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불교 생활] 이미 수행하고 있다

2021-01-21     원제 스님

 

| ‘핑크빛’ 뒤에 감춰진 ‘블랙 빛’

블랙핑크는 BTS와 함께 빌보드 상위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아이돌입니다. 이들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5,200만 명으로, 전 세계 아티스트 채널 중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필자는 블랙핑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그들의 음악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별 기대 없이 블랙핑크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블랙핑크의 결성 과정, 각 멤버들의 출생 배경과 음악적 기질, 휴식기의 일상, 그리고 전 세계 팬들이 환호하는 무대 위 모습들을 보여줬습니다. 필자가 눈여겨본 것은 블랙핑크의 화려한 성공을 조명한 ‘핑크빛’이 아니라, 연습생 시절을 조명한 ‘블랙 빛’이었습니다.

지금 연예계 기사의 댓글 창은 대부분 막혀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연예인 뉴스 기사에는 그들의 엄청난 수입과 막대한 인기를 부러워하는 댓글들이 종종 달렸습니다. 연예인에 대한 근거 없는 악성 루머가 댓글로 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댓글들의 바탕에는 연예인이 성공하게 된 배경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깔려있었습니다. 얼굴이 예뻐서, 부모가 지원해줘서, 회사를 잘 만나서 어린 나이에 큰 인기를 누리고 돈을 벌게 된 거라는 억측과 질투 어린 시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데뷔 후 단기간에 성공한 연예인이 있다면, 그 비결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조건과 행운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필자 생각입니다. 블랙핑크는 데뷔한 지 2주 만에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단기간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블랙핑크로 데뷔하기 위해 멤버들은 평균 7년의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쳐야 했습니다.

 

| 삶 전체를 던져 얻은 ‘1위 타이틀’

블랙핑크는 처음에 9명의 연습생으로 시작했습니다. 모두 성공에 대한 열망을 품고 연습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휴식 시간은 2주에 단 하루, 한 달에 이틀뿐이었습니다. 나머지 28일 동안 매일 14시간의 훈련을 반복했습니다. 춤과 노래, 발성, 외국어 등 수업을 받고 매달 창작 결과물들을 회사 프로듀서들에게 평가받았습니다. 고된 연습생 생활에 어린 소녀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님과 통화하며 자주 울었습니다. 평범한 또래 친구들처럼 학교에 다니며 추억이나 경험을 쌓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월말 평가 후에는 성적에 따라 연습생 신분에서 방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연습생 친구가 하나둘씩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같이 부둥켜안고 울다가도 곧바로 오전 훈련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 평가에 대한 압박, 부족한 실력에 대한 스트레스, 언젠가 방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기껏해야 열너댓 살 소녀들이 치러내기에는 너무 가혹한 시련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이들의 연습생 기간은 무려 7년이었습니다. 저 긴 시간을 과연 누가 버텨낼 수 있을까요. 주목할 것은 이 혹독한 연습생 시절 이전에도 또 다른 연습 기간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소질이나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모두 대형기획사 연습생으로 선발되지 않습니다. 이미 연예인으로서의 자질이 발현되고, 그것이 결과로서 증명된 친구들만 선발됩니

다. 블랙핑크 멤버들은 이미 서너 살 때부터 춤을 따라 하며 배웠고, 노래를 즐기면서 익혀왔습니다. 연습생으로 선발되기 이전에도 이미 10여 년의 자발적인 노력과 연습 기간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지상파 음악 프로에서 1위를 하는 데 필요했던 시간은 2주가 아닙니다. 기획사에서의 혹독한 연습생 생활까지 7년이 필요했습니다. 아니, 태어나서부터 시작된 익힘의 시간까지 따지면 삶 전체가 필요했습니다.

 

|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비범한 수행

처음부터 뛰어난 기질을 보이는 수행자들이 간혹 있습니다. 필자와 같이 수행을 시작한 도반 중에서도 그러한 분들이 있습니다. 남보다 선정에 곧잘 들어가고, 좌선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으며, 혼침에 빠지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근기가 뛰어나서 수행을 잘한다’는 식의 평가를 합니다. 수행을 처음부터 잘하는 이유에 대해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기에 전생의 선근(善根)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해석을 그다지 신임하지 않습니다. 근기는 선천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삶을 치러내며 후천적으로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수행하기에 좋은 근기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 전체가 그를 수행자로 만들기에 적합한 경험과 시간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그러한 스님들로부터 출가 이전의 삶에 대해 들어보면, 대부분 처절한 고통과 극심한 자기 탐구의 과정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뼈를 깎는 경험과 노력, 실패와 눈물이 모여 수행하기에 적합한 근기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뛰어난 수행자를 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들의 노력과 눈물들이 마음속에 묵묵히 그려집니다.

좌선이나 염불, 절이나 마음챙김 등 정형화된 수행만 수행이 아닙니다. 살아가며 겪었던 경험과 노력, 실패 또한 여실한 수행입니다. 다만 이를 정규화된 수행이라 여기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는 삶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수행을 해왔고, 이 수행을 떠난 적도 없습니다. 과연 블랙핑크가 세속적인 삶을 지향하며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고통에 몸부림치고,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오랜 시간을 견뎌 자신을 완성해내는 이 모든 과정이 정형화된 수행은 아니지만, 그들은 이미 삶 전체로서 수행을 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단련하고 완성해가는 과정이 이미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은 블랙핑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눈앞의 삶이라는 거대한 터전에서, 각자의 인연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 삶이 시작된 순간, 이미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러나 이미 그것을 하고 있다.’

대학생 때 수첩에 적어놓고 끊임없이 반복해서 새겨왔던 구절입니다. 필자는 이 구절에서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찾아왔습니다. 물론 ‘그것’에 대한 명확한 답을 서둘러 내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쉽게 답을 내리면,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놓칠 수도 있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답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절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끊임없이 그 의문을 이어 갔을 뿐입니다. 그리고 의문이 깊어질수록, ‘그것’ 또한 한없이 깊고 넓어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수행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수행을 하고 있다.’

삶이 시작된 순간, 우리는 이미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원제 스님
2006년 해인사로 출가, 도림법전 스님의 제자로 스님이 되었다. 2012년 9월부터 2년여간 티베트 카일라스를 시작으로 5대륙 45개국 세계 일주를 했다. 이후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는 좌우명으로 지내고 있다. 선원에서 정진하는 수좌로 현재 김천 수도암에서 수행 중이다. 저서로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2019, 불광출판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