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불교] "고통의 뿌리는 애착에 있다" / 김천

2020-12-09     김천

 

싱가포르 ‘THUS HAVE I SEEN 불교영화제 2020’

지난 9월 싱가포르에서 불교영화제가 열렸다. 경전 앞머리에 나오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如是我聞, 여시아문]’를 빗대 ‘이와 같이 나는 보았다(Thus Have I Seen)’를 영화제 이름으로 삼았다. 이 영화제는 2009년부터 싱가포르 불교단체 ‘다르마 인 액션(Dharma In Action, 正法實踐, 정법실천)’에서 시작해 모두 여섯 차례 열렸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됐는데, 8편의 불교 영화가 초청됐다. 출품작들은 대형 상업영화보다 단편영화와 예술영화, 다큐멘터리들이 주를 이뤘다. 

이 영화제는 실험적인 불교 작품을 선보이는 젊은 감독들의 좋은 무대가 됐다. 올해 출품된 영화는 환경문제, 선(禪)과 마음, 전쟁과 폭력, 생명윤리, 성차별과 평등의 문제 등을 다룬 작품들이다. 애니메이션도 있고 역사극도 있으며, 깊이 있는 다큐멘터리도 등장했다. 대만, 폴란드, 태국, 미국, 싱가포르 영화가 골고루 상영됐다. 불교 영화가 어느 한 주제에만 머물지 않고 이 시대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진지하게 다루는 태도는 반가운 일이다. 

 

| 자식의 출가, 좌절된 어머니의 꿈

영화제 상영작 중 펑전위(Png Zhen Yu) 감독의 <보리(菩提, 2019)>는 경쟁사회의 인간관, 현대의 가족관계, 애착이 주는 갈등 등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펑 감독은 단편영화와 광고 감독으로 활동해왔고 청소년 시절부터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어 주목을 받아왔다. 이 영화는 그가 만든 작품 중 가장 긴 작품으로 상영시간 18분의 단편 예술영화다.

영화는 자식의 출가를 앞둔 미혼모 어머니의 마음을 그린다. 아들 하나를 키우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어머니는 성장한 아들이 세속의 길을 버리고 출가하겠다고 말하자 오열하고 절망한다. 자식의 출세가 자신의 좌절된 꿈을 보상하리라 믿었고, 희생과 헌신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꿈이 이루어지려 하는 순간, 자식과의 이별로 자신 앞에 놓인 현실에 눈을 떠야만 했다. 

출가는 개인의 욕망을 버릴 뿐 아니라 세상과 쌓은 인연과도 등을 돌리는 일이다. 그 결정을 내릴 때까지 당사자는 고심하고 또 번민하게 된다. 한국의 출가자들은 행자 생활할 때 부모 형제들이 몰려와 실랑이를 벌이는 일을 종종 경험한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출가한다. 영화 속 펑 감독이 속한 싱가포르에서도 출가는 쉽지 않은 사건이다. 

출가를 보는 시선은 문화권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자 문화권인 대만과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일본은 거의 부모 자식을 따라 승려의 신분이 세습되는 경우가 많아 가업으로 자연스럽게 전승된다. 남방으로 가면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태국, 라오스 등지는 출가를 거의 신성한 의무로 받아들이고, 미얀마는 출가하는 날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순간이며 가족뿐 아니라 온 마을이 나서서 함께 축하한다. 티베트는 형제가 여럿이라면 그중 한둘은 당연히 출가한다. 출가하는 자식을 붙잡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일은 결코 볼 수 없다. 세간의 출세보다 출세간의 길이 더 값지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 <보리(菩提, 2019)>

 

| 집착이라는 덫

영화 속 어머니 리핑은 출가를 위해 집을 떠나겠다는 아들에게 “나를 버리지 마라”고 절규한다. 자신이 아들을 사랑한다고 믿지만 그것은 집착이며 굴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자식을 위해 바쳤다고 여기고 자식 또한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리핑은 혼자 놓일 외로움에 절망하고 자신 앞에 놓일 고통을 두려워한다. 

부처님은 모든 고통의 근원에는 아끼고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있다고 가르쳤다. 무지는 세상과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감각에 속고 매달리게 만든다고 했다.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마음의 덫에서 놓이게 된다. 

어려서부터 불교에 귀의해 열심히 신행활동을 했다고 알려진 펑 감독은 불교 가르침의 핵심을 집착과 고통과 무지로 압축해서 이야기한다. 감독은 영화 <보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세속에서 물질과 성공을 좇는 경쟁으로 감정적인 집착에 빠지고, 결국 마음의 세 가지 어두운 뿌리인 탐욕과 폭력과 무지에 사로잡힌다. 고통의 뿌리가 애착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현대사회의 과도한 경쟁이 우리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몰고,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이 벌려는 바람은 더 큰 집착을 낳는다는 이야기다. 

출가의 목적은 개인의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심지어 자신의 수행에서조차 좋은 과보를 얻으려는 동기를 버리라고 가르친다. 그 본래의 의미를 잃을 때 우리는 종종 출세간에서도 형태만 바꾼 탐욕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부처님은 모든 고통의 근원에는 아끼고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있다고 가르쳤다.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마음의 덫에서 놓이게 된다. 

 

| 한국의 불교영화제를 고대하며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끝자락에 붙은 항구이자 도시국가이다. 인구 6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나라이지만 아세안 국가에서 차지하는 정치경제 위상이 높다. 화교를 중심으로 불교가 크게 영향력을 발휘해 불교영화제 또한 성황리에 개최된다. 싱가포르의 불교영화제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국내에서는 현재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서 대략 50여 개의 영화제가 한 해 동안 열리고 있다. 개중에는 아랍영화제도 열리고 환경영화제와 서울노인영화제처럼 특정 주제의 영화제도 있다. 한데 불교영화제는 찾아볼 수 없다. 수많은 사찰과 불교단체가 있고 수백 개의 종단이 있는데, 영화제를 여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대형 상업영화가 아니어도 청소년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표현하고, 도반들끼리 짧은 경전의 이야기를 필름에 담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보리>의 펑 감독도 친구들의 작품에 배우로 출연해 품앗이하며 실력을 키웠다. 영화와 영상은 우리 시대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갖는 매체다. 한국의 더 많은 불자가 <보리>와 같은 작업을 통해 세상과 만날 수 있길 기다린다.

● <보리>를 비롯한 싱가포르 불교영화제 정보는 영화제 홈페이지(thisfilmfest.com)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