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통신] 그 산 그 절

2020-08-27     최호승

● 산행이 인기입니다. 코로나19로 거리 두기가 길어지자 답답함과 무료함에 지친 사람들이 산을 찾습니다. 평소 산행하지 않던 사람들도 산을 찾자 ‘산린이(산+어린이 합성어, 산 초보자)’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입니다. 계룡산, 북한산, 치악산 탐방객이 전년 대비 30%를 훌쩍 넘게 증가했다는 통계만 봐도 산행은 대세입니다.

● 새로운 문화도 생겼습니다. 20~30대가 산행하고 있습니다. 산악회원 대신 ‘클럽(Club)’과 ‘크루(Crew)’라는 말을 쓰고, 요가를 산에서 하고, 명상도 하면서 야간 산행을 합니다. 산행 중 쓰레기를 줍거나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등 자연도 돌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SNS로 사진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또 다른 젊은이들을 산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 새삼 핵심 키워드가 된 산에는 연관 검색어가 있습니다. 절, 사찰, 산사, 불교, 스님이라는 단어입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그 산과 그 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이를테면 설악산 신흥사, 오대산 월정사, 속리산 법주사, 가야산 해인사, 지리산 화엄사 등 명산은 꼭 명찰과 함께입니다. 교학보다 참선을 중요하게 여긴 선종이 확산되면서 고요한 수행처로 산을 택하고, 조선 시대 억불숭유 정책으로 도심의 절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런 역사적 지식을 꺼내지 않아도 그곳에 있는 산에 가면 그 절이 있어 반갑습니다.

● 왜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을까요?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힐링할 수 있어 좋습니다. 봄에는 꽃이 있어 좋고, 여름엔 초목의 초록이 좋고, 가을엔 단풍이 좋고, 겨울엔 눈꽃이 있어서 좋습니다.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천천히 걸으며 발끝이나 호흡에 집중하면서 시시콜콜한 번뇌를 덜어내는 것도 산행의 묘미 아닐까요. 여기에 이야기가 더해지면 더 좋은 일입니다. 산사입니다. 잠시 절에 들러 감로수로 목을 축이며 땀을 식히는 꿀 같은 휴식에 산사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래서 산행이 좋습니다. 철 따라 산에 오르는 멋과 감성이 다르고, 중생 시름 달래주는 절이 있어 좋습니다.

● 월간 「불광」이 가을 등산철을 앞두고 누구보다 먼저 북한산에 다녀와 그 이야기를 길어 왔습니다. 북한산을 찾은 산린이와 동행했고, 오랫동안 북한산을 오르는 중년과 함께 걸었습니다. 탐방로 따라 산사에 들러 명상에 잠겼고, 공양물도 올렸습니다. 억불숭유 정책 속에서도 면면히 북한산 자락을 지키는 산사의 어제와 오늘을 담았습니다. 어제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등산객 발길이 닿는 산사 이야기를 전합니다.

● 그 이야기에 허응 보우(虛應 普雨, 1509?~1565) 스님의 선시 ‘산거잡영(山居雜咏)’을 더해봅니다. 원문은 “추산하사최청기 상수포도난숙수(秋山何事最淸奇 上樹葡萄爛熟垂)/독파남화친수적 출림환사석양시(讀罷南華親手摘 出林還寺夕陽時)”입니다. 직역보다 상상력을 더해볼까요? 맑고 투명한 가을하늘 아래, 산 깊은 곳 바위 위에 앉아 『남화경』을 읽으니 한나절이 훌쩍 지나갑니다. 잘 익은 열매 몇 개 따서 숲을 나오니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습니다. 돌아가려는 산사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이번 가을, 그 산과 그 절을 이렇게 떠올려봅니다.

 

글.최호승(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