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공감하며 ‘척’ 아닌 ‘찐’ 행복 찾기

작가 정여울

2020-12-28     정태겸

정여울. 그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물살이 방향을 바꾸며 세차게 흘러가는 걸 여울이라고 부른다. 좀처럼 이름으로는 쓰지 않는 단어지만 그는 좋은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변화무쌍한 삶을 살면서 주변에 변화를 일으키고 다른 이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마음이 아픈 시대다. 겉보기 멀쩡해도 속으로 온갖 상처를 안고 사는 시대. 그런 이에게 조곤조곤 치유의 글을 전하는 정여울 작가를 만났다.

 

| 평범해서 공감 가는 이야기

정여울 작가의 글은 대체로 그가 살아온 지난 삶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 안에서 트라우마 같은 제법 묵직한 심리적 문제를 다룬다.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했는지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독자들은 그 행간에서 활로를 찾고 치유의 방법을 깨닫는다. 그의 글을 접한 이가 계속 ‘정여울’을 찾는 이유다. 그는 어떤 과거를 살아온 걸까. 왠지 남들과는 다른 유년기를 보냈을 것만 같았다.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어요. 다만 글을 쓰다 보니 평범한 일상 속에 특별함이 있더라고요. 최근에 ‘그네’를 소재로 칼럼을 쓴 적 있어요. 글의 소재로 삼기에는 너무 사소하죠. 하지만 저에게 그네는 커다란 콤플렉스였어요. 어릴 때 그네를 타고 놀고 싶었는데, 놀이터에 그네가 없었거든요. 그 기억 때문에 커서도 그네만 보면 그렇게 타고 싶어 해요. 콤플렉스라는 게 그렇죠. 남이 보기에 아무렇지 않아도 나에게는 큰 것. 나에게는 큰 상처여서 말하기 힘든 것. 평범한 이야기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여서 반향이 있는 게 아닐까요.”

 

| 행복한 기억은 상처를 치유하는 약

어릴 때 그는 모범생이었다. 모범생은 제약이 많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안 될 것만 같은 심리적인 장벽이 생긴다. 힘들다고 토로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부모님도 다 살아계시고 공부도 잘하는데 힘든 게 뭐가 있담’ 하는 식이다. 그래서 힘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해소하고 털어버리는 법을 모르니 마음속 깊이 가라앉은 앙금 위로 또 다른 상처가 쌓이고 쌓였다. 특히 그의 20대는 콤플렉스가 쌓이는 시기였다. 

“상처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사라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는 수시로 상처를 받았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상처받고, 또 상처를 주기도 했어요. 30대가 되어서야 그런 제 마음을 돌아보기 시작했죠. 왜 우리는 상처를 주면서 살아가는 걸까…. 그런 생각에서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공부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정신의 질병이라는 게 이렇게 종류가 다양하구나.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구나. 그래서 심리학을 깊이 팠어요.”

그는 30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융 심리학(의식과 무의식 간 관계를 확립하고 이해하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몰두했다. 마음을 돌아보면서 깨달았다. 어린 시절 겪었던, 남이 보면 지극히 평범한 그 기억이 트라우마가 됐다는 걸. 그 기억을 남에게 털어놓지 못해서 더 어둡게 느껴졌음을. 그의 저서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에는 어린 시절 경험한 왕따의 기억이 담겼다. 담임선생님이 그를 왕따로 만들었고, 이는 다른 학우들의 따돌림으로까지 이어졌다. 사랑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상대가 좋아할 만한 말과 행동을 연기하며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심리적 불안정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탄력성은 사랑의 기억, 행복한 기억을 바탕으로 생성된다. 다행히 그에게는 행복한 기억이 있었다. 사랑받았던 기억이 있었고, 가치 있는 존재로서 자존감을 키우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극복할 수 있었다. 정여울 작가는 “어린 시절 아름다운 기억, 행복한 기억이 나중에 나를 치유하는 약이 됐다”고 말한다.

‘블리스(bliss)’를 자주 경험하면 행복해진다. 정여울 작가에게 블리스는 글 쓰는 일이다.

 

| ‘셀프’를 돌보는 내적 희열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산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 ‘에고’를, 내가 바라보는 나 ‘셀프’보다 우선시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에고보다 셀프를 돌봐야 한다. 세계 최초로 ‘국민총행복(GNH)’ 지수를 만든 도르지 펜조레 부탄국민행복연구소장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남과 나를 비교하기 때문이라고. 나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정여울 작가도 같은 관점에서 말한다.

“에고는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어요. 실적을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하는 ‘척’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나의 무의식은 속일 수 없어요. 문제는 우리가 무의식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셀프를 신경 쓰지 않는 거죠.”

우리는 수시로 기계를 들여다보고 그곳에서 재미를 찾는다. 하지만 셀프를 돌보는 법은 기계에서 얻을 수 없다. 방법은 내 생각을 쓰고 다른 이의 생각을 읽고 내 생각을 보태는 것이다. 정 작가는 이를 “가장 재밌고 돈도 덜 드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비싸고 맛있는 것을 먹은 기억은 한순간이지만 책 한 권 쓴 기억은 평생을 가져갈 수 있다.

기쁨도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외부 자극에서 비롯되는 ‘해피니스(happiness)’와 누가 뭐래도 내가 좋은 ‘블리스(bliss)’. 남들이 다 시큰둥해도 내가 좋다면 그건 내적 희열, 블리스다. 블리스를 자주 경험하면 행복해질 가능성이 크다. 에고가 아닌 셀프를 살찌우는 길이다. 정 작가에게 블리스는 글을 쓰는 일이다.

“되도록 읽고 쓰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생활을 조절하고 있어요. 오롯이 나인 시간이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있어야죠. 온전한 블리스의 시간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봐요. 성격 나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그건 지키려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에고만 남는 삶을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심리학의 힘, 글쓰기의 힘, 그리고 문학의 힘. 이것이 정여울이라는 인간을 지탱하는 트라이앵글이었다. 앞으로는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한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 돌이켜보면 삶의 절반은 여성으로 절반은 남성으로 살아온 것 같다는 그다. 늘 싸워서 살아남는 식이었다. 이제는 여성으로 사는 삶에 눈뜨고 그런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십 년을 공들인 교수의 길을 포기했던 때가 있어요. 그때 결심을 실천하던 순간 비로소 남성처럼 살던 페르소나를 내려놓은 것 같아요. 치열한 싸움의 길에서 벗어난 거죠. 예전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었는데, 말을 못 했어요. 여성이라는 게 내 삶에 어떤 제약도 되지 않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무섭지 않은 페미니즘, 남성도 이해할 수 있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정여울 작가는 자주 웃었다. 창밖으로 덕수궁의 단풍이 늦가을의 빛깔을 청명한 햇살에 유독 반짝이던 날이었다. 맑은 웃음과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 더 밝고 화사하던 오후. 정여울 작가는 행복해 보였다.

 

사진. 정여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