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에세이] 죽음이 죽음을 생각하라 이른다

2020-09-03     김택근

이모가 돌아가셨다. 이모가 청량리에 살아서 청량리 이모라고 불렀다. 우리는 서울에 가본 적이 없어서 막연히 청량리가 서울 한복판인 줄 알았다. 방학 때 이모 집에 들렀을 때야 청량리가 서울의 변두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모는 홍릉 근처 허름한 집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빈소 안내판을 올려다봤다. 그렇다. 청량리 이모도 이름이 있었다. 박감순.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고, 아마 자신도 잊고 살았을 것이다. 93년 동안 지구에 머물렀지만 이모의 삶은 고단하기만 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험한 세상을 살았다. 나라는 온통 헐벗었고 이모네는 더 가난했다. 역사의 비바람은 가릴 곳 없는 약자들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이모의 삶 속에 자신은 없었다. 오로지 자식과 남편뿐이었다.

첫 남편을 잃고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과 재혼했다. 이모는 이모부의 간섭과 잔소리에 늘 주눅이 들어있었다. 이모는 만둣국을 잘 끓였다. 이북이 고향인 이모부 영향인 듯했다. 부음을 듣는 순간 이모의 얼굴이 떠오르며 만둣국 냄새가 났다. 이모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서럽게 살다 떠난 이모는 세상과 화해했을까. 

 

|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의식

놀랍게도 이모는 유택(幽宅, 무덤)에 들기를 거부했다. 아들에게 화장 후 자신을 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평생 갇혀 살았으니 멀리멀리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을 완전히 지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러운 땅에 남아 있으면 도저히 서러움을 지울 수 없기에 스스로 멀리 떠나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세상과의 화해일지도 모른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일본 영화 <굿’ 바이>(다키타 요지로 감독)라는 영화가 있다. 줄곧 스크린에 첼로의 선율이 흘렀던 <굿’ 바이>는 대략 이런 이야기다. ‘주인공은 첼리스트다. 자신이 속한 오케스트라가 해체되자 졸지에 백수 신세가 되었다. 고향에 돌아와 빈둥거릴 때 우연히 ‘연령 불문, 고수익 보장’이라는 여행 가이드 구인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을 보자마자 합격했지만 실은 여행사가 인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보내는 장례 회사였다. 염습(殮襲) 도우미가 된 주인공은 첼로를 켜던 손으로 시체를 만져야 했다. 무섭고 역겨웠다. 하지만 죽은 자의 마지막 길을 책임지는 베테랑 염습사의 모습을 지켜보며 점점 마음을 열었다. 깨끗이 씻기고, 예쁘게 화장시키고, 좋은 옷을 입혀 망자를 저세상으로 보냈다. 아내와 친구들은 더럽고 상스럽다며 주인공을 피했다. 하지만 누구나 죽는 법, 주위 사람이 죽으면 그를 찾아가야 했다. 죽은 자들의 마지막 모습은 천차만별이었다. 죽음의 사연은 주검에 그대로 나타난다. 주인공은 주검에서 슬픔을 털어내고 고통을 지웠다. 그는 어느덧 베테랑 염습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릴 때 가정을 버리고 가출했던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망설이다가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저세상으로 보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서 미움을 털어내는 화해의 의식이었다.’

 

| 하늘에 별이 많은 이유

영화 속의 죽음은 따스하다. 죽음이란 이별이 결코 아주 가볍거나 너무 무겁지 않다. 아무리 맑게 살았더라도 어디 마음에 흉터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망자의 마지막 표정은 숨을 거둔 순간의 것이 아니라 일생을 돌아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의 표정일 수도 있다. 장례의식은 산자와 망자가 서로를 이해하며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다. 화해를 마치고 서로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바다에 든 이모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이다. 바다는 이모를 염습할 것이다. 가라앉지 못하고 못내 떠오르는 아픔과 슬픔은 파도에 묶어 외딴 섬으로 보낼 것이다. 그 섬에서는 날마다 노을이 내려와 눈물과 한숨을 조심스럽게 태울 것이다. 우리 기억도 희미해져 마침내 지워지면 청량리 이모는 사라질 것인가. 아닐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 바람에 실려, 빗줄기를 타고 청량리에 다시 내릴지도 모른다. 

유독 올여름에는 부음이 잦았다. 죽음은 같지만 결은 각기 다르다. 죽음이 죽음을 생각하라 이른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최선을 다해 살다가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고 떠난 사람들. 그들이 밤하늘에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새삼 별을 헤아리다 하늘에 별이 많은 까닭을 헤아린다.

 

김택근
시인, 작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용성 평전』 『성철 평전』 『새벽, 김대중 평전』 『강아지똥별, 권정생 이야기』 『뿔난 그리움』 『벌거벗은 수박도둑』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