침이 신기루가 될 수도 있는 위기상황에서 당시 최고의 신 브라흐마 사함빠띠가 등장한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진리를 가르쳐주십시오. 선서께서는 진리를 가르쳐주십시오,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중생들이 있는데, 그들이 가르침을 들으면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브라흐마는 이어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모든 사람을 볼 수 있듯이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한눈에 살피시는 분이시여
슬픔에 빠져 있는 중생들을 구원하소서
진리의 누각에 올라
생사의 굴레에 빠져 있는 이들을 
굽어살피소서
영웅이시여 일어나소서
진리를 설파하소서

브라흐마가 세 번이나 청하자 붓다는 부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중생, 마음에 때가 많이 묻은 중생, 예민한 감각의 중생, 둔한 감각의 중생, 좋은 성향을 가진 중생, 나쁜 성향의 중생, 교화하기 쉬운 중생, 교화가 어려운 중생을 봤다. 붓다는 마침내 세상을 향해 사자처럼 포효했다.

내 이제 감로의 문을 여노라
어서 오라, 새로운 세계로

밍군 사야도는 붓다의 첫 설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붓다의 대비심이요, 두 번째는 최고 신의 권청이다. 붓다의 대비심이야 원력을 세울 때 이미 마련된 것이다. 최고 신의 권청은 왜 필요할까? 일창 스님은 최고 신의 권청이 없는데도 법을 설하면 바라문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3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설법이 준비돼 있다 해도 그 설법이 저절로 주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듣고자 하는 청중이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면 설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브라흐마의 권청은 신화적으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가르침을 베풀 선지식이 있으면 항상 설법을 권청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1 밍군 사야도, 최봉수 옮김, 『대불전경 IV』, 233~247쪽.

2 일창 스님, 『부처님을 만나다』, 이솔출판, 2012, 201~202쪽.

3 일창 스님, 위의 책, 211쪽.

 

동명 스님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지홍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2015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후 구족계를 받았다.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장을 맡고 있다. 출가전 펴낸 책으로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