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철학자의 사색] 숲은 詩다, 눈부처다

2021-01-07     김용규

가을이 예뻐서일까, 아니면 아까워서일까? 최근 주말마다 여남은 명의 사람들이 숲으로 찾아와 숲을 읽어 달라 청하고 있다. 기쁜 요청이기에 필자는 그들을 숲으로 안내한다. 지금 숲은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구 북반구의 리듬에 따라, 살아 있는 모든 존재의 형상이 날마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동할 수 있는 생명과 붙박이로 서 있는 생명, 땅 위 생명과 땅속 생명, 물속 생명과 물 밖 생명, 누구도 가릴 것 없이 우주의 리듬을 따라 일제히 제 삶의 리듬을 조율하고 있다.

날마다 숲이 달라지므로 그 숲을 읽어주는 내 이야기의 주제와 장소, 그리고 대상 역시 날마다 달라진다. 하지만 여는 이야기의 주제는 항상 같다. 우선 당신들의 닫힌 눈을 열라는 것이다. 머리에 갇혀 있는 인식의 좁은 경계를 가슴으로 몸으로 확장해보자는 것이다. 하루하루라는 미시의 시야를 일생이라는, 아니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이후라는 거시의 시선으로 넓혀보자는 것이다. 무수한 연기의 인드라망이 빚어내는 저 숲 존재들의 화엄. 이를 봄으로써 오직 나 하나의 욕망을 붙들고 씨름하는 삶의 태도를 바꾸자는 말이다. 온 생명의 향연과 조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정렬해 보자는 것이다.

 

| 숲을 읽는다는 것

최근 지인이 보내준 시집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러분은 시를 자주 읽습니까? 시인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신비를 마주하게 되고 그리하여 세상을 경이롭게 여길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 우리의 좁아진 감각을 넓혀 풍성한 감정을 회복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돈이나 자신이 붙들고 있는 어떤 신념 같은 것이 구해줄 수 없는 삶을 시가 구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시를 즐겨 읽지 못하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현실인 듯합니다. 저는 마음 내어 시를 읽기 어려운 현대인들에게 숲으로 오라고 말합니다. 숲이 詩(시)요, 詩가 건넬 수 있는 모든 것을 숲이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반짝이는 눈빛이 사그라지기 전에 그들의 시선을 바로 앞에 펼쳐진 숲으로 이끈다. “자, 이제 숲을 봅시다. 여러분은 저 숲에서 무엇을 발견하는지 궁금합니다. 가만히 숲을 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발견한 것들을 제게 들려주세요.” 사람들의 눈동자는 느리지만 분주하다. 대개 말이 없다. 드물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무와 낙엽”, “새소리와 바람 소리”, “안정감, 평화”. 대답의 대부분이 시각과 청각, 혹은 머릿속이 빚은 추상에 갇혀 있다. 

“깊게 숨을 쉬어보세요. 여러분의 폐부로 파고드는 향기를 느껴보세요. 얼굴과 손, 목덜미로 스치는 바람이 느껴지나요? 발바닥에 닿아있는 부드러운 흙은 어때요? 내내 존재하여 여러분 앞에 펼쳐졌던 것들인데 이제야 감각되기 시작하죠? 시가 우리에게 열어줄 수 있다는 그 다채로운 감각이 숲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지죠? 혹시 떨어지는 낙엽이 소리 없이 그어내는 그 탈락의 궤적을 찬찬히 살피다가 삶의 생성과 명멸의 신비와 마주한 적이 있나요? 일상에서 더 많은 신비를 경험하는 삶은 그렇지 못한 삶보다 얼마나 풍부한 삶이겠어요! 그러니 숲이 곧 詩랍니다.” 

 

| 누구나 꽃눈이 있다

말을 경청하던 한 사람이 정리를 곁들여 물었다. “풍부한 감각이 깨어나고 신비와 만나는 기쁨까지는 알아챘습니다. 그런데 숲을 만나는 일이 왜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이 될 수 있죠?” 

필자는 “이제 막 보여드리려 했다”고 답한 뒤모두 쪼그려 앉아보자고 했다.

“낙엽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숲 바닥에서 올해 태어난 생명을 발견해 보세요. 여기 낙엽 위로 살짝 드러나 있는 생강나무, 아직 연두색 이파리 두 장을 달고 있는 이놈 보이죠? 올해 태어난 녀석입니다. 그리고 뚝 부러진 이 나무도 보여요? 그런데도 다른 가지에는 열매를 달고 있고 내년에 피우기 위해 맺어놓은 잎눈과 꽃눈이 보이죠? 이 죽어가고 있는 나무와 그 나무에 피어났다가 사그라지고 있는 목이버섯도 보이나요? 모두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인드라망이죠. 여러분이 겪고 있는 삶에 관한 모두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생명의 모습입니다. 우리 역시 태어나고 욕망합니다. 관계 속에서 좌절과 상실과 상처를 겪습니다. 그런데도 주어진 삶을 껴안고 사랑해내지 않던가요? 숲이 말해주고 있죠? 너만 아픈 게 아니라고! 내게 꽃눈이 있듯 너에게도 꽃눈이 있다고! 꽃눈 안에 꽃은 고스란히 접혀 피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그리고 마침내 피어날 것이라고! 그러니 숲은 거울이 되어 나를 보게 하는 시이지요. 또 눈부처죠? 자주 숲을 찾으세요. 그리고 자신과 만나시기 바랍니다.”

 

김용규
숲의 철학자. 숲을 스승으로 섬기며 글쓰기, 교육과 강연을 주로 한다. 충북 괴산 ‘여우숲’ 공간을 연 설립자이자 그곳에 세운 ‘숲학교 오래된미래’의 교장이며 ‘자연스러운 삶 연구소’의 대표다. 숲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마침내 진정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저서로는 『숲에게 길을 묻다』, 『숲에서 온 편지』,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