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나는 불교] 달라이 라마, 과학을 만나다 / 김천

2020-09-10     김천

지난 7월 6일은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가쵸 스님의 85번째 생신이었다. 대부분의 행사는 생략됐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간략한 인사를 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달라이 라마는 110세까지 살고 싶다고 밝혔다. 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세상을 향해 전해야 할 부처님의 가르침과 티베트불교와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역할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직자 중에서 달라이 라마는 영화로 가장 많이 다뤄진 인물이다. <쿤둔(Kundun, 1997)>, <티베트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 1997)> 등 할리우드 제작 극영화가 크게 흥행했다. 

그의 생애와 가르침을 다룬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있고 아마도 어딘가에서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다운 지포드 잉글 감독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달라이 라마 : 과학자(The Dalai Lama: Scientist, 2019)>는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 달라이 라마 : <과학자(The Dalai Lama: Scientist, 2019)>

 

|    스님 안 됐다면 전기 기술자

다운 지포드 잉글 감독은 노벨상 수상자들과 함께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독특한 이력의 인물이다. 영화의 부제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인데 달라이 라마의 생애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과학자들과의 교류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달라이 라마가 과학자들과 어떻게 교류했고, 어떤 문제를 논의했으며, 종교와 과학이 어떤 접점을 갖고 있는가를 다룬다. 

과학계의 슈퍼스타들이 등장하는데 그만큼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가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과학의 시대라는 점에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 이치를 신의 섭리나, 막연한 신비로 해석하는 게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의 이성은 발전했고 과학과 기술을 통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을 이뤄 가고 있다. 불교는 과학과 불화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종교이기도 하다. 

달라이 라마는 어떤 사람일까. 티베트 불교의 최고위 성직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 평화주의자, 티베트 민중의 정신적 지주, 부처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는 스승 등 수많은 평가가 있다. 정작 본인은 자신을 한 명의 비구라 표현하고 그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 중국 공산당에서는 그를 분리주의자라 비난하며 인민의 고혈을 빠는 반동분자로 낙인찍었다. 

엇갈리는 평가 속에서 이 영화가 다루는 달라이 라마는 지식을 사랑하고, 끝없이 탐구하며, 과학을 알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영화 초반에서 달라이 라마는 “스님이 되지 않았다면 고향에서 엔지니어 특히 전기 기술자가 됐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새로운 것을 만날 때마다 끊임없이 “왜, 어떻게?”라는 질문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선물 받은 시계를 분해하는 취미가 있었고, 장난감은 해체했다가 조립했는데 반쯤은 실패했다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천체망원경으로 달과 별을 살피고 달은 스스로 빛나지 못하며 태양의 빛을 반사할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영화 캡처.
영화 캡처.

|    불교는 오래된 마음 과학

달라이 라마는 망명 이후 정착촌을 만들고 승가 교육체계를 복원한 후 본격적으로 과학자들과 교류를 시작한다. 핵물리학의 거두인 카를 폰 바이츠제커, 양자역학의 이론을 새로 쓴 데이비드 본과 깊은 교류를 했다. 달라이 라마는 그들이 친구일 뿐 아니라 물리학을 지도한 개인 교사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물리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현대물리학의 한 축인 양자역학의 관점이 중관(中觀, Madhyamaka)과 매우 흡사함을 발견했다. 

이후 30년 동안 달라이 라마는 과학자들과 끊임없이 토론하며 영감을 얻고, 과학과 불교의 현상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공통의 방법론을 모색한다. 정상급 과학자들과 함께 삶의 문제를 함께 토의하는 ‘마음과 인생(Mind and Life)’ 프로그램을 1987년 시작해 지금까지 지속해 오고 있다. 

현대 과학은 자신들이 우주의 본질을 꿰뚫어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를 탐구한다. 진실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세상이 작동하는 일단의 이치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길을 찾아낸다. 달라이 라마는 이와 같은 방법론을 두고 “불교의 분석적 명상법과 흡사하다”고 단언했다. 인간과 자연, 우주와 삶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천문학, 양자역학자들과 함께 논의했다. 마음의 본성을 해석하기 위해 심리학, 신경과학, 분자생물학과 유전학 분야의 과학자들과 불교적인 주제를 놓고 진지한 토론을 계속하고 있다. 이 다섯 가지 과학 분야가 ‘마음과 인생’ 프로그램의 주된 테마이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는 오래된 마음의 과학이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달라이 라마가 과학자들과 교류한 30년 시간의 연대기를 담았다. 과학자들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으며 왜 그와 같은 주제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있는 그대로 담았다. 큰 감동이 있거나 드라마가 실려 있지 않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고, 과학이 이룬 것들을 외면할 수 없으며, 마음을 다루는 불교의 업적이 과학적 탐구와 만날 때 더 큰 효과가 있으리라는 점이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서 한국어로도 달라이 라마의 법문을 만날 수 있다. 달라이 라마는 종종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이 80이 넘었지만, 저는 오늘도 배우고 공부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계속 공부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현대 과학이 이룬 성과와 불교적 접근을 압축해서 보고 싶다면 딱 이 영화 한 편을 보면 된다. 다만 어렵고 지루하고 재미없으니 작심하고 여러 번 볼 각오를 한다면 과학과 불교로 세상을 이해하는 지혜의 단편 하나는 건질 수 있다.  

 

●    영화는 유튜브, 비메오, 애플TV, 아마존 프라임 등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유료로 볼 수 있습니다. 
●●    달라이 라마와 과학자들의 토론 프로그램 ‘마음과 인생(Mind and Life)’ 일부는 한국어 자막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천
동국대 인도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방송작가,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신문 객원기자로 종교 관련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여러 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지금도 인간의 정신과 종교, 명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