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에서 커피를? “인증샷 남기는 핫플레이스”

특집|가을·카페·붓다|불교와 커피 그리고 카페

2020-11-30     신혁진

“절에서 커피를 마신다고요? 전통차가 아니고?” 

커피를 업(業)으로 삼은 뒤로 종종 듣는 이야기다. 고즈넉한 산사. 불어오는 바람에 은은히 울리는 법당 처마 끝 풍경소리. 그 아래 놓인 다탁에 오래된 다구를 벌이고 우려내는 맑은 차. 작은 찻잔에 쪼르륵 차 따르는 소리도 청아하게 들리는 듯하다. 

절에서 무언가를 마신다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이다. ‘다선일미(茶禪一味)’라든가 ‘선다일여(禪茶一如)’라는 말도 있으니 불교와 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생각도 고정관념일 수 있다.

 

| 일상다반사가 된 커피

다반사. 다반(茶飯)이란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을 말한다. 본래는 항다반(恒茶飯), 항다반사이지만 줄여서 다반사라고 한다. 참선 수행에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모든 일상, 즉 행주좌와(行住坐臥)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가 그대로 수행이고 선이라는 선가의 언어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반사’의 ‘다(茶)’는 커피다. 출근길에 한 잔, 점심 먹고 또 한 잔, 졸음이 밀려오는 오후에 또 한 잔. 커피는 이제 일상다반사다. 일상에서 다구 펴고 전통차를 마시는 일은 흔치 않으니….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인은 자그마치 265억 잔의 커피를 마셨다. 1인당 한 해 512잔의 커피를 마신 셈이다. 생두 수입량도 세계 7위다. 2007년에 우리 국민이 마신 총 커피 잔수가 204억 잔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10년 만에 30% 증가한 것이다. 물론 한 해 512잔 중 절반 가까이는 달콤한 커피믹스가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커피는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그 일상이 절집이라고 다를까? 산중과 도심을 막론하고 사찰에 작은 카페가 들어서고 스님들이 잠시 쉬는 지대방에는 다구 세트와 나란히 핸드드립 기구 세트가 놓이고 있다. 직접 커피를 볶는 스님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다. 여름 겨울 안거 수행 중인 선방의 대중공양 물품 목록에 커피가 올라간 지도 한참 됐다. 스님들이 신도들과 나누는 차담도 이제 커피와 함께한다. 이제 절집에서도 커피는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 목동이 발견한 커피?

커피의 발견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고대 아비시니아 지역, 지금의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발상지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언제 누가 커피를 처음으로 먹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지만, 그중에서 목동 ‘칼디’의 전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옛날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는 자신이 돌보던 염소들이 어떤 빨간 열매를 먹고 춤을 추듯 뛰는 것을 보았고, 자신도 먹어보니 머리가 맑아지고 잠이 달아났다고 한다. 당시에는 열매와 잎을 씹어 먹거나 차처럼 뜨거운 물에 끓여 먹었다. 지금처럼 커피 열매의 씨앗을 볶고 갈아 커피음료를 우려 마시는 것은 15세기 전후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커피가 전 세계로 확산한 것은 교역을 통해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로 전해지면서부터다. 아라비아로 건너간 커피는 수피교 수도승의 수행을 위한 음료로 이용됐다. 수피교는 지금은 시아파 수니파와는 결을 달리하는 이슬람교의 소수 종파 중 하나일 뿐이지만 8세기 이후 아라비아 지역에 널리 퍼진 종교였다. 수피교 수도승들은 단식하거나 밤새워 기도를 드린다거나 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주문처럼 부르는 수행을 했는데 이때 졸지 않고 밤새워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 중 하나가 바로 커피였다. 

수도승들의 커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간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이들이 ‘카베 카네스’라는 이름의 커피 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15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이슬람교 순례자들을 통해 페르시아는 물론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지중해 건너 터키까지 이슬람 세계 전역에 알려진 것은 물론 주요 교역품으로 떠올랐다. 1536년 예멘을 점령한 오스만튀르크인들은 모카항을 통해 커피를 수출했다. 바닷길 따라 커피를 북쪽 수에즈로 옮기고 낙타로 지중해의 알렉산드리아까지 도착하면 프랑스와 베니스 상인이 커피를 구매해 유럽에 팔았다. 

오스만제국은 커피 교역의 독점을 위해 볶은 커피만을 국외로 반출했으며 종자와 묘목의 반출은 철저히 단속했다. 그러나 15세기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네덜란드가 용케도 묘목을 빼내 식민지인 동인도 인도네시아 자바, 수마트라 등지에 심으면서 전 세계로 커피를 확산했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지에 수많은 커피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이후 유럽의 제국들은 아시아와 중남미를 침략해 대규모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독일이 과테말라를, 스페인이 콜롬비아를,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커피 공급처로 삼았다. 모두 남회귀선과 북회귀선 사이, 커피 재배가 가능한 ‘커피벨트’에 자리한 곳이었다. 

 

| ‘서양에서 온 탕국’

이 땅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세기 말 서양인들이 조선에 들어오면서부터. 당시는 ‘양탕국’, 즉 ‘서양에서 온 탕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곳곳에 ‘다방’이 들어섰다. 그러나 커피는 여전히 일부 계층만의 음료였다. 한국전쟁을 거친 이후에는 주한미군을 통해 들어온 인스턴트커피가 세간에 일부 유통되기도 했다. 

커피가 본격적으로 우리의 일상이 된 것은 ‘커피믹스’가 대중화되면서부터다. 커피 추출물을 동결 건조한 인스턴트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배합한 커피믹스는 지금처럼 커피 전문점이 확산하기 전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식사 후 마시는 한 잔의 인스턴트커피는 우리 식탁의 전통적인 후식인 숭늉을 대체할 지경이 되었으며 커피가 품은 카페인과 설탕의 당분은 지친 현대인을 달래주는 자양 강장 음료처럼 여겨졌다. 이후 1990년대를 지나면서 ‘스타벅스’를 위시한 커피 전문점이 성업을 이루고 고품질의 원두를 직접 내려 마시는 핸드드립이 대중화되면서 이 땅에서의 커피의 외연은 더 넓어졌다.

이슬람 수도자들이 기도 중에 잠을 쫓기 위해 먹기 시작해 널리 전파되기 시작한 커피. 기원을 생각해보면 수행이 일상인 스님들이 커피를 마시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커피와 절집의 인연도 알고 보면 깊다고나 할까.     

 

| 대중공양도 원두, 수행의 도반

그렇다면 절집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쯤일까.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나 자료는 찾을 수 없다. 과거 규모가 있는 사찰이라면 크건 작건 ‘산중다원’이라고 명명한 찻집이 있어 절을 찾는 이들이 차 한 잔 마시며 쉬어가는 쉼터 역할을 했다. 별도의 다실을 갖추지 못한 곳에서도 스님의 처소나 방사에는 어김없이 다탁과 다구를 갖추고 절을 찾는 이들과 다담을 나눴다. 또 결제 중인 선원의 수좌스님들도 잠시의 방선 시간에는 지대방에서 차를 마시며 수행의 피로를 풀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가 없는 법. 격식을 갖추어 다구를 준비하고 차를 우려 함께 나누던 모습은 이제 원두를 그라인더에 갈아 핸드드립으로 내려 함께 마시는 광경과 겹쳐지고 있다. 그것이 차든 커피든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수행의 피로를 잠시 푸는 방편일 뿐,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커피는 이제 수행의 도반이 되어 안거 결제 대중에게 올리는 대중공양물에도 원두커피는 빠지지 않고, 강원에서 수학하는 상좌나 후배 학인스님들에게 커피를 선물로 보내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성지순례나 만행길에는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드립백 커피를 바랑에 넣어 길을 떠나고 있다. 

 

| 변화하는 ‘산중다원’ 

‘산중다원’의 변화 역시 눈여겨 볼만하다. 녹차, 보이차 등 차의 역사는 유구하고 그 위상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단점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대중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투박해 보이지만 사실은 고가인 다구와 차, 왠지 격식을 갖추어야 할 것만 같은 다도법은 어떤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커피는 이제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료이고 물적 심적 부담도 그리 크지 않다. 특히 좌식문화와 차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시대의 변화를 절집도 자연스레 받아들여 전국 곳곳의 사찰이 카페를 일주문 안팎으로 들이고 있다. 오대산 월정사 천년 전나무 숲을 걸어 만날 수 있는 카페 ‘난다나’, 양양에서 가장 멋진 바다 전망을 자랑하는 낙산사 카페 ‘다래헌’, 매주 일요일 맷돌로 원두를 갈아주는 수원 봉녕사 문화원 ‘금라’, 사찰음식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울 일원동 전국비구니회관 법룡사 카페 ‘메따’, 창고로 쓰이던 건물을 단장해 북카페와 전시실로 운영하는 광주 무각사 카페 ‘로터스’ 등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카페를 뛰어넘어 젊은 세대들이 찾아와 커피를 마시고 ‘인증샷’을 찍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나아가 절집 커피와 사찰 카페의 역할은 단순히 ‘인증샷 명소’에서 그치지 않고 진화하고 있다. ‘커피의 도시’ 강릉에 자리한 만월산 현덕사는 스님과 함께 커피를 볶아보고 함께 음미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템플스테이인 ‘솔바람 커피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충남 태안의 ‘커피 볶는 절’ 무량사는 2014년부터 스님이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절을 찾는 이들에게 무료로 보시하고 있다. ‘그러려니’라는 편안한 이름을 붙인 카페에는 ‘가피함’라고 부르는 작은 상자가 놓여 있을 뿐이다. 커피값을 대신해 ‘가피함’에 모인 돈으로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교복을 지원하는 등 이웃에게 회향하고 있다. 이밖에도 부산 대원사가 세운 복합문화공간인 ‘쿠무다’는 커피와 함께 전시, 공연 등을 열어 불교와 문화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잠시 주춤하고는 있지만, 절집 카페, 절집 커피는 이제 커피를 매개로 불교와 세상이 만나는 접점 역할을 하고 있다.

커피는 그저 독특한 향과 맛을 품은 검은색의 음료일 뿐이다. 그러나 그 속에 품은 그윽한 향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작은 커피잔을 사이에 두어 대화를 이끌어주며, 그 따뜻한 온기로 서먹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예나 지금이나. 그 옛날 저 멀고 먼 동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커피가 긴 세월을 지나며 세상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료가 되었다. 그 커피가 카페라는 공간을 만나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고 정을 나눈다. 절집 안이나 밖이나.

 

신혁진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주간불교, 불교포커스, BBS불교방송, BTN불교TV 등 불교계 매체에서 기자와 방송작가, 방송진행자로 일했다. 커피를 좋아해 취미로 시작한 커피와의 인연은 결국 본업까지 바꾸게 해 현재는 원두 로스팅, 사찰 카페 컨설팅, 바리스타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커피도반>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