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명 스님의 온에어(On Air)] 인기라는 물거품

2020-11-10     진명 스님

몰랐다. 참선해서 견성하는 길과 경학을 공부해서 후학을 지도하는 길이 전부인 줄로만 알고 나섰던 길이었다. 출가해보니 달랐다. 심신이 온전히 출가하여 기본을 잘 다듬은 수행자라면 존재하는 그곳이 수행처였고, 하는 일이 무엇일지라도 수행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법대 교수의 전화 한 통

1997년 9월 1일부터 모 프로그램을 진명 스님이 진행한다는 예고기사가 교계 신문에 실렸다. 기사를 본 모 대학 법학과 교수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물론 신심 돈독한 불자 교수였다. 

“스님, 안녕하세요. 먼저 그 유명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스님, 속세 연예인들의 인기라는 것은 물거품과 같습니다. (아무쪼록) 스님께서는 그 인기에 편승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방송 포교하는 수행자로 자리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편하게 전화를 주고받는 인연이 아니었기에 참 당황스러웠다. 첫 방송을 시작하기 전이었고, 프로그램 진행 제안을 갑자기 받고 어렵게 수락했던 터라 더 그랬다. 부처님 제자로 출가해서 방송하는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방송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방송 시스템도 모르던 때였기에 그저 ‘첫 방송을 어떻게 해야 하나’, ‘사투리가 심한 경상도 출신인데 그 다양한 외국어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가득했다. 그래서 생각지 못한 그 전화 한 통에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첫 방송을 시작했다. 겨우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가 편안해졌고, 음악이 나갈 때면 잠시라도 창밖 풍경을 보며 코멘트를 할 수 있는 즈음이었다. 어느 도반스님이 전화를 해왔다. 

“진명 스님,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서요? 무슨 서양 고전 음악이야. 스님은 108가요 뽕짝이나 트로트를 진행하면 딱 맞는데….”

도반스님은 나와 클래식 음악은 어울리지 않다는 점을 강하게 어필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 전화는 뭐지? 칭찬이야? 부정이야?’ 또 한 번 가까운 도반에게 한 방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때 온갖 번뇌들이 엄습해 왔다. ‘정말 방송을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어리바리하다가 방송국에 누가 되지 않을까?’, ‘서울에서 공부 마치면 대중으로 돌아가야지 했던 그 생각을 실천해야 했는데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음을 다잡았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 당시 방송국 상무이사 소임을 맡았던 스님과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진명 스님, 3년만 방송국 좀 도와줘.’ 이 약속을 이행하고 대중으로 돌아가서 출가할 때 목표를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쉽게 잡히지 않는 그 꿈같은 견성성불을 위해 열정을 다하겠다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면서 하루하루 방송에 최선을 다했다.

 

| 출가수행자의 원력 ON AIR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다. 생방송 때 PD가 보내는 수신호도 알게 되고, 스튜디오가 조금 편안해질 무렵이었다. 우리나라는 IMF라는 금융위기를 맞았다. 무엇보다 방송국의 금융사고가 다 수습되기 전이라 프로그램 제작 예산은 최소한으로 줄었다. 방송국 대내외 여건 때문에 방송을 진행하는 스님들은 최소한의 교통비만 받았다. 밖에서 볼 때는 큰 출연료를 받고 방송하는 줄 알았나 보다. 한턱내라는 말을 쉽게 들었다. 그땐 어느 사찰의 주지도 아니었고, 소임도 없어 수입이 없었다. 생활비가 고민돼 아는 불자와 의논하기도 했다. 그 불자가 3년 동안 교통비를 시주한 덕분에 방송을 무난히 진행할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방송을 이어가며 방송의 장단점을 알게 됐다. 이 시대에 매스미디어(mass media, TV·신문·라디오·잡지·영화·광고 등 정보 전달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매체)를 통한 포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방송뿐만 아니라 대형 음악회 사회도 보고, 가끔 법회나 강연도 하면서 법학과 교수에게 받았던 그 전화 내용이 절실히 마음에 와닿았다. 

“많은 분이 방송하는 스님으로 좋아해 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교수의 말씀처럼 세속 인기는 그저 물거품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방송하는 나’를 좋아하지만 ‘출가수행자 진명’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ON AIR에 불이 꺼지면 일시에 사라질 인기라는 점을 스스로 주지시켰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한 가지 원이 단단하게 자리했다. ‘聞我名者免三途 見我形者得解脫(문아명자면삼도 견아형자득해탈).’ 새벽예불 시간에 늘 염원하는 행선축원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 이름을 듣는 이는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를 면하게 해주시고, 내 모습을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해주세요.’ 그렇다. 이번 생에서 못하면 다음 생에 이 모습을 갖추고 와서 무한한 포교를 꼭 성취하리라. 교수의 말씀 덕분에 오늘도 수행자로서 변함없이 그 염원을 되새겨 본다.

 

진명 스님
시흥 법련사 주지. 1982년 청도 운문사에서 정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4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88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운문사 승가대학과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선학과를 수료했다. ‘(사)맑고 향기롭게’ 사무국장,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중국 북경 만월사와 

대련 길상사 주지를 역임했다. 문화재청 문화재건축분과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