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우리 시대, 구겨진 영웅들

2020-12-16     김택근

테레사 수녀의 방한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가 환영 열기에 휩싸였다. 환영객들과 취재진이 몰려들어 공항은 북새통이었다. 테레사 수녀는 인파에 떠밀려 들고 온 가방을 잃어버렸다. 다시 가방을 찾기 위해 공항을 뒤지는 소동이 벌어졌지만 찾지 못했다. 가방은 공항 쓰레기통에서 나왔다. 낡고 낡아서 누군가 쓰레기통에 던졌던 것이다. 가방 속에는 오직 성경과 묵주만이 들어있었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그녀의 청빈 앞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일화들이 모여서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테레사 수녀를 만난 어느 수녀는 그 감회를 이렇게 전한다. “당신의 그 주름진 얼굴과 손, 닳고 닳아 뭉툭해진 발, 구김살이 펴지지 않는 청색 스웨터와 빛깔이 바랜 낡은 사리, 오래된 기도서를 보는 순간 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 없었습니다…. 깊고 푸른 눈빛도 모두가 성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저를 압도하며 주눅 들게 했었답니다.”

 

| 빈자의 어머니? 종교사업가?

1997년 세상을 떠났지만 테레사 수녀는 아직도 빈자들의 어머니로 남아있다. 가난해서 좀체 허물 수 없는 성스러운 성(城)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절대적 명성에도 허물이 들어있었다. 저술가이며 저널리스트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비의 테레사를 무자비하게 비판한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를 ‘정치화한 교황체제가 파견한 냉혈한 종교사업가’라고 단정해 버린다. 

“아무리 막돼먹었단들 누가 야위고 쭈글쭈글한 늙은 여인을, 세월에 좋이 찌든 노파를, 더군다나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을 헐뜯겠는가. 다른 한편, 아무리 무관심하단들 누가 한때 105개를 웃도는 나라에서 500개가 넘는 수도원을 운영했다고 호언장담한 여인의 영향과 동기들을 살펴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겠는가. (…중략…) 두려움과 존경을 잠깐만이라도 벗어버리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마더 테레사 현상은 그 범속한, 심지어는 정치적인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히친스 지음 『자비를 팔다』)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가 보여준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방관적 태도, 기부금에 대한 불투명한 회계 등도 폭로했다. 가난을 팔아서 벌어들인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빈민 구제 활동만 했을 뿐 정작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사회개혁에는 무관심했다는 비판도 곁들였다. 오만, 탐욕, 야망을 특유의 겸손과 자기 낮춤으로 가리고 있다며 마더 테레사를 악명 높은 텔레비전 전도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히친스는 철저하게 증거를 들이대며 테레사 수녀를 몰아세웠다. 찰스 키팅은 미국 역사상 최대 사기 사건의 주범이었다. 그런데도 찰스 키팅은 마더 테레사에게 거액을 기부했다. 테레사는 법정에 세워진 희대의 사기꾼에게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제가 아는 것은 그(찰스 키팅)가 주님의 빈자들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관대했다는 점입니다.”

1984년 인도 보팔 시에서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희생자보다는 거대 다국적기업을 감쌌다. 유독성 화학물질이 주거지역에 쏟아져 2,500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 주민들은 분노했지만 즉각 현장에 나타난 테레사는 뜻밖의 말을 반복했다.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또 테레사 수녀는 정치인들의 ‘속 보이는 기부금’을 받고 그들을 옹호하는 정치적인 행보로 많은 사람을 실망하게 했다. 

 

| 결점 없는 ‘절대적 영웅’

그렇다면 마더 테레사의 ‘자비의 성’을 허무는 히친스의 작업은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고약한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작업(런던 「선데이 타임스」)”이라는 게 중론이다. 기록되지 않은 사실은 묻힐 뿐이다. 그래서 알고 있다면 알려야 한다. 자칫 인류가 어머니 테레사를 잃을 수도 있지만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공(功)과 과(過)는 역사가 가려줄 것이다. 

우리 시대에도 많은 영웅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씻을 수 없는 과오가 밝혀져 그를 추앙했던 무리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친일 작품을 쓴 천재 문인, 독립군을 저격한 전쟁 영웅, 독재와의 투쟁 이력을 출세와 바꾼 민주투사, 범죄에 연루된 스포츠 스타…. 한때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났지만 어느 순간 빛을 잃고 떨어진 별들…. 빛바랜 이름들이 발밑에 수북하다.     

흠 없는 인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개인의 신상과 동선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 시대에 한 인간의 신념과 행적이 대중의 기대를 변함없이 충족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앞으로 결점 없는 ‘절대적 영웅’의 출현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시대의 우상이 죽음으로 ‘자신’을 지키려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새삼 영웅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용성 평전』 『성철 평전』 『새벽, 김대중 평전』 『강아지똥별, 권정생 이야기』 『뿔난 그리움』 『벌거벗은 수박도둑』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