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불교 생활] 영성의 시대

2020-09-24     원제 스님

 

| 종교에서 영성의 시대로

얼마 전 대학교 은사인 길희성 교수가 한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 인터뷰 제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제도 종교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젠 종교에서 영성의 시대로.’

이제까지 영성을 대변하고 구현하는 대표적인 통로는 바로 종교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종교의 위상이 급격하게 저무는 탈종교·비종교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이미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았고, 가톨릭 종교 전통에 따라 신부가 되려는 사람들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종교의 위축 현상은 불교계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계종에서는 스님이 되기 위한 출가자 수가 10년 사이에 1/3 정도로 현격히 줄었습니다. 눈에 띄는 출가자 감소세도 문제지만, 종단 내 스님의 고령화 역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독특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의 위상과 영향력이 쇠퇴해가는 흐름에서 그나마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여전히 종교가 중요한 명맥을 유지하며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신앙 행위가 지속해서 이어지는 우리나라 절이나 교회의 풍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절에서 기복 신앙을 유지하는 신도 층의 대부분은 60세 이상의 고령에 속합니다. 스님들의 고령화와 아울러 신도 층의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집단이든 집단의 원만한 존속과 운영을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에 세대교체가 필수적인데, 현재 별다른 대책 없이 그 시기가 미뤄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유튜브 영성가’ 

종교가 불교가 아니라도, 출가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진리나 자유를 위한 갈망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영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삶의 목적을 고민하며, 고통의 문제를 살펴보고, 세상의 흐름에 관해 탐구하는 그 모든 행위가 바로 이 영성에서 발원합니다. 종교는 영성과 다릅니다. 종교는 시대, 사회, 역사, 문화의 영향을 받는 제도이자 조직이며, 들어갈 수 있는 한 형태로서의 체계입니다. 이에 반해 영성은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우리가 이미 갖추고 있는 마음의 속성입니다. 그렇기에 종교는 특수하지만, 영성은 보편적입니다. 요즘 필자는 종교의 영향을 받거나 종교적 틀에 갇히지 않은 상태에서 영성을 곧장 발현하고 발전시키며 나누려는 시도들에 주목합니다. 특히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영성을 말하며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진리를 펼쳐가고 있는 영성가들의 활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들을 ‘유튜브 영성가’라고 부릅니다.

과거에는 수행을 특수한 조건에 있는 성직자들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영성이 보편화한 지금, 수행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스스로 수행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절집 안만 해도 과거에는 간화선 수행을 스님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재가 불자나 비불자 중에도 간화선 수행을 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처럼 수행이 보편화한 데에는 종교보다 영성의 영향이 큽니다. 수행이라는 행위는 종교의 체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영성에 곧장 연결됩니다. 영성에 바탕을 둔 수행은 종교에 귀의한다거나 집단에 소속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유튜브 영성가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어떤 종교성도 띠지 않고, 어떤 종교 체계나 형식도 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깨달음을 곧장 드러내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감화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직접적인 만남 없이 말입니다.

유튜브 영성가들의 활동은 대단한 혁신입니다. 과거에는 각 종교계에 걸출한 지도자와 선각자가 있었고 이들이 종교 의례라는 형식을 통해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즉 가르침을 얻고 수행하기 위해서는 종교라는 진입 장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튜브란 플랫폼은 진입 장벽이 전혀 없습니다. 집단을 필요로 하지 않고,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며, 장소나 시간에도 구애받지 않습니다. 이러한 유튜브의 특성은 종교보다 영성의 속성에 더욱 부합합니다. 영성은 집단을 필요로 하지 않고, 믿어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튜브에는 종교처럼 극소수의 위대한 스승이 있는 게 아니라, 각자의 인연에 따라 나름의 깨달음을 펼치고 있는 다양한 스승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영웅이 모든 가르침을 통일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모두가 나름의 자리에서 각자의 인연대로 가르침을 펼치며 스승의 역할을 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 ‘단 하나의 불교’ 아닌 ‘그들 자신의 불교’

비록 한국이 종교성 강하고 기복 문화가 종교의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다 할지라도, 종교의 역할과 영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축소될 것입니다. 불교 영향력이 줄고 있음을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영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종교로서 불교를 강화하고 사람들에게 믿음을 강요하기보다는, 영성의 근간으로서 마음을 밝히는 불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스님들이 영성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불교는 분명 마음을 밝히는 뛰어난 전통이며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직접 영성을 추구하고 발전시켜가는 이 시대에는 스님들도 보편적 언어와 개념으로써 영성을 이해시키고 설명할 수 있는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한때 ‘간화선의 대중화’라는 슬로건이 조계종단 내에 중요한 숙제처럼 제시된 적 있습니다. 간화선 수행은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도 해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수행법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대중화는 대중의 관점에서, 대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수행법도 대중의 안목에서 볼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으면 대중화는 어렵습니다. 

한국불교의 걸출한 종장이셨던 숭산 스님의 전법 활동을 돌이켜봅시다. 숭산 스님은 불교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수십 년 전 서구 사회에서 선의 대중화를 이뤘습니다. 숭산 스님은 위대한 스승으로서의 고결한 자세를 유지한 채 일방적으로 선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대신 스스로 대중이 되어 대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달리 세속의 학문을 배운 적 없던 스님은 보일러 수리나 세탁소 잡일을 하며 대중의 안목을 키웠습니다. 서구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려운 선 용어를 보편적인 단어로 바꾸고, 그들이 지닌 평등 지향 가치관에 맞춰 승가와 재가의 차이를 최소화하면서 관음선종이라는 새로운 종파를 만들었습니다. 종교로서 불교를 고집하는 대신 영성에 초점을 맞췄기에 지역과 문화에 따른 능동적인 변용이 가능했고 이를 토대로 선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선사로서의 위상이나 특혜를 고집하지 않고, 스스로 대중의 자리에 들어갔기에 만들어낼 수 있었던 업적입니다. 그런 숭산 스님이 전 세계에 수많은 관음선종 선원을 개원하면서 남긴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나는 오직 불교의 뼈대만 가르칠 뿐이다. 각각의 문화가 천천히 그들 자신의 불교를 살찌울 것이다.”

 

원제 스님
2006년 해인사로 출가, 도림법전 스님의 제자로 스님이 되었다. 2012년 9월부터 2년여간 티베트 카일라스를 시작으로 5대륙 45개국 세계 일주를 했다. 이후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는 좌우명으로 지내고 있다. 선원에서 정진하는 수좌로 현재 김천 수도암에서 수행 중이다. 저서로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2019, 불광출판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