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알아도 법회 모르는 세대 얼마나 알고 있나요?

청불(靑佛)이 온다|청년이 말하는 청년불교

2020-09-07     이채은

|    ‘헌금’은 알아도 ‘보시’는 모르는

처음 불교계 조직을 만난 건 대학교 입학 후 불교동아리에 가입했을 때다. 이전까지 부모님을 따라 절에 가기도 하고 기도도 드려봤지만, 사람이 모인 조직은 접하지 못했었다. 신입을 잘 챙겨주는 동아리 선배들과 재밌게 동아리 활동을 했고 불교동아리를 통해 지도법사 스님과 인연도 생겼다. 이런 불교동아리가 너무 좋아서 불교동아리를 홍보하고 사람들을 가입시키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불교동아리를 소개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불교동아리에서 고기와 술을 먹을 수 있는지’, ‘일주일에 몇 번 모이는지’, ‘부처님을 신으로 생각하는지’ 등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에 답해야 했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주로 비교하는 대상은 교회였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교회를 한 번이라도 가본 경험이 있었고, 교회에서 쓰이는 말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불교에 대해서는 ‘스님’이라는 단어 외에 아무것도 몰랐다. ‘예배’는 알아도 ‘법회’는 모르고 ‘헌금’은 알아도 ‘보시’는 몰랐다.

불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훨씬 일반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져 있었다. 불교가 사람들에게 더 친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이하 대불련)를 알게 됐다. 대불련은 5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전국에 18개의 지부가 있는 큰 조직이다. 척박한 청년불교 현실 속에서 애를 쓰고 있는 청년포교의 주체이기도 하다. 불교가 청년에게 더 다가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대불련 활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후 필자는 대불련 52년 차 기획차장, 53년 차 중앙회장, 3년의 대외협력 간사를 지냈다.

 

|    과도한 기대와 박한 평가

청년포교가 힘든 이유가 청년들이 불교에 관심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청년포교를 더 어렵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불교계 선배들과 스님들의 청년포교에 대한 낮은 관심이었다. 특히 청년이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이들의 무지가 청년포교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3년 전 어느 불교계 단체에서 책 세 권을 출간했다. 몇 년에 걸쳐 공들여 만든 포교 매뉴얼을 대불련의 동의 및 허락을 구하지 않고 그대로 책에 실어서 당시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사과받지 못했다. 필자는 대불련 활동을 위해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4학년에 휴학을 결정했다. 필자뿐만 아니라 함께 활동하던 집행부 학생들 역시 소정의 활동비만 받으면서 청년포교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신념 하나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동에 임했다. 하지만 청년들의 진심이 가닿지 않았는지 어른들은 우리 청년들을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필요한 지원은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왜 이 정도밖에 못하냐며 혼냈고 당신들 말을 듣지 않는다며 타박했다. 과도한 기대와 그에 따르는 박한 평가. 청년이 받는 대우는 이랬다.

 

|    불교가 뒤처지는 세 가지 이유

불교가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도 있다. 이는 낮은 성인지 감수성, 청년세대에 대한 이해 부족, 경직된 체계 등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다. 성인지 감수성은 현재 청년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주제 중 하나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평등의 시각에서 성별 차이로 인한 차별을 감지해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필요성이 대두되는 성인지 감수성을 불교계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필자 주변의 많은 청년불자들은 비구스님보다 비구니스님을 더 선호한다. 몇몇 비구스님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 때문이다. ‘여자와 남자는 본래 차이가 있어서 차별받는 것도 당연하다’와 같이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말을 비구스님들이 하는 것을 필자는 직접 듣기도 했고 전해 듣기도 했다. 이런 말을 들은 청년들은 ‘평등을 지향하는 불교인 줄 알았는데 정말 불경에 저렇게 적혀 있냐’며 실망의 기색을 보였다. 퀴어퍼레이드에서 춤을 춘 스님의 영상이 화제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역시 불교’라며 불교의 개방성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남아있는 불교의 보수성을 모두 변화시키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듯 보인다. 그렇다고 시간에만 맡겨 두면 안 된다. 스님들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 향상 교육이 시급하다.

두 번째는 청년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같은 세대 내에서도 성별과 학력, 사는 지역 등에 따라 생활양식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문제는 ‘사회가 정의하는 청년’의 모습이 단편적이라서 ‘진짜 청년’의 모습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대학을 다니지 않거나 직장을 구하지 않거나 공부하지 않는 청년은 사회가 정의하는 청년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 청년은 늘 기성세대로부터 정의로운 태도, 대의에 희생적인 태도, 매사에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태도를 요구받는다. 하지만 청년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각기 다른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청년에 대한 기성세대의 획일적인 기대는 청년들을 숨 막히게 만든다. 지금 청년들과 기성세대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스님들과 불교계 선배들이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경직된 체계다. 불교계는 변화에 익숙하지 않고 보수적이다. 요즘 가장 핫한 플랫폼은 역시 유튜브다. 너나 할 것 없이 영상 콘텐츠에 뛰어들고 있다. 이미 이 영역은 레드오션이기 때문에 콘텐츠 개발에 기를 써야 한다. 대불련에서도 유튜브 사업에 뛰어들었고 절을 소개하는 ‘저절로 간다’, ‘독송 ASMR’, ‘불교 동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내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고 한다. 유튜브를 통해 사찰을 소개하려 해도 사찰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는 등 협조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직된 체계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콘텐츠가 나올 수 있을까. 스마트폰 앱을 검색하면 기독교 앱은 셀 수 없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불교 앱은 끝이 보일 정도로 적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불교는 여전히 대중과 가깝지 않은 것이다. 불교가 이 틀을 깨고 나와야 청년불교가 숨을 쉴 수 있다.

 

|    간섭보다 지원과 응원을

불교계에서 청년포교를 위해 애쓰지 않은 건 아니다. 5년 전 백년대계본부에서 종단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로 뽑힌 것이 ‘미래세대 양성’이었다. 많은 사부대중이 청년포교를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뽑았다. 하지만 이런 현실과는 다르게 청년포교는 별다른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대중공사에서 양적 포교가 아닌 청년들에게 공감하기 위한 포교를 하기 위해 미래세대위원회를 갖추기로 결의했지만 미래세대위원회는 2년이 지난 후에야 출범했다. 미래세대위원회는 나름의 역할을 하려 노력했다. 노량진 고시촌에 가서 시험공부에 지친 고달픈 청년들을 위로했다. 요즘 청년들의 주된 관심사인 ‘마음 건강’과 ‘성 평등’을 주제로 대화 마당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미래세대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은 희미해진 상태다. 2년 전 미래세대위원회 예산은 40% 가까이 줄었다. 정말 불교계와 스님들이 미래세대 양성에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청년불교의 방향은 변해야 한다. 조금 더 과감하게 방향키를 틀어야 한다. 불교계는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고 청년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 말고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청년불자 활동가들을 믿고 그들에게 투자해야 한다. 청년 당사자인 그들은 불교계 누구보다 청년을 잘 알고 있으며 누구보다 청년을 잘 끌어올 수 있다. 청년불자들이 기성세대에 기죽어 자신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아야 한다. 불교계에는 변화를 이끌 청년불자 활동가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미래 불교의 씨앗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채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53년 차 중앙회장. 대불련에서 53년 차 중앙회장을 지내고 3년 동안 대외협력 간사를 맡았다. 지금은 청년 세대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