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의 미술 세계] 하나의 예술품과 책은 하나의 경전

2020-10-27     강우방
만병에서 수월관음이 화생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세계 최초로 조형 언어를 발견하여 읽어보니 예술품에 깊은 종교사상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예술품에 숨겨진 절대적 진리를 읽어내니 한 권의 경전과 같았다. 이를 풀이한 필자의 저서들도 하나하나 경전이 됐다고 할까? 세상은 조형 언어를 문자 언어로 다시 풀어 읽는 낯선 설명에 당황했다. 문자 언어로 쓴 책을 읽어내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하물며 조형 언어로 이뤄진 예술품을 읽어내려면 최소 5년이 소요된다. 조형 언어를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교육하는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무본당(務本堂)’에서 배워야 하는데 관심이 적다. 

아무리 설명해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니 자비심이 인다. 조형 언어를 배운 적이 없고 세계 어느 대학에서도 가르치는 교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본당이 조형 언어를 가르치는 유일한 교실이다. 필자는 조형 언어로 진리를 기록한 조형 예술품들을 수많은 나라에 가서 답사하고, 사진 촬영하고 연구해 논문을 쓰고 발표했으며, 저서들로 출간하고 있다. 

 

| 한국미술, 수월관음도, 괘불의 탄생

학문과 예술 연구에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2000년 이후에 출간한 저서들을 살피면서 필자의 예술 연구 연대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 있는 유적을 답사하고, 박물관에서 작품을 조사하고 연구했다. 동시에 일본, 그리스, 프랑스 등 각국에서 열린 학회도 참가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연구 성과도 인정받은 터라 저서를 집필하기로 했다. 

박물관 퇴임 후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 학문의 변화가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밖은 고요했으나 안은 격동하고 있었다. 고구려 벽화 연구의 성과로 풀리지 않았던 많은 문제가 풀리자 책 출간을 결심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초보적인 접근을 한 작품도 많았지만 완벽히 풀어낸 작품도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작품도 몇 점 다뤘는데, 앞으로 다른 나라 작품들의 조형 언어도 풀 수 있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첫 저서가 바로 『한국미술의 탄생』(솔, 2007)이었다. 책에 실린 작품들이 너무 유명해서 국내 학자들은 물론 일본, 중국 그리고 서양 학자들 누구나 알고 있었다. 건축·조각·회화·도자기 등 모든 장르에 걸친 대표적인 작품들이었지만 학자들은 무엇인지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첫 저서의 부제가 ‘세계미술사 정립을 위한 서장’이다. 세계에서 유명한 모든 작품을 올바로 풀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그 약속대로 올해 출간할 『세계미술, 용으로 풀다』의 원고 교정이 끝났는데, 『세계미술, 부처님으로 풀다』와 같은 뜻이다-있었기에 달았던 부제였다. 

2007년 솔출판사 임우기 대표는 한 해 동안 필자의 강의를 듣고 책 출판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가장 좋은 종이와 인쇄로 최고의 책을 제작해 선물했다. 그 책이 삼성인쇄소에서 인쇄되는 광경을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확신했다. ‘저 책이 세계를 변화시키리라.’ 그러나 처음 들어보는 설명과 용어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이 책은 ‘형태의 탄생 시리즈 1’로 표기했으나, 다음에 출간한 저서가 모두 형태의 탄생 시리즈이므로 이후 책에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2013년에 『수월관음의 탄생』이 출간되었다. 고려 불화 한 점으로 한 권의 책을 냈다. 당시 학계는 그 작품 하나로 논문 하나 쓸 수 없던 상황이라 큰 주목을 받았고, 출판계 불황에도 3쇄를 찍었다. 원래 다룰 작품은 따로 있었다. 가로 세로가 4m에 이르는 가장 크고 완성도가 높은 일본 경신사(鏡神社) 소장 고려 수월관음도를 일본 사가현립박물관에 가서 조사하고 채색 분석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일본 대덕사(大德寺) 소장 수월관음도를 본 후 마음이 바뀌었다. 그 많은 고려 수월관음도는 높이가 대개 1m 내외로 작다. 이 작품은 완성도가 뛰어날 뿐 아니라 크기도 세로가 2.5m 되는 비교적 큰 폭으로 등장인물이 많고 수월관음의 본질을 더욱 풍부하게 설명할 수 있어서 이 작품으로 결정했다. 그 부제는 ‘하나의 불화는 한 권의 경전과 같다’이다. 이 작품을 분석하며 화면 전체를(그림 1, 그림 2) 100% 풀이하여 설명하니 한 권의 경전보다 더 감동을 주지 않는가. 모든 무늬를 조형 언어로 해독하여 문자 언어로 바꾸어 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이 동숭아트센터로 옮긴 때라 출판기념회를 그곳에서 열었다. 2012년 봄부터 2014년 여름까지 동숭아트센터에서 비록 2년간 지냈지만 귀중한 체험도 했다. 동숭아트센터에는 꼭두박물관이 있는데 상여를 장식했던 용과 봉황, 그리고 갖가지 꼭두(우리나라 전통 장례식 때 사용되는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가 전시돼 있다. 마침 옮긴 해가 흑룡의 해여서 용 특별전을 기획하게 되었다. 알기 쉽게 다시 채색 분석한 용수판(龍首板)들을 작품마다 밑에 설치한 작은 모니터를 통해 조형이 단계적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전시했더니 호응이 매우 좋았다. 

다음에 출간한 책이 『오덕사(五德寺) 괘불』(통도사 성보박물관, 2014)이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처음부터 괘불을 걸 수 있는 전시 공간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첫 건물이다. 그래서 매년 두 작품을 교대로 6개월씩 전시하고 있었다. 괘불은 대웅전 앞 넓은 마당에 걸어놓고 야단법석을 차렸던 의례용 큰 불화다. 보통 10m 이상이며, 14m 내외의 장대한 괘불도 많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작품성도 최고인 회화는 조선 시대 괘불이리라. 임진왜란 후 죽은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대규모 천도재를 지낼 때 두 기둥에 걸어 놓았던 불화라 괘불(掛佛)이라 부른다. 이 불화 역시 100% 해석해 한 권의 책으로 내니 불화 연구자들이 당황했을지 모른다. 원래 불상 조각이 전공이었으니 말이다. 

 

| 청화백자·민화에서 발견한 화생

2015년 가나화랑에서 옥션 전시가 있었다. 필자는 한 청화백자를 보고 매우 놀랐다. 우리나라의 자기들은 중국처럼 가득히 무늬를 채우지 않고 여백을 넉넉히 두는 게 큰 미덕이었다. 그런데 이 청화백자는 무늬가 빼곡하지 않은가. 도자기 연구자들은 불화를 본 적이 없으므로 처음 보는 양식에 의문을 가졌다. 

연구자들이 당초문(식물 형태를 일정한 형식으로 도안화한 장식 무늬)이란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걸까. 불화에서 익히 보던 그 무늬들을 즉시 선으로 그려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무늬는 청색 한 가지로 표현돼서 알아보기 힘들지만, 채색 분석하면 모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사진 1, 그림 4). 바로 그 영기문에서 매병 형태의 자기라는 만병(滿甁)이 화생한다는 진리를 처음 밝혔다. 도자기 전공자들을 침묵하고 있으나 필자는 진리만 드러내면 됐다. 그것은 부처님의 모습이었다. 도자기는 “다만 용기가 아니라 우주의 기운을 압축해 담은 만병”이란 말을 처음 듣고 ‘만병이 부처님’이라고 하면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 차차 알아가게 될 것이다. 

민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20대부터 민화에 큰 관심을 두고 평생 민화 전시회를 누비고 다니며 살폈다. 올바로 아는 사람도 없다. 조형 언어로 고구려 벽화를 새롭게 분석해 밝히고, 고려와 조선의 불화를 풀어내고, 100회 이상 국립고궁박물관을 찾아가 왕의 존재와 상징을 읽어내고 나니 비로소 민화가 풀리기 시작했다. 19세기와 20세기 전국 방방곡곡 미치지 않은 집이 없을 만큼 폭발적으로 그려진 민족화, 오로지 우리나라에만 유행했던 불가사의한 그림의 비밀이 풀린 것이다. 

「월간 미술」과 「월간 민화」에 모두 3년간 연재했고, 2018년 다빈치에서 역사적인 책 『민화』가 출간됐다. “한국 회화사 2000년의 금자탑”이라고 웅변했다. 어떤 작품이라도 100% 올바로 풀어내야 비로소 알았다고 말할 수 있다. 문자 언어로 쓴 경전도 100% 해독하려 노력하지 않는가. 진리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았으니 필자가 찾아낸 조형 언어로 표현된 조형 예술작품도  100%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민화에 이런 불화 이상의 고차원의 진리가 숨겨져 있으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는가.

2020년 1월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강우방의 눈, 조형 언어를 말하다>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평생 찍은 사진들 원판인 슬라이드 필름 7만여 점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기증했다. 그 기념으로 사진전을 열었다. 말이 사진전이지 그동안 연구하여 찾아낸 조형 언어로 세계 여러 나라의 조형 예술품들을 채색 분석한 것을 모니터 19개를 배치해 놓고 연이어 상영했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매우 당황했다. 그 전시에 맞추어 『강우방의 눈, 조형 언어를 말하다』라는 저서를 냈다. 작품 읽는 법을 가르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전시에 맞추어 급히 내느라 오탈자가 많고 편집도 좋지 않아 모두 폐기하고 다시 편집하는데 거의 8개월이 걸렸다. 『침묵의 언어』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출간을 앞둔 『틀린 용어 바로잡기』는 신문사와 블로그에 연재한 글이다. 2011년 8월~2012년 5월 ‘불교신문’에 연재했지만 끝난 후에도 5회 정도 써서 필자의 블로그에 실었다. 이어 ‘현대불교신문’에 2013년 한 해 동안 연재했다. 그러면 틀린 용어들 연재가 끝나는가. 아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수정해도 끝나지 않을 정도로 동서양 미술용어에 틀린 용어가 많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틀린 용어 바로잡는 작업에 몰두한 셈이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일본, 그리스, 독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를 누비며 오류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7년 만에 저서로 나올 예정이라 감회가 깊다.

 

| 세계미술, 용으로 풀다

이 연재는 자서전이다. 연대기적으로 서술하기를 주저했으나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연재하는 가운데 중요한 사건은 그때마다 중간에 쓰기도 했다. 나열한 저서들*을 살펴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출간한 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 5년 동안은 사찰에 매료되어 전국의 중요한 건축을 광범위하게 조사하며 한국건축역사학회에서 계속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한편 ‘조형해석학회’라는 연구회를 만들고, 전국에서 모인 수강생들이 ‘범종 연구회’를 만들어 답사하고 발표하는 등 연구를 독려했다. 그 연구 성과도 곧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세계미술, 용으로 풀다』는 이미 편집이 끝나 조만간 다빈치 출판사에서 출간할 것이다. 책은 2015년 1월부터 10월까지 ‘서울신문’에 연재한 글이다. 인류가 창조한 일체의 조형 예술품을 건축·조각·회화·도자기·금속공예·복식 등 모든 장르에 걸쳐 해독했다. 모든 분야는 현대에 이를수록 점차 세분화해 서로 소통이 단절돼 간다. 하지만 필자가 치열하게 노력해 정립한 ‘영기화생론’ 이론과 ‘채색 분석’ 방법론으로 모든 장르를 해독했다. 기적적인 학문과 예술의 연구가 시작됐다고 글 서두에 말한 이유다. 책 제목은 『세계미술, 부처님으로 풀다』로 바꿀 수도 있지만 ‘세계미술, 부처님이 풀다’라고 오해할 수도 있어서 그리하지 않았다. 

필자는 “불교조각과 불교회화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의 세계적 선도자(先導者)”라고 감히 말한다. 2000년~2007년 고구려 벽화 연구 몰두를 새로운 출발점 삼아 지금까지 하루도 쉼 없이 연구에 매진했고, 매주 수요일 강의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1만 2,000점 넘는 세계의 작품들을 채색 분석한 덕택이다. 

채석 분석은 모든 조형 예술작품에 처음과 끝이 있음을 발견한 작품 해독 방법으로 필자가 개발했다. 채석 분석으로 쓴 논문이 20여 편 된다. 논문들이 저서보다 중요하다. 논문들을 다루면 따로 1회분이 될 것이지만, 너무 전문적이어서 연재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제3의 논문집으로 출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제1 논문집은 『원융과 조화』, 제2 논문집은 『법공과 장엄』이었으며, 제3 논문집은 그 제목이 『백련(白蓮)과 청룡(靑龍)』이 될 것이다.

최초로 문자 언어에 상대하는 조형 언어를 발견하여 그 문법을 정립, 세계의 조형 예술작품을 해독했으니, 필자 이전 누구도 조형 예술작품을 해독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이상의 저서를 정독하면 ‘영기화생론’과 ‘채색 분석’ 방법론 등 방대한 이론 체계를 체득할 수 있다. 여러분도 예술품을 자력으로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수 있고, 작품을 읽어낼 때마다 환희심이 일어날 것이다.

 

 *
『한국미술의 탄생』  솔, 2007년
『수월관음의 탄생』  글항아리, 2013년
『오덕사 괘불』  통도사 성보박물관, 2014년
『청화백자, 불화와 만나다』  글항아리, 2015년
『민화』  다빈치, 2018년
『세계미술, 용으로 풀다』  다빈치, 2020년
『침묵의 언어』  무본당, 2020년
『틀린 용어 바로잡기』  글항아리, 2021년

 

글·사진 강우방

강우방
1941년 중국 만주 안동에서 태어나, 1967년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과 국립경주박물관 관장을 역임하고 2000년 가을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초빙돼 후학을 가르치다 퇴임했다. 저서로 『원융과 조화』, 『한국 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법공과 장엄』, 『인문학의 꽃 미술사학 그 추체험의 방법론』, 『한국미술의 탄생』, 『수월관음의 탄생』, 『민화』, 『미의 순례』, 『한국불교조각의 흐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