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신화] 가장 위대한 정복자

2020-11-30     동명 스님
마왕과의 전쟁을 상징적으로 그린 그림. 출처 Wikimedia Commons.

 

| “자비는 적(敵)이 없다”

북한산 도선사에서 마을을 향해 내려오다 보면 ‘자비무적(慈悲無敵)’, 즉 ‘자비는 적이 없다’라고 새겨진 돌기둥을 만나게 된다. 그 말을 처음 볼 때는 공허하게 느껴졌는데, 붓다의 신화 속에서 그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깨달음을 얻기 직전 싯다르타는 그야말로 엄청난 적과 일대 격전을 치른다. 그 적은 붓다가 탄생하는 순간 입지가 위태로워지는 마라 빠삐만(Māra Pāpimant)이었다. 마라는 ‘죽음’ 또는 ‘사악함’을 뜻하며, 빠삐만은 우리에게는 마왕(魔王) 파순(波旬)으로 알려졌다. 마왕 파순은 욕계(欲界)의 여섯 번째 우주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왕이기도 하다.

마라는 인도신화 속에서 애욕의 신 까마(Kāma)에 해당한다. 『붓다차리따』에서는 “욕계천의 신인 까마데와는 꽃화살로 애욕을 지배하였으니, 해탈의 적인 ‘마라(Māra)’라고 불렸어라”라고 노래한다. 까마는 인도신화 속에서 쉬와(Śiva)와 빠르와띠(Pārvatī)를 맺어준 신이다. 당시 세상은 따라까(Taraka)라는 악마가 준동했고, 이 악마는 오직 쉬와의 아들만이 무찌를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쉬와에게는 아들도 없었을뿐더러 혼인도 하지 않았다. 이에 애욕의 신 까마가 쉬와에게 쉬와의 아내가 될 빠르와띠에 대한 사랑을 싹틔우기 위해 그를 향해 애욕의 꽃화살을 쏘았던 것이다.

그리스로마나 인도신화의 애욕의 신은 악마가 아니라 천신(天神)인 반면, 붓다의 신화 속에서는 엄청난 괴력을 지닌 악마다. 불교에서 애욕의 신은 괴로움의 근원을 만드는 존재다. 애욕의 신은 뭇 생명체들의 욕망을 먹고 살며,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분노가 탄생하고, 욕망은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 마왕의 군대를 물리치다

『붓다차리따』는 마왕의 말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이 엄청난 괴력의 성자가 결연한 갑옷을 입고 용맹의 활과 지혜의 화살을 가지고 내 나라를 정복하려 하는구나. 심히 걱정이도다. 그가 지혜의 눈을 뜨기 전, 미리 그의 마음속 애욕을 넘치게 하리라. 넘치는 애욕의 물이 튼튼한 해탈의 둑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리라.”

마왕은 애욕의 활과 세상을 미혹할 다섯 개의 화살을 들고 싯다르타를 교란하려고 보리수 아래로 갔다. 악마는 말했다.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크샤트리야여! 일어나라! 해탈의 수행을 버리고 세간법을 행하라. 싸움과 제사로써 세간을 제압하고 권력을 얻으라. 그대가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내 기필코 이 애욕의 화살을 쏘리라.”

싯다르타가 아무 반응이 없자 마왕은 화살을 날렸다. 싯다르타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화살을 맞고 쉬와신도 사랑에 빠졌는데, 이 성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구나. 안 되겠다. 애욕의 활과 화살도 소용없으니, 군대의 힘으로 해치우겠노라.’

『대불전경』에 따르면, 마왕의 군대는 엄청난 규모였다. 전방 무리의 넓이가 12요자나(1요자는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였고, 우측 무리의 넓이도 12요자나, 좌측 무리의 넓이도 12요자나였으며, 하늘로 솟아오른 높이는 9요자나였다. 마왕의 군대가 외치는 소리가 1,000요자나 밖에까지 들렸다. 마왕은 또 자신의 몸에서 1,000개의 팔을 만들어낸 뒤 각 손에 각기 다른 무기를 들고 150요자나 크기의 코끼리를 타고는 그들을 뒤따랐다. 곧 탄생할 붓다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 와 있던 천신들도 마왕의 군대를 보고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감추었다.

마왕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보리수 근처에 도착했지만, 보리수 그늘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마왕의 군대는 보리수를 빙 둘러쌌다. 마왕은 소리쳤다.

“어서 적의 왕을 붙잡아라!”

열 가지 바라밀로 무장한 싯다르타에게 마왕의 군대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마왕은 먼 거리에서 싯다르타를 위협할 무기를 발사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태풍을 쏘았다. 태풍이 온 세상을 뒤집어엎을 듯이 몰아쳤지만, 보리수 근처에서는 미풍(微風)이 무풍(無風)이 되어버렸다. 두 번째로 비구름을 일으켜 세찬 비를 내리게 했다. 홍수로 인해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지만, 보리수 근처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세 번째로는 큰 돌을 비처럼 쏟아지게 했지만, 그 돌들은 꽃다발이나 화환이 되어 허공을 장식했다. 네 번째로는 창과 칼 등 온갖 무기를 비처럼 쏟아지게 했지만, 그것들은 보리수 근처에서 모두 재스민 꽃이 되어버렸다. 다섯 번째로는 불타는 석탄을 비처럼 쏟아지게 했다.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서 내려오다가 이내 다양한 빛깔의 꽃가루가 됐다. 여섯 번째로 뜨거운 재를 비처럼 쏟아지게 했지만, 이것들은 백단향 가루로 바뀌었다. 일곱 번째로 뜨거운 모래를 비처럼 쏟아지게 했지만, 이 또한 천상의 꽃가루가 됐다. 여덟 번째로 뜨거운 진흙 줄기를 비처럼 쏟아지게 했지만, 이것들은 천상의 향기로운 풀이 됐다. 아홉 번째는 커다란 어둠의 장막을 보리수 위로 덮어버리려고 했지만, 어둠의 장막은 보리수 옆에서 휘황찬란한 후광(後光)이 됐다.

더는 힘을 쓸 수 없던 마왕 앞에 자식들이 나섰다.

“아버지,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인간이란 욕망과 분노에 쉽게 물드는 법입니다.”

자식들은 모여서 계책을 논의했다. 논의 결과 미인계를 쓰기로 하고, 마라의 세 딸 땅하(Taṇhā, 애착), 아라띠(Arati, 불만), 라가(Ragā, 탐욕)가 나섰다. 마라의 세 딸은 아름답게 치장하고 보리수 아래로 갔다. 

“보세요, 성자여! 온갖 생명체가 서로 짝을 찾아 교미하는 봄이랍니다. 이 봄날 성자께서는 뭘 하고 계셔요. 그렇게 앉아 계시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것이지요. 생산을 해야지요, 생산을! 자, 이 싱싱한 육체를 맛보시고 힘을 내세요.”

세 딸은 자신의 풍만한 육체를 드러냈다. 싯다르타는 말했다.

“너희들은 알고 있는가? 육체의 쾌락에는 고뇌가 따른다는 것을. 그런 욕망이라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버렸다는 것을.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내가 너희들의 거짓 아름다움에 속을 것 같은가?”

마왕의 딸들은 좀 더 과감하게 싯다르타를 유혹하기로 했다. 그들은 싯다르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당신은 참 멋진 남자예요. 당신의 아름다움을 저희가 지켜드리겠어요. 멋진 나날을 만들어가요.”

여인들은 싯다르타의 귀에 뜨거운 바람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너희들은 조금도 아름답지 않단다. 현재의 아름다움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닌 것, 너희들의 육체 속에는 온갖 똥물과 고름이 들어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세 딸의 미모와 교태는 허물어졌다. 그녀들의 곱던 피부가 검게 변하더니 푸석푸석 주름이 지고, 온몸 구멍마다 오물이 흘러나와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마왕의 딸들은 황급히 보리수 아래에서 떠났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에 세워진 마하보디 사원의 대탑.

 

| 붓다의 자비가 마왕을 이기다

마왕은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다시 한번 군대를 소집해 보리수를 향해 돌격했지만, 마군의 모든 무기는 꽃과 향이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할 뿐이었다. 그래도 마왕은 포기하지 않고 철퇴를 들고 달려들었다.

“싯다르타여, 그 승리의 자리는 나의 것이오. 그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끈질긴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마왕에게 싯다르타는 끝내 자비심을 잃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마왕이여, 그대는 과거에 보시한 공덕으로 욕계의 왕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 공덕이 이제 다 떨어져 갑니다. 어서 욕망을 내려놓고 참회하시오.”

“하하, 당신은 나의 공덕을 말씀해주셨소. 당신이 나의 공덕을 증언해준 셈이요. 그렇다면 당신의 공덕은 도대체 무엇이오. 누가 증언해줄 수 있소?”

“그래, 지금 이곳에는 직접 말해줄 수 있는 증인은 없소. 그러나 나의 공덕을 대지가 증명할 것이오.”

싯다르타는 오른손을 땅을 향해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이 손 모양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대표적인 수인(手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대지여, 나의 공덕을 증명해주시오.”

대지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진동했다.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한 마왕은 그곳에 머물렀다간 큰 화를 면치 못하겠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후퇴했다. 도망쳤던 천신들이 몰려들어 싯다르타의 승리를 찬탄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기듯, 붓다의 자비가 괴력의 적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마왕과 마왕의 군사는 곧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 해결해야 할 모든 번뇌의 상징이었다. 모든 번뇌를 물리친 싯다르타에게 드디어 붓다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백만 대군을 정복한 대장군보다
자기 자신을 정복한 이가
더 위대한 정복자이다.
- 『법구경』 제103게송 

 

 

동명 스님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지홍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2015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후 구족계를 받았다.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장을 맡고 있다. 출가전 펴낸 책으로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