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로 만나는 선지식] 분별에서 벗어나면 성스러움이란 없다

보리달마(菩提達磨) 대사

2020-09-05     범준 스님

| #1 새로운 세계로 나가다

서기 527년 달마는 3년의 세월 동안 배를 타고 중국의 남해에 이르렀다. 당시 중국은 6조 시대로 양나라는 수도를 건강(建康·金陵, 현재 남경)에 두고 번성한 국가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할 때 달마가 양나라의 남부 광주(廣州) 지방에 당도한 것이다. 양나라의 황제 무제(武帝)는 박학하며 문무 재간이 매우 뛰어난 황제였다. 그는 국가의 제도를 정비하고 법령을 제정해 학관을 일으키고 호적, 토지 제도를 확립하는 등 정치와 문화적인 기반을 확립했다. 번화한 광주 곳곳에서 달마는 무제의 공적에 대해 많은 소문을 들었다. 무제는 불교를 신봉하는 황제로 크고 작은 사찰을 무수히 건립하고, 출가한 스님에게 도첩을 주고, 국가사업으로 불교대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특히 국가재정을 들여 수도 건강에 동태사(同泰寺)를 건립하고 친히 『열반경(涅槃經)』을 강론할 정도로 불교 교학과 신심이 남다른 황제였다. 당시 사람들이 그런 황제를 ‘불심천자(佛心天子)’라 했으니 양나라는 황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이 이미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광주지방의 풍속을 살피고 난 후 달마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누추한 거처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때로는 법문을 하고 때로는 좌선하기도 하며 교화의 인연을 기다렸다. 어느 날 손님이 찾아와 광주자사 소앙(蕭昻)이 달마를 초청한다는 말을 전했다. 광주자사 소앙은 이미 예를 갖추어 무제에게 표(表)를 올려 인도에서 이름난 성인(聖人)이 오셨다고 알렸다.

광주자사 소앙은 불심이 깊은 무제가 틀림없이 그 성인을 수도 건강의 황궁으로 초청해 법문을 듣고자 할 것이고, 법문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에게 더욱 깊은 신임을 내리리라 생각했다. 소앙의 예측대로 무제는 광주자사 소앙의 표를 받고 기뻐하며 인도에서 온 성인을 맞이하는 조서를 내려 광주로 사신을 보냈다.

평소 외국에서 오는 스님들과 온 나라에 이름 높은 스님들이 있으면 항상 황궁으로 모셔 법문을 청하는 것이 무제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무제는 저 멀리서 황궁을 향해 걸어오는 인도의 성인 달마를 바라보았다. 성인의 행색은 조금 초라해도 광주자사 소앙이 보고한 바와 같이 법력이 느껴졌다. 무제는 위대한 성인을 맞이하는 간절함으로 성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 #2 중국 선불교의 흐름을 바꾼 질문

서기 527년 10월 1일 달마와 무제가 만났다. 무제는 달마가 모두에게 칭송받는 성인이니 도가 높아 그 어떤 문제도 능히 답변해 줄 것이라 기대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드디어 역사에 길이 남을 첫 질문을 던졌다.

“멀리서 우리나라로 오셔서 부처님 가르침을 나의 백성들에게 쉬운 법문으로 알려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저는 이 나라 황제로 그동안 궁금했었던 몇 가지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무제의 첫 마디를 들은 달마도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중국 땅에 부처님 가르침을 선교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황제가 그토록 불심이 깊으니 궁금해하는 문제도 특별하리라 생각하고 기다렸다. 무제는 달마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은 어려서부터 불교를 가까이하였고 양나라의 황제에 오른 이후 크고 작은 불사를 많이 했습니다. 때로는 사찰을 건립하고, 불탑을 세우기도 하고, 어떨 때는 스님들에게 가사와 발우를 공양하며 보시를 쉬지 않았고, 어떨 때는 내가 직접 불교 경전을 강론하기도 하면서 사람들을 깨우쳐 주기도 했지요. 사실 짐에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많은 불사를 하며 선업(善業)을 지으려는 노력을 쉬지 않았습니다. 대사가 생각하기에 쉬지 않고 불사를 이루어 낸 짐의 공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有何功德]?”

달마는 무제의 질문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대하고 기다린 질문이 자신의 불사 공덕을 묻는 것이라니…. 달마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고치고 무제에게 간단하게 말했다.

“제 생각으로는 황제에게는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

인도에서 온 성인의 ‘아무 공덕이 없다’는 간결한 한 마디를 무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경전에서 강조하는 ‘선업을 짓고 공덕을 쌓으라’는 말은 다 거짓이란 말인가? 놀란 눈을 하고 무제가 다시 달마에게 물었다.

“대사는 어째서 제게 불사 공덕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何以無功德]?”

“황제께서 말씀하시는 많은 불사는 선업을 지은 것이기에 육도(六度) 가운데 인간세계나 천상세계에 태어날 수 있는 공덕 정도는 받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공덕도 선업의 복이 모두 소진되고 나면 사라지는 공덕[有漏福]입니다. 마치 태양이 뜬 한낮에는 그림자가 실재하는 것 같지만 태양이 사라지면 그림자가 실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제 생각에 황제의 불사 공덕은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것이기에 ‘공덕이 없다[無功德]’고 말씀 드린 것입니다.” 

무제가 다시 질문했다.

“대사의 말씀대로라면 사라지지 않는 참다운 공덕도 있다는 말씀이니 그렇다면 참다운 공덕이란 무엇입니까[如何是眞功德]?” 

달마가 말했다.

“불사와 수행은 공덕을 짓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사와 수행의 목적은 ‘청정한 지혜[淨智]’를 깨달아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통찰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사와 수행에 전력을 다할 뿐 참다운 공덕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참다운 공덕은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불사와 수행을 해나가면 저절로 공덕이 이루어지고 그때 공덕의 관념을 벗어나게 되면, 참다운 공덕이 저절로 신묘한 작용을 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 #3 끝끝내 자비심 베풀어

인도에서 온 성인은 이제까지 무제가 알고 있던 부처님 가르침과는 동떨어진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불교를 말하고 있었다. 무제는 더 논쟁하지 않고 좀 더 본연에 가까운 ‘가장 성스러운 진리[聖諦第一義]’에 대해 다시 질문했다.

“대사의 말씀에 부합할지 모르지만 저는 이렇게 질문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최상의 성스러운 진리란 어떤 것입니까[如何是聖諦第一義]?”

더 설명할 말이 없던 달마는 ‘가장 성스러운 진리는 무엇인가’라는 무제의 질문에 조금 안도하며 “가장 성스러운 진리는 ‘텅 비어 걸림이 없기에 성스러움조차 없다[廓然無聖]’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분명히 광주자사가 인도에서 불법에 뛰어난 성인이 왔다고 했는데 무제 눈앞에 있는 달마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있었다. 무제의 눈빛은 달마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찼다.

“모두 대사를 인도에서 오신 성인이라 칭송하던데 ‘성스러움조차 없다[無聖]’고 말씀하시니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내 눈앞에 있는 ‘성스러운 사람[聖人]’이라고 존경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달마는 여기까지 이야기했는데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는 자비심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무제의 불교 인연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달마는 마지막으로 “나야 모르지요[不識]”라는 짧은 답변만 남겼다.

 

<해설>

달마 대사가 중국에 온 것은 2,600여 년 불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다. 어떤 이는 석가세존의 깨달음에 비견할 일이라 한다. 이렇게 등장한 달마 대사는 동아시아 1,600년 불교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남긴 인물로 기록된다. 한편 달마 대사의 대화 상대가 되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역사에 기록된 사람이 양무제다. 무제가 달마 대사와 만나 질문했던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불교사의 흐름을 바꾸는 역사적 질문이었다. 위의 이야기는 네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공덕이 없다[無功德].
둘째, 참다운 공덕이란 무엇인가[如何是眞功德]?
셋째, 텅 비어 걸림이 없기에 
성스러움조차 없다[廓然無聖].
넷째, 모른다[不識].

불교사의 흐름을 바꾸는 역사적 질문과 답변은 세 번째와 네 번째다. 무제의 ‘최상의 성스러운 진리란 어떤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달마 대사가 ‘가장 성스러운 진리는 텅 비어 걸림이 없기에 성스러움조차 없다’고 답변하는 부분과 무제의 ‘성스러움조차 없다면 성스러움조차 없다는 것을 아는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달마 대사가 ‘모르겠소’라고 답변하는 부분이다.

‘최상의 성스러운 진리’는 성인이 진실로 깨달아 얻은 최상의 이치를 말한다. 무제는 왜 이런 질문을 한 걸까? 달마 대사를 만나기 전에 무제는 ‘최상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대상이 이미 관념화되어 ‘진리는 성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성스러운 진리’를 분별하는 인식은 ‘공덕과 공덕이 아닌 것’을 분별하고, ‘성인과 범부’를 분별하고, ‘깨달음과 번뇌’를 분별하는 작용으로 확장되어 무제의 가치관으로 고착되어 버렸다. 분별과 분절로 관념이 고정된 무제에게 “‘최상의 성스러운 진리’는 ‘진리’라는 관념, ‘성스럽다’는 관념조차 없는 것”이라는 달마 대사의 말은 상식을 초월하는 외계어였을 것이다. 그러나 달마 대사는 최대한 무제의 근기와 상황에 맞게 답변하며 최대의 자비심을 발휘한다. 달마 대사의 자비로운 답변에도 무제는 알지 못했고 달마 대사도 어찌할 수 없었다. 

달마 대사의 ‘최상의 성스러운 진리는 텅 비어 걸림이 없기에 성스러움조차 없다’는 구절과 ‘나는 모른다’는 구절은 후대의 조사들에 의해 자주 인용됐다. 실제로 6조 혜능 대사도 ‘모른다’는 구절을 사용하는데 그 말은 ‘어떤 것에 대해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진실한 실체[實]’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후대의 사람들이 ‘진실한 실체에 대해 근원적으로 모른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벽암록(碧巖錄)』에서는 “세상의 선 수행자 그 누구도 이 말(텅 비어 걸림이 없기에 성스러움조차 없다)의 굴레에서 훌쩍 벗어나지 못하자 달마가 단번에 칼을 휘둘러 두 토막을 내어주었던 것인데, 지금도 많은 사람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달마 대사가 휘두르는 칼날을 조심해야 한다.

 

범준 스님
운문사 강원 졸업. 사찰 및 불교대학 등에서 불자들을 대상으로 불교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봉은사 전임 강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