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처럼 그윽하게 퍼지는 붓다의 향기

특집|가을·카페·붓다(1)|문화가 있다 | 복합문화공간 쿠무다

2020-12-01     주영미(법보신문 부장)
복합문화공간 쿠무다.

유난히 일에 쫓기는 날이다. 마감했지만 다시 마감이 기다리고 있다. 허겁지겁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가로수 위로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잎과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발견한다. 아, 가을이다. 잠시 일을 멈추기로 한다. 저 하늘을 퍽 닮은,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보고 싶다. 부산 송정해수욕장으로 운전대의 방향을 돌린다.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영남권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목적은 서핑? 아니다. 해수욕장에 인접한 ‘구덕포’라는 지역에는 맛집, 멋집이 줄지어 자리한다. 이 거리의 많은 명소 가운데 일반인들에게도 손꼽히는, 불자들에게 더 반가운 힐링 공간이 있다. 복합문화공간 쿠무다(KUmuda, 이사장 주석 스님)가 그 주인공이다.

 

사진. 유동영

 

맛집, 멋집이 줄지어 자리한 부산 구덕포의 거리에 일반인들에게도 손꼽히는 명소, 복합문화공간 쿠무다가 있다.
 
| 명소의 명품 카페

송정 바다와 눈인사를 나누고 쿠무다로 향한다. 카페 안에는 사계절 싱그럽게 자라는 듬직한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나무 주위 손닿는 곳곳에 책들이 놓여있다. 벽 한쪽 공간을 풍성하게 차지한 책장이 카페의 온기를 더한다.

카운터 옆 진열 냉장고에는 수제 디저트들이 단풍보다 더 고운 빛깔을 뽐낸다. 매일 아침 전문 제빵사의 손길을 거쳐 나온다는 베이커리 종류도 풍성하다. 다양한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 종류가 적힌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긴다. 지금 딱 좋은 원두 추천을 부탁하니 케냐 AA를 제안한다. 도톰한 파운드 케이크과 함께 추천 메뉴를 주문한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 쿠무다 바리스타는 한 잔 한 잔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다리는 동안 눈길이 가는 책을 펼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메뉴가 준비되었음을 알린다. 백자 찻잔 속 감미로운 향의 커피와 정갈하게 담긴 디저트를 마주하니 ‘대접받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꽉 막힌 도심 한복판을 지나, 잿빛 고속도로를 통과해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그런데 커피 한 잔 마주한 이 순간은 참으로 여유롭다. 이제야 눈을 조금 더 크게 뜨고 허리도 쭉 편다.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은 따뜻한 카페라떼와 스리랑카 우바티를 주문했다. 디저트 접시에 담긴 동글동글한 마카롱과 거칠어 보여도 속은 부드러운 스콘 조각이 마주 앉은 두 사람의 표정처럼 어울린다. 마음속으로 다음 방문 때 주문할 메뉴도 미리 점찍어본다.

시선을 넓혀 카페를 둘러본다. 한쪽에는 언제든 덮개를 열겠노라는 당당한 자세의 그랜드피아노가 있다. 피아노 위의 조각상은 다름 아닌 자애로운 미소의 부처님이다. 다른 한쪽에는 작은 갤러리도 보인다. 책장의 책에도 다시 눈길이 간다. 익숙한 제목의 인문학 서적들과 함께 신간부터 베스트셀러까지 꽤 다양한 불서가 자리한다.

책장 끝자락에 카페를 소개하는 작은 안내문이 놓여있다. 쿠무다는 곧 ‘문화예술 사단법인 쿠무다’의 복합문화공간임을 알게 해주는, 쿠무다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이다. 안내문은 쿠무다에서 정기적인 북 콘서트와 음악회 그리고 소규모 전시회까지 다양한 문화 행사가 진행됨을 소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찾아가는 음악회를 진행하고 각양각색의 문화 강좌를 개최하며 문화 예술인 양성을 위한 장학회도 운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안내문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지금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수많은 인연과 함께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잠시 카페 문을 열고 밖으로 향한다. 2층에 있는 부산 대운사를 참배하기 위해서다. 쿠무다가 위치한 건물에는 입구를 달리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복도에서부터 침향의 정갈함이 감돌며 이곳이 도량임을 명징하게 알린다. 가지런히 신발을 벗고 문을 열어 들어서면 단아한 부처님이 모셔진 법당을 마주하게 된다. 여법한 사찰을 그대로 품은 이곳은 결코 넓은 공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법 큰 느낌으로 다가온다. 매월 정기법회는 물론 다라니기도, 법화경 독송기도가 진행되는 오롯한 신행 공간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비로소 발견한다. 쿠무다는 불교의 색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포교의 전면에 서 있는 또 하나의 법당이라는 사실. 더 중요한 건 이곳 쿠무다가 음식으로 치면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쿠무다는 카페 바로 앞 송정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지하 2층, 지상 8층의 대형 신축 공간을 새롭게 조성 중이다. ‘메인 메뉴’에 해당하는 신축 쿠무다는 내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한다. 카페를 통해 경험을 쌓고 저변을 확대해 온 각양각색 문화 포교 프로그램을 새 공간에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릴 예정이다. 이 같은 일련의 문화예술 활동을 위해 정기후원 회원 그리고 특별후원 회원을 모집 중이라는 소식도 반갑고, 감사하다.

해가 기울어 어느덧 주위에는 쪽빛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한 잔 커피를 마시고 몇 페이지의 책장을 넘겼을 뿐인데, 삶의 무게가 훨씬 줄어든 기분이다. 행복은 소소한 일상 속에 있음도 발견한다. 카페 문을 나서자 해조음이 밀려와 이마를 청량하게 두드린다. 

쿠무다를 찾은 누군가에게 지금 당신의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지 않아도 좋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인생 카페’로 손꼽는 이유, 아주 조금 발견한 것 같다. 

 

| 대운사 그리고 문화포교 공동체 

부산 대운사는 쿠무다를 통해 본격적인 문화포교의 깃발을 꽂았다. 쿠무다는 산스크리트어로 ‘하얀 연꽃’이라는 의미다. 주지 주석 스님은 직접 원두 로스팅과 핸드드립을 배웠고 유럽의 유명 베이커리스쿨을 찾아가 제빵 전문 자격증도 갖춘 장본인이다. 처음에는 스님이 쿠무다에서 직접 커피를 볶아 내리고 빵과 디저트를 만들었다. 7년이 지난 지금은 15명에 이르는 구성원들이 소임을 맡는다. 이른바 쿠무다 공동체다. 어떤 이는 신도, 어떤 이는 직원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매일 아침 합장 인사를 하고 법당에서 삼배를 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스님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건축, 커피, 디저트, 제빵, 음식, 문화 기획 등 각 분야 전문가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쿠무다의 불사는 전적으로 같은 이름의 건축사무소에서 맡고 있다. 대운사 신도로 출발해 쿠무다 공동체에서 맏형 역할을 맡은 차재돈 기획실장이 소장이다. 쿠무다 외에 김해 동림선원 북카페 ‘수카바’, 산청 수선사 템플스테이관 내 다실도 그의 작품이다. 신축 쿠무다 불사 역시 쿠무다 건축의 새로운 도전이다. 

쿠무다는 오전 9시에 오픈해 오후 10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사찰 직영 카페로는 꽤 긴 시간 영업을 한다. 각 메뉴는 전적으로 고급화를 지향한다. 신선한 원두는 물론 빵 만드는 밀가루, 홍차의 종류도 까다롭게 선택한다. 메뉴 차별화 전략은 이미 쿠무다를 찾는 많은 이들에게 매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불자가 아니어도 정성 들인 쿠무다 만의 메뉴를 맛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오는 이들이 상당하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지난 8월에는 광안리해수욕장 수변공원에 쿠무다 2호점도 개설됐다. 쿠무다에서 카페 운영의 전반을 배우고 익힌 고건욱 총괄팀장이 직접 팔을 걷고 야심 차게 오픈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또 한곳의 관광 명소인 광안리의 신축 상가에 자리한 쿠무다 2호점은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춘 파스텔 톤의 공간 구성이 눈길을 끈다. 쿠무다의 대표 메뉴인 핸드드립 커피와 수제 디저트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커피는 쿠무다에서 직접 선별한 원두로 내린다. 커피 종류를 모르면 바리스타에게 추천받자.

 

| 불교와 문화 연결하는 ‘힐링 브릿지’

쿠무다가 지향하는 역할은 ‘힐링 브릿지(healing bridge)’다. 예술인들에게는 문화예술을 활성화하고, 일반인들에게는 문화예술의 에너지로 힐링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한 사회의 문화예술이 풍성해지고 예술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세상이 행복해진다”는 주석 스님의 포교 지론을 현실로 펼친 곳이기도 하다. 2013년 개원 이후 정기적으로 이어진 북 콘서트에는 시인 안도현, 정호승, 황동규, 문태준, 소설가 김연수를 비롯해 혜민 스님, 정목 스님 등 힐링 멘토들도 초대했다. 북 콘서트와 더불어 공연 문화 활성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전문 성악인들과의 교류로 ‘Music & Talk Concert’라는 주제로 크고 작은 공연을 이어왔다. 공연의 연장선으로 지난해에는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병원, 경찰서, 요양원, 사찰 등에서 다양한 계층을 위한 문화 공연으로 쿠무다의 저변을 넓혔다. 

쿠무다 갤러리도 문화 소통의 역할을 톡톡히 이어오고 있다. 작품을 걸고 싶어도 공간을 찾지 못해 애타는 작가들에게 작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카페를 찾는 일반인들에게는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예술 공간의 역할도 담당한다. 이 밖에도 스피치, 홍차, 커피, 요가, 베이킹, 사찰음식, 명상, 꽃꽂이 등 다양한 강좌로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위한 공간임을 증명해왔다. 

 

| 더 넓고 깊은 연지에서 피어날 미래

쿠무다는 내년 상반기 신축 공간으로 이전해 새롭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지하 2층, 지상 8층 860평 규모로 조성되는 신축 쿠무다에서는 해조음이 밀려오는 송정 바다를 바로 마주할 수 있다. 무엇보다 건물에는 쿠무다를 비롯해 문화예술공연장, 복합문화교육센터, 퓨전 레스토랑 그리고 콘도형 숙소 힐링빌리지가 들어선다. 250석 규모의 공연장은 쿠무다가 지향해 온 문화포교의 정점에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공연이 정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역 예술 단체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힐링빌리지는 송정 바다를 내려다보는 휴식의 장소다. 교육센터에서는 유럽의 저명한 음식 및 제빵 교육 아카데미를 유치해 한국 부산에서도 그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대운사 문화포교 원력의 출발점인 복합문화공간 쿠무다. 이제 사단법인의 이름으로 더 넓고 깊은 연지에서 활짝 피어날 내년 봄을 기다리며 오늘도 정성스럽게 커피 향기를 꽃피운다.

 

쿠무다 대표 메뉴

 

핸드드립 커피+파운드 케이크
★★★★★
쿠무다에서 직접 선별해 로스팅한 스페셜티 원두로 내린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풍미와 맛의 커피를 골라 마시는 즐거움이 있다. 고르는 것이 망설여진다면 바리스타에게 물어보자. 그날 마시기 딱 좋은 커피를 추천해준다. 핸드드립 커피에는 파운드 케이크를 곁들여보자. 한입 크기로 잘라 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는 이 케이크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핸드드립 커피의 다양한 맛과 오묘하게 어우러진다.

 

홍차+마카롱
★★★★
산지에서 직접 공수한 세계 3대 홍차를 만날 수 있다. 특히 가을에 마시는 스리랑카 우바티는 커피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홍차에 곁들일 디저트는 단연 마카롱이다. 쿠무다는 마카롱 맛집으로도 입소문이 나 있다. 형형색색 마카롱은 사전 예약 주문하면 선물세트로도 구매할 수 있다.

 

카페라떼+스콘
★★★★☆
조금 출출하다면 쿠무다 블렌딩으로 내린 에스프레소에 신선한 당일 우유가 들어간 카페라떼를 추천한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부는 날에는 더없이 든든한 메뉴다. 여름에는 아이스로 즐겨도 좋다. 카페라떼와 함께 먹기 좋은 스콘은 제법 굵직하고 투박하다. 그런데 속은 또 어찌나 부드러운지 디저트의 반전 매력을 즐겨보자.

 

복합문화공간 쿠무다
부산 해운대구 송정광어골로 62 송정동 신라빌딩 1층
051)701-7559
매일 09:00~22:00, 마지막 주문 21:30

 

함께 가면 좋은 카페

 

합천 해인사 북카페와 갤러리
2015년 조성된 해인사 경내 카페. 해인사를 찾는 관광객과 참배객들에게 ‘해인사 오아시스’로 불린다. 일주문을 지나 대적광전으로 오르는 길목, 구광루 1층을 현대식으로 개조한 공간이다. 커피 종류는 물론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카페 내에는 불교 서적도 다양하다. 해인사 역대 큰스님과 해인사 출신 스님들의 책을 주제별로 분류한 북 컬렉터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055)934-3162
매일 09:00~17:30, 동절기 마감 17:00

 

광주 무각사 북카페 로터스
2010년 문을 열고 시민을 위한 열린 문화공간으로 탄탄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주 상무지구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미 데이트 코스로 소문난 곳이다. 야외 테라스는 특히 인기가 높다. 지난 5월 지하 1층, 지상 3층의 무각사 문화관이 새롭게 조성된 가운데 1층 전시관 옆으로 새 단장 했다. 문화관 2~3층은 템플스테이 공간이다. 북카페답게 국내외 다양한 명상서적 500여 권과 인문학 서적 그리고 명상음악을 만날 수 있다. 전통차와 커피 등 마실 거리와 연꽃빵을 비롯한 간식류도 준비된다. 

광주 서구 운천로 230
062)383-0070
매일 10:30~18:00, 월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