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로 배우는 불교] 금강경(4)

내용에 관한 이야기 下

2020-12-11     전순환

세존 또는 여래와 동일시되는 반야바라밀다의 법성(法性)에 따른다면, 『금강경』에서 열거하는 반야바라밀다를 포함한 모든 법은 무위(無爲)와 불생(不生)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제법(諸法)은-범부나 일반 중생들이 생각하는-인연에 의해 생겨나며 실재하는 유위(有爲)적 실체가 아니다. 그러한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존재하는 무위적(asaṁskṛta) 실체로서-유위적(saṁskṛta)으로 결코 생겨나지 않는-불생(anutpada)의 법성(dharmat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성을 깨닫게 될 바로 그때, 소위 법과의 단절(dharmoccheda)이 가능하고, 궁극적으로 ‘극도의 진여지’란 반야바라밀다에 이르게 된다는 게 필자의 소견이다. 

그렇다면 『금강경』에서 법(dharma)의 본성을 깨닫기 위해 가야하는 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이런 길을 이야기하면서 직접 표현하지 않는 유위, 무위, 불생과 같은 핵심 개념들은 과연 어떠한 식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 깨달음에 이르는 길

이 여정은 머무름과 수행, 그리고 발심(發心)을 묻는 수보리 장로의 질문과 세존의 대답으로 시작한다. 이 용어들이 포함된 『금강경』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구절은 길기트(Gilgit)본을 제외한 모든 범본에서 볼 수 있다. 이 문구는 ‘무위’와 관련되는 전반부 16장 가운데 본 경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장과 3장에 걸쳐 나오고, 이는 다시 묘하게도 ‘불생’과 관련하는 후반부 16장 가운데 첫 장인 17장에서 다시 나타난다. 뮬러 계열 범본들에서 수보리 장로가 세존께 여쭙는 그 해당 부분을 편집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01 세존이시여, 보살승에 오른 선남자나 선여인은 [법성을 깨닫기 위해] 어떻게 02 머물러야 하고, 03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요? 04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마음을 어떻게 고취(高趣)시켜야할 할까요?”

01 tat․katham․Bhagavan․bodhisattvayānasaṁprasthitena․Kulaputreṇa․vā․Kuladuhitrā․

vā 02 sthātavyam 03 katham․pratipattavyam 04 katham․Cittam․pragrahītavyam 

참고로 투르케스탄과 바미얀 범본들에서 ‘선남자나 선여인’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 단어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경우 문제의 주어는 불특정의 ‘자’(者)로 표현해야 하고, 이에 따라 해당 문구는 ‘보살승에 오른 자’로 번역한다. 

 

발심  수보리 장로가 던진 이 세 가지 질문 가운데 세존은 마음의 고취, 즉 발심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04의 물음에 먼저 답하신다.

“01 수보리야, 이 세간에서 보살승에 오른 [선남자나 선여인은] 다음과 같이 

마음을 일으켜야 할 것이니라. … 02 ‘유정계(有情界)에 존재하는 … 유정들은 [내가 행한] 섭취로 구제되어 왔다. … 03 나는 그들 모두를 [번뇌나 망집(妄執) 같은] 그 어떤 것도 남겨져 있지 않은 열반의 세계 [즉,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04 [하지만, 유위의 관점에서] 분명 이와 같은 무한한 유정들이 열반에 들도록 이끌어졌다 할지라도, 05 열반에 들도록 이끌어진 유정 [이란 법] 들은 [사실상 무위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기에] 정작 단 한 명도 실재하지 않는다’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01 iha․Subhūte․bodhisattvayānasaṁprasthitena․evam․Cittam․utpādayitavyam | 02 yāvantaḥ․Subhūte․Sattvāḥ․Sattvadhātau․Sattvasaṁgraheṇa․saṁgṛhītāḥ 03 te․ca․mayā․sarve․anupadhiśeṣe․Nirvāṇadhātau․parinirvāpayitavyāḥ | 04 evam․aparimāṇān․api․Sattvān․parinirvāpya 05 na․kaścid․Sattvaḥ․parinirvāpitaḥ․bhavati | 

참고로 수보리 장로는 ‘고취하다’의 pra-grah를, 세존은 ‘일으키다’의 ut-pad를 사용하고 있다. 형태상 다르지만 유사한 의미의 어근들이다. 이 용어는 구마라집의 한역에서 항복(降伏), 보리류지 진제 달마급다에서 발기(發起), 현장과 의정에서 섭복(攝伏)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음을 일으키다’는 『금강경』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반야부의 경전들에서 대체적으로 ‘마음’을 뜻하는 citta에, utpad에서 접미사 a가 붙어 파생된 ‘일으킴’의 utpāda가 결합하는 합성어 citta=utpāda로 표현된다. 이 명사는 일반적으로 ‘발심’으로 번역된다. 

 

보살승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기에 앞서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금강경』 내에서 세존과 수보리 장로가 주고받는 설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이 나오게 된 이유는, 범본이든 한역본이든 경전 전반에 걸쳐 그 대상이 선남자나 선여인, 불특정의 자(者), 다른 한편으로 보살 또는 보살마하살 등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어서-필자에게도 그러했듯이- 혼란을 불러올 충분한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각기 다른 그러한 명칭들에 얽매이지 않고, 그들이 공통으로 갖는 한 가지 특징을 볼 수 있다면 말이다. 그 특징은 바로 그들 모두에게, ‘보살승(菩薩承)에 오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점이다. bodhisattva=yāna=saṁprasthita를 번역한 이 표현은 그들을 하나의 부류로 묶어 준다. 따라서 『금강경』에서 설법 대상은 ‘보살승에 오른 자’, 즉 일률적으로 ‘보살’ 또는 ‘보살마하살’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필자 나름의 결론이 나온다. 참고로 ‘승’에 해당하는 yāna는 mahā=yāna, 즉 ‘대승’(大乘)을 나타내는 단어이기에 ‘보살승’은 보리류지(T236a)에서 ‘보살대승’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무름과 수행  이제 법이란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머무르고 수행해야 하는지 수보리 장로가 던진 처음 두 개의 질문, 이에 대한 세존의 말씀을 3장에서 들어볼 수 있다. 

“01 수보리야, 〔유위적〕 대상에 머무는 보살은 결코 보시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라. 02 그 어디에라도 머무는 보살은 보시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라. 03 물질[色]에 머무는 보살은 보시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라. 04 형상[色]·소리[聲]·냄새[香]·맛[味]·감촉[觸]·관념[法]〔의 육경(六境)〕에 머무는 보살은 보시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라.” 

01 api․tu․khalu․punar․Subhūte․na․Bodhisattvena․vastupratiṣṭhitena․Dānam․dātavyam | 02 na․kvacid․pratiṣṭhitena․Dānam․dātavyam | 03 na․rūpapratiṣṭhitena․Dānam․dātavyam | 04 na․Śabdagandharasaspraṣṭavyadharmeṣu․pratiṣṭhitena․Dānam․dātavyam | 

앞서와 달리 이 답변에서는 사뭇 세존의 강한 어조가 느껴진다. 질문에 대한 답을 넘어, 부정의 어법으로 보살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말씀해주시는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상’을 뜻하는 vastu는 ‘거주/체류하다’의 어근 vas에 접미사 tu가 붙어 만들어진 명사로서 어원적으로 ‘장소’를 뜻한다. 이후 ‘(어떤 장소에 존재하는) 실체, 대상; object’의 의미로 확대된다. 참고로 ‘대상’은 한역본들에서 ‘법’(구마라집), ‘류(類)’(보리류지 진제), ‘사(事)’(달마급다 현장 의정)로 표현되고 있다. 

 

유상과 보살의 자격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세존의 말씀이 바로 이어져 나온다. 

“수보리야, 실로 보시라 함은 유상(有相)〔이 유위적으로 실재한다는〕 인식에 결코 머물지 않는 보살마하살이 행해야 할 것이니라.” 

evam․hi․Subhūte․Bodhisattvena․Mahāsattvena․Dānam․dātavyam | yathā․na․Nimittasaṁjñāyām․api․pratitiṣṭhet | 

아직 어원이 밝혀져 있지 않지만, ‘유상’에 대응하는 nimitta의 경우 대략 ‘원인, 이유’에서 ‘(어떤 원인으로 만들어진) 특징, 형상’으로 확대하는 의미적 변화가 문헌에서 관찰된다. 참고로 필자가 ‘유상-인식’으로 번역한 Nimitta=saṁjñā는 구마라집본의 경우 saṁjñā가 빠진 ‘상’(相)으로만 나타난다. 나머지 모든 한역본은 ‘상상’(相想)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3장과 17장에서 만약 보살이 그러한 의무를 져버린다면, 그는 보살의 자격이 없다고 세존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수보리야, 만약 보살에게 유정〔이 유위적으로 실재한다는〕 인식이 생겨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라고 〔보살의 자격이 없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라.” 

saced․Subhūte․Bodhisattvasya․Sattvasaṁjñā․pravarteta | na․saḥ․Bodhisattvaḥ․iti․vaktavyaḥ | 

참고로 필자가 ‘유정-인식’으로 번역한 Sattvasaṁjñā는 한역본들에서 유정-상(有情-想, 현장) 또는 중생-상(眾生-想)으로 번역하는 반면, 구마라집은 중생-상(眾生-相)으로 표현하고 있다. 

 

| 법, 그리고 무위와 불생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보살의 자격을 유지하고 진정한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법성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을 통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한편으로 모든 법이 유위적으로 실재한다는 인식에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보시를 행해야 이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제법이 유위적 측면에서 볼 때 불생이라는, 궁극적으로 무위적으로 존재한다는 마음을 일으킬 때 이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범본 『금강경』은 불생과 무위의 본성을 지닌다는 법을 과연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이제 모두에서 제시한 두 번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법의 예시  필자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 경전 전반에 걸쳐 불생과 무위, 이 두 개념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예시되는 법들은 22개다. 이들 모두를 차례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여래의) 표상-소유 Lakṣaṇa=saṁpad(5장/20장), ②복덕의-양 Puṇya=skandha(8장/19장), ③불법 Buddha=dharma(8장), ④불토-건설 Kṣetra=vyūha(10장/17장), ⑤자-존 Ātma=bhāva(10장), ⑥반야-바라밀다 Prajñā=pāramitā(13장), ⑦대지의-티끌 Pṛthivī=raja(13장), ⑧세-계 Loka=dhātu(13장), ⑨위대한-인물에게〔나〕 있〔다〕는-32종의-(신체적)특질 Dvā=triṁśan=mahā=puruṣa=lakṣaṇa(13장), ⑩인욕-바라밀다 Kṣānti=pāramitā(14장), ⑪유정 Sattva(17장/21장), ⑫큰-육신 Mahā=kāya(17장), ⑬마음의-흐름 Citta=dhārā(18장), ⑭색-신의-완성체 Rūpa=kāya=pariniṣpad(20장), ⑮선법 kuśala Dharma(23장), ⑯피조물 Jana(24장), ⑰(복덕의) 획득 parigrahītavya(28장), ⑱원자들의-집합체 Parama=aṇusaṁcaya(30장), ⑲물질에의-집착 Piṇḍa=grāha(30장), ⑳삼-천-대-천 세계 tri=sāhasra=mahā=sāhasra Loka=dhātu(30장), ㉑개체관 Pudgala=dṛṣṭi(31장), ㉒법에 대한 인식 Dharma=saṁjñā(31장)

 

법의 공식  위에 열거된 각각의 dharma를 X로 볼 때, 『금강경』은 이를 ‘X=a-X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X이다’라고 공식으로 표현한다. 이 공식은 산스크리트로 표현할 때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①‘표상의 소유’란 법을 예시로 들어 설명해본다. “여래가 말한 표상의 소유라 함은 바로 … 이다”로 번역되는 yā․sā․Lakṣaṇasaṁpat․Tathāgatena․bhāṣitā․sā․eva․A-lakṣaṇasaṁpat이다. 다른 하나는 ③‘불법(佛法)’이란 법을 예시로 들어본다. “불법들, 불법들이라 함은 바로 … 이라고 여래가 설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불법들이라고 불리는 것이다”로 번역되는 Buddhadharmāḥ․Buddhadharmāḥ․iti․A-buddhadharmāḥ․ca․eva․te․Tathāgatena․bhāṣitāḥ | tena․ucyante․Buddhadharmāḥ․iti이다. 필자가 … 로 표시한 곳에는 과연 어떤 표현이 들어가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각각의 법에 붙는 부정의 a-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에 달려있다. 

a-는 전통적으로 두 개의 방향에서 해석하고 있다. 한편으로 ‘… 이 아니다, 비(非)-; not/no X, non-X’의 해석이고, 다른 한편으로 ‘… 이/가 없는; -less’의 해석이다. 한역본들의 경우 전자의 해석에 따라 해당 법에 ‘비-’를 덧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①의 A-lakṣaṇasaṁpat는 非-身相(구마라집) 非-相勝德(보리류지/진제) 非-相具足(달마급다) 非-諸相具足(현장) 非-勝相(의정)으로, ③의 A-buddhadharma는 모든 한역본에서 일정하게 非-佛法으로 표현된다. 

영역의 경우 뮬러(Müller)1는 한역본들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the possession of no-signs’와 ‘no-qualities of Buddha’로 번역하는 반면, 해리슨(Harrison)2은 두 번째 해석에 따라 ‘lacks any possession of distinctive features’와 ‘devoid of any dharmas of a Buddha’로 번역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어도 범본 『금강경』에 한해서, 필자는 조심스럽게 해석의 세 번째 방안을 제시해본다. 그것은 바로 a-가 ‘무위’(asaṁskṛta) 또는 ‘불생’(anutpāda)의 역할을 수행하는 부정사로 보는 것이다. 이에 따른다면 앞서 ‘…’으로 남겼던 부분은 ‘무위/불생의 표상 소유’와 ‘무위의/불생의 불법’으로 채워질 수 있다. 의미적으로 ‘비-’의 용법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필자의 번역은 『금강경』의 핵심 개념들에 맞춰진, 그보다 더 구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1 Müller, Friedrich Max (1894) The Sacred Books of the East, Volume XLIX: Buddhist Mahāyāna Texts. Oxford: Clarendon Press.

2 Harrison, Paul (2006)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A New English Translation of the Sanskrit Text Based on Two Manuscripts from Greater Gandhāra”, BMSC vol. III, Hermes Publishing, Oslo.

●  다음 호는 필자에게 부여된 마지막 글이며, 내용은 ‘금강경(5) 경전 속 경전 이야기’이다.

 

전순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대학원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 인도유럽어학과에서 역사비교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시작된 한국연구재단 지원 하에 범본 불전(반야부)을 대상으로 언어자료 DB를 구축하고 있으며, 서울대 언어학과와 연세대 HK 문자연구사업단 문자아카데미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팔천송반야경』(불광출판사),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반야바라밀다심경』(지식과 교양),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신묘장구대다라니경』(한국문화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