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년간 감춰진 ‘비밀의 숲’과 봉선사

스님과의 일상다담(日常茶談) | 봉선사 템플스테이 혜아 스님

2020-11-02     최호승
봉선사 템플스테이 | 혜아 스님
남양주 봉선사 템플스테이 연수국장. 대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송광사에서 보성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중앙승가대를 졸업하고 여주 신륵사와 공주 영평사에서 템플스테이 연수국장과 지도법사를 지냈다. 한국명상학회에서 MBSR 명상지도자 자격을,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사찰음식 전문조리사 자격을 취득했다. 조계종 포교원 불교명상지도사 1급 과정도 수료했다.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에는 무려 550년간 출입이 통제된 ‘비밀의 숲’이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 광릉을 감싸고 있는 숲이다. 쉽사리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이 숲이 잠시 방부를 윤허(?)하는 시간이 있다는데…. 세조의 능을 지키는 사찰 봉선사를 찾으면 ‘비밀의 숲’ 광릉숲에서 특별한 체험도 가능하다. ‘비밀의 숲’에서 느낀다는 ‘행복의 비밀’을 캐러 봉선사로 향했다. 

 

사진. 유동영

 

| 어서 와, ‘비밀의 숲’은 처음이지?

지난 9월 EBS 1TV 시사교양 프로그램 <한국기행> ‘숲속에서 삽니다’ 3부가 전파를 탔다. 제목은 템플스테이를 단박에 드러내는 ‘내 마음의 쉼표’. 길었던 여름을 보내고 잠시 쉬어가고 싶은 계절, 세상 소요를 막아선 숲에서 마음의 속도를 늦춰본다는 취지였다. 방송에서는 봉선사 템플스테이 연수국장 혜아 스님과 일손을 거드는 후배 덕재 스님이 출연했다. 봉선사와 두 스님의 짧은 일상이 담긴 영상도 눈길을 끌었지만, ‘비밀의 숲’ 광릉숲에 호기심이 생겼다. 비밀, 숲, 광릉 그리고 봉선사와 스님이라는 키워드는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절에 소속된 삼림을 지키면서 땔나무를 마련하는 산감(山監) 소임도 아닌데, 혜아 스님은 정말 ‘비밀의 숲’을 관리하는 걸까?

 

: ‘비밀의 숲’을 관리한다면서요?

“이번에 촬영하면서 ‘관리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관리한다는 생각보다 그냥 일상이니까요. 광릉숲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인데, 아무나 들어와서 훼손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도에요. 출입을 막는데도 막무가내로 들어가려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옥신각신하기도 하는데, 참 안타까워요. 봉선사에 오면 광릉과 광릉수목원을 그냥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해에요. 이 두 곳은 예약하고 입장권을 구매해야 관람 가능합니다.” 

 

: 숲에 ‘비밀’이라는 단어를 연결해서인지 신비해요. 광릉숲이 왜 비밀스러운 공간이 됐나요?

“광릉숲 자체가 조선 시대 왕들이 아꼈던 사냥터에요. 특히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자주 찾았던 곳입니다. 그 옛날부터 일반인들은 출입할 수 없었죠. 지금도 생물권보존지역이니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요. 산림보호원들이 수시로 광릉 부속림인 봉선사 숲길을 순찰하고, 아침저녁으로 봉선사 대중스님들이 포행하며 숲을 보살피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출입 엄금입니다(웃음).”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 관리센터에 따르면 광릉숲은 1911년 국유림을 조사할 때 으뜸으로 보존될 임야로 편입됐다. 550년간 훼손되지 않고 잘 보전되어 전 세계적으로 온대북부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활엽수 극상림(極相林)을 이루고 있는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숲이다. 실제 어린나무부터 고목에 이르기까지 946종에 달하는 식물군이 분포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218호인 장수하늘소는 물론 3,932개 분류로 나뉘는 온갖 곤충류가 서식하면서 이들을 먹는 새도 187종이나 있다. 이외에도 버섯, 포유류, 양서·파충류, 어류 등 총 6,251여 분류군의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생물이 사는 생물 다양성의 보물창고가 광릉숲이다. 유네스코의 ‘인간과 생물권(Man and the biosphere: MAB)’이 2010년 6월 2일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이유가 여기 있다. 혜아 스님과 광릉숲으로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다 또 다른 비밀(?)을 알게 됐다. 스님은 “봉선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잠깐 출입할 수 있다”며 광릉숲의 또 다른 출입 카드(?)를 귀띔했다. 

 

봉선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겐 ‘비밀의 숲’ 광릉숲에서 포행하고 명상하는 특권(?)이 주어진다. 

| 누려! 템플스테이 참가자의 특권

지난해 봉선사와 국립수목원 사이 광릉숲 중 일부가 산책로로 열리긴 했다. 하지만 그 속은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비밀이다. ‘나를 찾는 행복여행 봉선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이 비밀스러운 광릉숲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템플스테이에 초대하는 글부터 “발길이 드나들지 않은 ‘비밀의 숲’을 걸으며 만나는 참된 나”이다. 

봉선사 템플스테이가 다른 사찰 프로그램과 다른 점이 여기 있다. 사찰예절 안내, 타종, 나를 깨우는 108배, 사찰 둘러보기, 스님과의 차담 등 고정 프로그램 외에도 봉선사만의 특별한 체험이 바로 ‘비밀의 숲’ 포행이다. 단, 토요일에 입소하면 일요일 오전에 숲에 든다. 주말 템플스테이 참가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 ‘비밀의 숲’ 포행이 궁금한데요.

“걷기만 해서는 지루하잖아요. 중간중간 쉬면서 명상하고, 광릉숲 야사도 듣고 여러 선지식의 교훈도 듣는 거죠. 주로 1시간 30분 코스를 잡아서 걷는데, 더 많이 걷기도 해요.”

 

: 광릉숲을 걷고 명상하는 참가자들 반응도 남다를 것 같아요.

“마음이 힘든 분들이 오는데,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새소리, 풀 내음, 초록빛 싱그러운 나뭇잎, 하늘과 구름 그리고 바람….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저절로 느낄 수 있어요. 숲과 함께 숨 쉬고 걸으면서 ‘아, 내가 살아 있구나’라고 하는 거죠. 숲 한가운데에서 스스로와 마주하는 명상을 하면 더 많은 충족감을 얻어가더라고요.”

 

: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는 말씀이네요?

“네(웃음). 재충전해서 활력을 얻어간 분들을 보면 그나마 절에 살면서 밥값은 하고 있구나 싶어요. 하하하. 그럴 때 뿌듯해요.”

 

| 왕의 무덤을 수호하는 사찰

조계종 제25교구본사 봉선사(奉先寺)는 조선의 7번째 임금 세조와 왕비[妃] 정희왕후의 무덤인 광릉을 수호하는 사찰이다. 그래서 능침(陵寢,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사찰로 불린다. 969년(고려 광종 20) 법인 국사 탄문 스님이 창건한 운악사가 봉선사의 옛 이름이다. 1469년(예종 1)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을 옮긴 후 광릉이라 이름 짓고, 운악사를 선왕의 명복을 비는 자복사(資福寺, 국가의 복을 기원하는 절)로 삼고 봉선사라 했다.

봉선사에 혜아 스님이 바랑을 푼 것은 2016년. 전국비구니회에 인연 있는 스님의 연락이 계기였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딱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났단다. 

 

: 훌륭한 사찰에, 좋은 숲에서 사는 스님도 고민이 있나요?

“봉선사 템플스테이가 입소문도 나고 (제가) 외부에 알려지다 보니 사람들이 봉선사를 비구니 절로 알아요. 봉선사에는 50여 명의 출가수행자들이 정진 중인 도량이고 비구니는 저 혼자에요. 이 기회에 알리고 싶어요(웃음).”

 

: 5년 혹은 10년 뒤 스님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많은 사람과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노후복지가 어려운 스님들도 돕고 싶죠. 무엇보다 저로 인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힘을 얻는다면 그것도 수행자의 본분이 아닐까요?”

 

혜아 스님의 마지막 말씀에서 어쩌면 ‘행복의 비밀’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