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홍수 속 혼란에도 붓다 지혜 전하는 나침반

불교, 미디어를 말하다 | 영상미디어 홍수 속 불교잡지

2021-01-14     박부영

 

| 미디어는 콘텐츠 담는 그릇일 뿐

영상이 지배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잡지 미래를 논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 전달 도구에 눈길이 멈춰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논의의 방향이 대개 플랫폼, 즉 매체에만 매몰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플랫폼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생산자 위주의 일방적 전달 방식, 느린 전달 속도, 비싼 제작 비용은 현재 잡지 매체가 지닌 한계점이며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플랫폼 논의에 치중하다 보니 정작 챙겨야 할 본질을 놓치는 데 있다. 화두는 콘텐츠다. 음식이 맛있으면 멀리서도 찾아오듯 콘텐츠가 훌륭하면 독자가 알아서 찾아온다. 영상미디어가 넘치는 디지털 환경은 잡지의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잡지는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일등 포교사로서 시대에 발맞춰 제 역할을 다해왔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발행 주체가 바뀌고 담는 그릇의 형태가 조금씩 달라졌을 뿐, 부처님 가르침을 시대에 맞게 풀이해 대중에게 전달하고, 시대의 아픔을 부처님 말씀에 따라 재해석하며, 신도들 공론의 장으로서, 소식을 알리는 뉴스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 불교잡지의 등장과 부흥

한국 잡지 전성기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였다.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이뤄진 언론 자율화에 따라 잡지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후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열리면서 종이신문과 잡지가 쇠락의 길을 걸었고, 이제는 방송마저 유튜브에 자리를 내주는 시대를 맞았다. 전통미디어가 퇴조하면서 1인 미디어 등 다양한 형태의 영상미디어가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불교잡지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통합종단이 출범한 1962년 이후만 살펴봐도 신문은 「불교신문」의 전신 「대한불교」 한 곳뿐이었지만 잡지는 1962년 「불교사상」을 시작으로 「불교생활」, 「백련」, 「법시」, 「법륜」, 「불교문화」가 발간됐다. 1970년대에는 1974년 11월에 나온 「불광」을 비롯해 1975년 최초의 선(禪) 잡지 「선문화」, 1979년 도선사의 「여성불교」가 나왔다. 1960년대 잡지는 발간 주체가 대부분 재가자였으며, 「불광」은 스님이, 「여성불교」는 사찰이 주체였다.

1980년대는 ‘불교잡지 르네상스기’였다. 종수(種數)도 많고 내용도 다양했다. 이전과 달리 발간 주체는 대부분 사찰이었다. 1982년 해인사의 젊은 스님들이 월간 「해인」을 창간했다. 10·27 법난에 자극받은 젊고 개혁적인 스님들이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낸 첫 불교잡지였다. 이 해 비구니 승가대학인 운문사에서도 학인스님들이 주도해 「운문」지를 발간했다. 통도사는 1990년 월간 「등불」을 발간했다. 「등불」은 제호가 여러 번 바뀌었다. 2009년 6월호부터 2015년 6월호까지 「보궁」으로 나오다가 다시 「등불」로 돌아간 뒤 2019년 8월호부터는 「통도」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외 「약수법보」, 「수국사보」, 송광사 「불일회보」, 「석왕사보」, 「능인선원」 등 사보가 잇따라 발간됐다. 이 당시 사보는 주로 사찰 법회 안내, 스님 법문, 회원 동정 등 단순 소식 전달 기사가 주로 실렸다. 하지만 소식지를 받아본 신도들의 호응에 힘입어 간단한 불교 교리와 상식, 신도들이 참여하는 신행담, 수필과 시가 보태지면서 점차 잡지형태를 띠게 됐다.

1985년 나온 월간 「대원」(이후 「대중불교」로 제호 변경)은 작은 판형에 활자만 있던 기존 불교잡지와 달리 큰 판형에 컬러 사진이 들어간 일반 잡지 모습을 띠었다. 내용도 불교 교리를 홍보하던 사상지에서 탈피해 종단 문제, 신행 흐름 등 시사를 다루었다. 1989년에는 최초의 어린이 전문 잡지 「굴렁쇠 어린이」가 나왔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 이벤트였던 ‘굴렁쇠 소년’에서 이름을 따왔다. 포교사 전문지를 표방한 「월간법회」, 서경보 스님이 발행인이던 「선사상」, 시사 문제와 불교계 현안을 심층적으로 다뤘던 월간 「현대불교」도 1980년대를 대표하던 잡지였다. 「봉은」, 「신행회보」, 「관음」, 「동학」 등 다양한 형태의 사보들도 1980년대 불교잡지를 더 풍요하게 만들었다.

 

| 침체한 잡지 시장, 선방 중인 「불광」

1990년대 들어서면 잡지는 신문에 자리를 내어준다. 1988년 언론·출판 자유화 조치에 따라 많은 신문이 생겨났다. 발간주기가 길고 소규모 영세자본에 의존하던 잡지는 매일 대량으로 뉴스를 쏟아내는 신문에 대적할 수 없었다. 

불교계 언론·출판도 신문이 주도했다. 「불교신문」과 「주간불교」로 양분됐던 신문 시장에 「법보신문」, 「해동불교」, 「대한불교」가 등장했고, 1994년에는 한마음선원이 「현대불교」를 창간했다. 재가자가 발행하던 불교잡지는 이 시기 대부분 폐간했다. 「법륜」, 「법시」, 「불교사상」, 「법회」, 「선사상」, 「현대불교」, 「굴렁쇠 어린이」가 대표적이다.

재가자가 발행하던 많은 잡지가 폐간됐지만, 사찰이 발행하는 사보(寺報)는 더 발전했다. 종수도 늘어났다.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 들어 더 강화됐으며 사보는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불교잡지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발간되는 불교잡지 중 사찰이나 불교 법인이 발행 주체가 아닌 잡지는 「맑은소리 맑은나라」와 차 전문 잡지 「차의 세계」, 「차와 문화」 정도다. 「불광」은 불교계 잡지 중 유일하게 주식회사에서 발행한다.

198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사보 열풍도 부침을 겪었다. 1990년대 사보 전성기에는 발간되는 사보가 100개에 이르렀지만, 주지스님 개인 원력에 의존하던 작은 사찰의 사보는 대부분 사라졌다. 잡지 발간 역사가 오래된 큰 사찰 사보와 사미니 승가대학이 학보 성격을 겸해서 발간하는 사보 정도만 살아남았다. 해인사 「해인」, 통도사 「통도」, 운문사 「운문」, 봉녕사 「봉녕」, 청암사 「청암」, 동학사 「동학」, 봉은사 「판전」이 대표적이다.

사찰에서 발간하는 사보는 내용과 편집이 거의 비슷하다. 서두에 방장이나 스님의 법문을 배치하고 교리, 문화, 성보, 수필, 신행 상담, 의학 상담, 사찰 소식, 신도 글 등을 싣는다. 승가대학 학보 성격을 띠는 「운문」과 「봉녕」 등은 연 2회 발간하며 주로 학인스님들 글을 싣는다는 점에서 일반 사보와 성격이 다르다. 학인스님들의 소논문을 싣는 학술지 성격도 있다. 일반인은 접하기 힘든 승가대학의 일상과 수행을 잡지를 통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폐간된 불교잡지는 대부분 경영난이 원인이다. 신문이 잡지 역할을, 사찰 사보가 일반 불교잡지 역할을 대신하면서 시장이 좁아졌다. 그런 점에서 「불광」의 존속은 경이로울 정도다. 디자인과 사진에 적잖은 제작비를 들이고도 살아남은 것은 「불광」이 독자 외연 확장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좋은 내용과 감각을 갖추면 사찰 사보처럼 고정 독자층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음을 「불광」은 증명했다.

2000년대 이후 불교잡지는 디지털과 영상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언론·출판 시장의 주도권은 영상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얼마 남지 않은 불교계 인쇄 매체 중 「불광」만이 빠르고 적극적으로 영상에 투자해 순항 중이다. 종이 매체를 기본으로 하고, 유튜브 채널도 함께 운영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잡지 통한 전법 이상 무(無)!

막대한 양의 영상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방송의 틈바구니에서 종이 잡지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종이 매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관건은 매체가 아니라 콘텐츠다. 잡지가 전성기를 누렸던 이유는 다른 대안 매체가 없었던 환경 덕도 있지만, 불교 교리 해설에 목말라하던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불교잡지에 실리는 신도들 수필이나 신행담, 사진 한 컷에 담긴 짧은 소식들은 불자 간 소통창구였다. 

사보는 고정 독자층을 바탕으로 사찰과 사회를 잇는 창구 기능을 하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오히려 안정적인 제작환경이 발목을 잡은 듯하다. ‘내 대(代)에 중단할 수 없다’는 의무감에 억지로 유지한다는 느낌을 주는 사보가 많다. 그 틈을 사보 대행업체가 파고들었다. 과감한 투자와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보 또한 명맥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월간 「불광」은 침체한 잡지 시장에서 선방 중이다. 사찰 사보처럼 고정 독자층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영상 매체는 인쇄 매체보다 진입 장벽이 낮다. 누구나 영상을 만들어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은 부실한 경우가 많다. ‘풍요 속 빈곤’이다. 잡지는 정법(正法)과 비법(非法)이 혼재하는 정보의 홍수에서 혼란을 겪는 독자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스승의 역할을 해야 한다. 때로는 지면을 통해, 때로는 영상을 활용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전하는 ‘나침반’이 되는 일. 불교잡지가 가야 할 길이다.

영상 매체는 종이 매체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다. 부처님은 걸어서 마을에 찾아가 말씀과 행(行)으로 가르침을 전했고, 아난은 기억을 되살려 가르침을 남겼으며 구마라집은 한자로, 세조는 훈민정음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전했다. 담는 그릇과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부처님 가르침은 당대 사람들에게 전해져왔다. 화두는 전법(傳法)이었다. 그 화두를 놓지 않는다면 잡지는 여전히 훌륭한 매체다.

 

박부영
「불교신문」 상임논설위원. 「불교신문」 편집국장, 주필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불교풍속고금기』, 『조계종단 50년사』, 금오 선사 평전 『금까마귀 계수나무 위를 날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