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명 스님의 온에어(On Air)] 지금 행동이 미래의 내 모습

2021-01-18     진명 스님

새벽 산사의 문을 열고, 이른 아침 생방송을 하기 위해 사찰을 나선다. 코끝에 닿는 알싸한 공기가 겨울 초입에 있음을 실감케 한다. 세월을 품고 서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는 겨울나기를 준비하며 곱게 물든 잎사귀를 땅으로 내린다. 이 세상에서 역할을 다 하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도 이렇게 곱게 물든 낙엽처럼 아름다우리라.

 

| 불자가 된 가톨릭 신자

가을의 뒷모습은 훌쩍 지나버린 시간의 흐름을 돌아보게 한다. BTN 불교라디오 울림에서 청취자를 만난 지 벌써 4년이다. 라디오 첫 시간부터 함께 한 애청자와 인연들이 참으로 소중하다. 그중에 한 분이 ‘스님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스님의 시간이 편안해서 즐겨 듣고 있습니다’라고 게시판 글을 남겼다. ‘이웃 종교를 신앙하는 분이구나’ 생각하며, 종교의 편견 없이 방송을 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진행자와 애청자로서 인연이 이어졌다. 

어느 날 그가 『금강경』 강의를 듣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가끔 가톨릭 신자로서 신행도 전해오던 애청자였기에 ‘이웃 종교를 좀 더 깊게 알기 위해서 『금강경』 강의를 듣는구나’라고 여겼다. 

우리나라의 종교 상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참으로 특이하다는 말들을 한다. 모든 종교 활동이 가능하면서도 큰 갈등 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이웃 종교를 신앙하는 광신도의 훼불 행위가 있긴 하지만 이웃 종교를 존중하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불교와 가톨릭의 신자들은 소통이 원할하고 친구나 도반을 따라 봉사활동도 함께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금강경』 강의를 듣거나 스님들과 함께 명상공부를 하고 있던 그 애청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불현듯 ‘스님 저 수계 받고 법명도 받았습니다. 축하 해주세요’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불자가 되어서 많이 축하하고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그분의 심정을 헤아려봤다. ‘아! 이분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모태신앙을 떠나 다른 종교로 마음을 돌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만큼 고민이 컸을 것으로 짐작했다. 대부분 종교를 개종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믿었던 종교를 떠나면서 믿고 의지했던 종교에 대해 많은 비판을 남기고 떠나게 된다. 그런데 이 불자는 그동안 믿어왔던 종교에 대한 의리와 존중은 그대로 간직한 채 떠나온 것이다.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불평과 비판하는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부정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종교 안에서 자신의 길을 지혜롭게 찾아가는 데 그 에너지를 쓰기 바랐던 것이다. 

 

| 눈 앞에 펼쳐진 고해 벗어나려면

불자가 된 애청자와 자리를 하게 됐고, 그 종교를 떠나온 연유를 알게 되었다. 질곡 많았던 자신의 삶이 그동안 신앙했던 종교의 교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고, 설명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모두 이해하고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 자신의 삶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야 사람과의 인연이나 주어진 일들을 마무리도 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배우고 실천하는 지혜로운 불자들은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의 인연과 주어지는 일을 탓하지 않는다. 부처님이 남긴 이 지혜로운 말씀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면(欲知前生事), 금생에 받는 것을 보면 알 것이요(今生受者是), 만일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면(欲知來生事), 금생에 행한 일을 보면 알 것이다(今生作者是).” 

『잡아함경(雜阿含經)』 말씀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과거를 넘어 전생을 알고 싶고, 현재를 넘어 미래에 자신의 삶을 알고 싶어 할까. 이 사구게(四句偈, 네 구절로 이뤄진 시)는 명쾌한 답이 될 것이다. 아마도 애청자는 이 명쾌한 말씀이 가슴에 깊이 닿았을 것이다. 도저히 자신의 삶이 이해되지 않아서 평생 내려가지 않는 체증처럼 답답했는데 부처님 말씀 안에서 순간 가슴이 뻥 뚫렸다고 했다. 삶이 원만하지 않고 실타래처럼 꼬여가면 대부분 부모님 탓이나 조상 탓을 하게 된다. 더 심하면 무릎이 닳도록 기도하고 입에 침이 고일 날이 없이 염불하고 수행하는데 왜 내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지냐고 불보살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고비고비 어려운 삶이 다가오더라도 현실을 살피고 받아들여 인정하며 새롭게 거듭나는 삶의 자세라면 존재하는 그곳이 바로 정토일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고해를 벗어나는 길은 어려움 앞에 현실을 부정하며 포기하고 주저앉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다시 일어나는 용기 있는 자세가 삶을 윤기 있게 바꾸어 줄 것이다. 큰 용기로 마음을 돌려 불자로 사는 삶을 시작한 그 애청자가 불보살의 가피 안에서 나날이 행복하기를 축원한다.

 

진명 스님
시흥 법련사 주지. 1982년 청도 운문사에서 정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4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88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운문사 승가대학과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선학과를 수료했다. ‘(사)맑고 향기롭게’ 사무국장,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중국 북경 만월사와 대련 길상사 주지를 역임했다. 문화재청 문화재건축분과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