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탁본 전시 여는 일감 스님

2020-08-31     최호승

몇 가지 궁금증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똑같이 바위에 새긴 어떤 마음일 텐데, 왜 마애불이 아니라 암각화(岩刻畵)일까? 큰 바위에 존경과 외경, 신심을 부처님 형상으로 새긴 마애불에 마음이 끌렸다면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스님은 암각화에 끌렸다. 암각화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단순한 일탈(?)일까? 아니면 호기심? 차 한 잔 마시며 나누는 대화가 깊어지자 의문이 풀렸다. 수락산 용굴암 주지 일감 스님은 왜 암각화에 빠졌을까?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라는 제목으로 9월 15일부터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암각화 탁본 전시회를 여는 일감 스님을 미리 만났다. 

 

| 하늘 향한 지고지순함

일감 스님은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소임을 맡고 있다. 궁금증을 풀고자 백년대계본부 사무실로 찾아갔다. 너그러운 미소로 반기는 스님은 자리를 내어주고 차를 내렸다. 인터뷰 전 마음 속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호기심은 인내를 몰랐다. 차 한 잔 내리는 그 짧은 시간에 안부와 암각화에 대한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 언제부터 암각화와 인연이 됐나요?

“15년 전일 겁니다. 화가이자 암각화 연구가인 김호석 화백이 해인사에 와서 장기리 암각화를 조사하러 가는 길을 동행하면서부터 암각화와 인연이 됐어요. 까마득히 잊고 지냈는데 2016년에 김 화백의 연락을 받고 알타이로 같이 떠났고, 다시 암각화를 만난 거죠. 가슴 벅찬 경이로움에 압도됐어요.”

 

: 스님이 마애불 아닌 암각화에 빠졌다고 하니 언뜻 이해가 안 돼요.

“연구자라든지 미술가라든지 무슨 직업의식이나 목표가 뚜렷했다면 그것 때문에 암각화가 좋다고 하겠는데, 보는 것 자체가 좋아요. 또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냥 좋은데 왜 좋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어요(웃음).”

 

스님의 말씀은 진심이었다. 날씨는 덥고 건조하고 땡볕에 살갗이 노출되면 금방이라도 익어 버릴 듯했지만, 그림이 새겨진 바위 하나라도 더 보려고 스님은 바삐 움직였단다. 아침에 해가 뜰 때 올라가서 보고, 해가 질 때도 올라가서 봤다. 빛의 있고 없음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매번 볼 때마다 새롭기 때문이다. 2019년에는 해발 3,500m가 넘는 고지에 있는 암각화를 만나기 위해 30kg 배낭을 짊어지고 산길 7km를 오르기도 했다. 거센 바람 때문에 불을 피우지 못해 생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뼛속까지 파고 드는 추위에 밤을 꼬박 새워도 이튿날 암각화만 보면 모든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 그렇게 매력적인가요.

“자연이 주는 경외감과 힐링, 거기에 암각화가 있다면 감격스럽습니다. 암각화를 보면서 단 한 번도 나쁘거나 교묘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눈코입도 갖춰지지 않은 사람, 사슴, 태양, 화살 같은 단순한 그림이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바위에 한 점 한 점 쪼아 새긴 이들의 간절함이죠. 수만 년 전 사람들의 간절함이 지금 나에게 전해지는 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인지요.”

선인들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밤하늘 아래서 소망을 간절하게 빌었다. 그들에게 사슴은 모든 것을 내주고 가는 고맙고 신령스러운 존재였다. 

| 원령공주와 사슴신

스님이 전시하는 암각화 탁본에는 사냥꾼과 사슴이 자주 등장한다. 교과서로 배웠던 사냥과 수렵을 보여주는 걸까? 스님은 사슴에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 탁본을 보니 유난히 사슴 그림이 많던데 어떻게 해석할 수 있나요?

“풀과 이끼를 먹고 사는 사슴은 일단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털과 고기 등 도움만 주지 해를 입히지 않죠. 하늘 같은 성품이죠(웃음). 사람은 향상(向上)의 의지나 마음이 있을 때 높은 곳을 바라봅니다. 하늘을 향해 뿔이 돋은 동물은 높은 동물이죠. 그중에서도 사슴 뿔은 멋진 왕관 같지 않은가요? 사슴은 고맙고 신령스러운 존재였을 겁니다.”

 

: 일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1997)>에서 나오는 ‘시시가미(사슴신)’와 유사하군요.

“그런 상징이 있습니다. 우리 무의식 속에 간직된 오래되고 보편적인 인식이에요. 고대인들은 하늘이 혹은 신이 사슴 모습으로 땅에 내려와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고 여겼죠. 가죽은 추위를 막아주고, 살은 배고픔을 채워주고, 뼈는 아이들 장난감이나 생활 도구가 됩니다. 그렇게 다 주고 나서 죽으면 하늘로 가는 겁니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보살이죠(웃음).”

 

: 사슴이 신으로 추앙받았던 문화는 오래됐군요.

“신라 왕관에도 그대로 표현돼 있습니다. 왕관 양 옆에 솟아있는 것은 사슴 뿔로 신성함을 상징합니다. 왕관 앞 ‘날 출(出)’ 자 모양은 신목(神木)을 상징하고요.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인 하얀 나무입니다. 자작나무를 신목으로 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또 솟대 위에 새가 있거나 태양 안에 삼족오(三足烏, 태양에 살면서 신과 인간세계를 연결해주는 신성한 상상의 새)가 있는 것도 사슴뿔과 같은 상징이 숨어 있습니다.”

 

| 향상하는 마음에 주목

암각화는 자연 속에 노출된 바위나 동굴 벽에 여러 가지 동물상이나 기하학적인 상징 문양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그림이다. 가장 두드러진 시기는 신석기 시대부터였고 청동기 시대에 많이 그려졌다. 앞서 세상을 살다간 이들의 신앙과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고, 주로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이 많다. 사실 그림은 대상의 재현이기도 하고 대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소망의 표현이자 소망의 달성이기도 하다. 일감 스님이 영혼을 새겼다고 표현한 부분이 이 지점이다. 여기서 스님은 향상하는 마음을 언급했다. 

 

: 고대인들의 향상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요.

“하늘로 향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탁하거나 욕심이 많아서 무거우면 하늘로 못 올라가요. 맑고 순수한 마음이어야 가는 거죠. 내가 붓다가 되고자 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합니다. 수행하는 마음과 암각화를 그린 마음이 연결되는 이 지점이 좋습니다. 암각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 초기의 종교적인 형태나 사람의 종교성 혹은 영성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말로 들립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그 고통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불교입니다. 고통의 원인을 잘 파악해서 팔정도로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려는 노력이 암각화에도 표현됐다는 얘깁니다. 그들은 배고픔 등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염원을 담아, 하늘의 신 태양에게 제물을 올리고 축제도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하늘에 태어나려는 열망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하늘로 향하는 마음, 향상의 마음입니다. 향상하려는 의지나 마음이 드러난 종교화가 암각화입니다.”

 

: 암각화에 ‘향상하는 마음’이라는 삶의 긍정적인 메시지가 있다는 건가요.

“암각화에는 우리가 가져야 할 성품이 있습니다. 하늘로 향하려면 죄를 짓지 않고 지었더라도 진심으로 참회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영혼을 향상하려는 의지를 가진다면 남을 해코지할 수 있나요? 우리가 너무 똑똑하고 야무져서 이만큼 살고 있지만 ‘향상하는 마음’을 잊고 삽니다. 지적 수준이 낮을 거라 여기는 선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지금 여기 이 땅에 하늘의 마음, 붓다의 마음을 실천하여 극락정토를 만들고, 그곳에서 잘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사명 아닐까요?”

암각화 탁본 전시를 앞두고 반구대 암각화를 준비하는 일감 스님. 

|    사진과 탁본, 글로 만나는 암각화

일감 스님은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전시에서 직접 탁본한 알타이 암각화 60여 점을 선보인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복제 작품도 1점 전시한다. 책도 나온다. 학술적인 접근이 아니라 스님의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 불교적 가치관으로 암각화를 재해석했다. 스님이 고른 간결한 시어와 차분한 글이 돋보이는 이 책은 명상록에 가깝다. 

 

: 암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암각화에는 하늘을 공경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삶이 있습니다. 선인들은 하늘을 닮은 지혜와 바다 같은 자비심을 바위에 새겨 놨어요. 암각화는 우리를 돌아보는 맑은 거울이자,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요? 코로나19 시대, 물질 만능과 탐욕의 문화를 넘어 자연과 인간의 상생 그리고 생명의 문화를 암각화에서 찾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아주 오래전 이 땅에 먼저 발 딛고 살았던 선인들의 마음과 우리의 신심은 같을까, 다를까? 별수 없다. 하늘 닮은 지혜와 바다 같은 자비심을 눈으로 확인해볼 수밖에.     

 

글. 최호승
사진. 유동영

 

※ 일감 스님의 암각화 탁본 특별전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아라아트센터 | 서울 2020.9.15~2020.9.21

신과 인간이 만든 영혼의 예술품, 암각화. 몽골과 러시아 알타이 등 세계적인 암각화 지역을 탐방해 탁본한 수백 개의 탁본 중 60여 점이 처음 공개된다. 수천 년 전 선인들이 바위에 새긴 ‘모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진리를 느껴보자.

 

일감 스님 
수락산 용굴암 주지.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해 잠시 성철 스님을 시봉했다. 봉암사 태고선원, 해인총림선원, 고불총림선원 등 제방선원에서 수행 정진했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불교사회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수락산 용굴암 주지로서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소임을 맡고 있다. 멕시코 보리사 주지 당시 멕시코 역사상 처음으로 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를 열고, 금산사 템플스테이 ’내비둬 콘서트’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문화에 대한 탁월한 식견으로 굵직한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한편, 금강경 읽기 모임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전하는 데에도 진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