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신화] 수행자는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않는다

2020-09-04     동명 스님

 

|    육사외도를 찾아가지 않은 이유

선정수행을 해본 사람은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그는 마음의 오염원이고 통찰지를 무력하게 만드는 이들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놓아버림으로부터 비롯된,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1

색계(色界)의 네 단계 선정 중 초선에 대한 경전 말씀이다. 초선은 욕망의 세계를 떠났으나 물질적인 세계를 떠나 완전하게 정신적인 세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단계이다. 이 색계 초선이 본삼매(本三昧)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선정의 출발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오늘날 많은 수행자들이 몇 년을 수행해도 본삼매는커녕 근접삼매(近接三昧)조차 경험 못 한다.

이렇게 시작된 선정의 단계는 색계 2선, 3선, 4선을 거쳐, 물질적인 세계를 벗어난 무색계(無色界)의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그리고 상수멸진정(想受滅盡定)까지 도달하게 된다. 색계 4선의 단계를 지나 무색계 선정의 세계에 들어가기도 힘들진대, 무색계 선정의 최고단계인 무소유처나 비상비비상처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 싯다르타가 선정수행을 시작하자마자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등 최고의 경지에 단숨에 도달했다는 것은 가히 신화적이라는 것이 범부의 생각이다. 

붓다가 성도 전에 만난 스승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알라라 깔라마(ⓟĀḷāra Kālā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aka Rāmaputta)였다. 두 사람이 중요한 이유는 붓다가 훗날 강조하는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 중에서 정학(定學)에 관한 상당 부분이 이 두 스승에게 영향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가 출가했을 무렵에는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들이 큰 교단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른바 육사외도(六師外道)라고 불리는 여섯 개의 수행자 집단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싯다르타는 그 육사외도를 외면하고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를 찾아간다. 육사외도를 찾아가지 않은 이유도 사뭇 신화적이다. 밍군 사야도의 『대불전경』은 붓다의 전생인 보살이 91겁 전부터 외도의 실천 체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사해왔고, 그 결과 그들의 실천법이 매우 공허하다는 사실을 철저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육사외도에게는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2

 

|    알라라 깔라마와의 만남

알라라 깔라마는 무소유처정을 증득했고, 웃다까 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정을 수행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4선 4처 중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고 하겠다. 

대부분의 빠알리 경전에서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의 거처를 라자가하로 보고 있는 반면에 『불본행집경』은 알라라 깔라마의 거처를 베살리(바이샬리)로 설정하고 있으며, 조계종에서 펴낸 『부처님의 생애』에서도 알라라 깔라마의 거처를 베살리로 보고 있다.

싯다르타는 알라라 깔라마를 찾아가 요청했다. “존자여, 나도 당신의 실천 체계 속에서 수행하고 싶습니다.”

알라라가 말했다. “벗이여, 어서 오십시오. 슬기로운 수행자는 우리들의 체계 속에서 오래지 않아 큰 성취를 이룰 것이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싯다르타는 알라라의 수행 체계 속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알라라가 도달한 경지는 무색계 3선정인 무소유처정이었다. 감각적 지각의 대상인 색(色)은 공간으로 환원되었고[空無邊處], 공간이라는 대상은 의식으로 환원되었기 때문에 의식은 대상을 상실한다[識無邊處]. 따라서 대상이 없는 의식이 있을 수 없으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유로써 성취되는 선정이 무소유처정이다. 역시 신화에 따르면 싯다르타는 이미 수없이 많은 생 동안 선정을 닦아왔기 때문에 알라라 깔라마의 수행법을 듣고 실천하자 쉽게 무소유처정에 도달하게 되었다.

알라라 깔라마는 싯다르타의 성취를 확인하고는 몹시 기뻐하면서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당신은 스승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을 반으로 나누어서 나와 함께 제자들을 지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수행센터를 설립한 원장이 자신의 제자 중에서 자신이 성취한 바를 그대로 성취했다고 해서 센터를 공동으로 운영하자거나, 또는 반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알라라 깔라마가 인격적으로 성숙한 분이었음을 말해준다. 알라라 깔라마는 싯다르타를 극진히 우대하며, 후원자들이 가져오는 공양물도 싯다르타에게 먼저 주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무소유처로는 무색계 천상에 태어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신이 출가한 목적인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해결하는 길이 아니고, 따라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도 아님을 깨닫고는 곧 길을 떠났다.

라지기르(라자가하)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사람들과 안개 속에서 떠오르는 태양. 사진 원제 스님.

 

|    웃다까 라마뿟따와의 만남

이번에는 웃다까 라마뿟따라는 스승을 찾아갔다. 웃다까 라마뿟따는 무색계 4선정인 비상비비상처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라마가 비상비비상처를 증득했지만, 아버지 라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웃다까가 교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웃다까에게 청했다. “존자시여, 나는 당신의 실천 체계 속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웃다까는 쾌히 승낙했고, 그의 이론과 실천 체계를 배우기 시작했다. 보살은 출중한 지성을 갖추고 있었기에 쉽사리 웃다까의 이론과 실천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싯다르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웃다까의 아버지가 도달했던 비상비비상처정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확인한 웃다까는 싯다르타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위대한 분이시여, 나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라마가 증득한 경지를 당신도 증득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라마와 같습니다. 당신께서 이 교단을 맡아서 저희들을 지도해주십시오.”

웃다까 라마뿟따가 알라라 깔라마보다 더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은 싯다르타가 웃다까 라마뿟따의 경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제안을 하기는 쉽지 않다. 웃다까 역시 대단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비상비비상처 역시 좀 더 높은 단계의 무색계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는 있지만, 자신이 출가한 목적인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아니고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도 아님을 깨닫고는 곧 길을 떠났다.

 

|    안주하느냐, 돌진하느냐

만인의 스승인 붓다는 스승이 없다. 다만 출가하기 전이나 출가하여 성도하기 전의 수행과정에서만 스승을 만나게 된다. 그 스승이 바로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다. 그들이 대단히 훌륭한 자질을 소유자였기에 성도 후 붓다는 그 두 스승을 당신의 가르침을 베풀 첫 번째 제자로 떠올린다. 안타깝게도 두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고, 더욱이 무색계 천상에 태어나 오랜 수명을 누릴 것이기에 붓다를 만나는 것도 요원했다.

싯다르타가 두 스승을 만나 선정을 닦아 금방 성취한 이야기는 비교적 신화적이지 않다. 전생에 이미 온갖 바라밀을 닦아왔기 때문에 싯다르타가 그토록 쉽게 선정을 성취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선정수행을 경험한 범부의 입장에서 볼 때 싯다르타의 빠른 선정 성취는 신기하기만 하다.

위대한 능력의 소유자 싯다르타는 왜 쉬운 길을 버리고 그토록 어려운 길로 갔을까? 어차피 당신의 원력에 따라 어디에 계셨든 깨달음을 얻으실 게 분명한데도 최고의 수행 환경을 버리고 다시 길을 떠났다. 알라라 깔라마나 웃다까 라마뿟따의 제안을 수락하여 그들의 교단에서 열심히 수행해도 되지 않았을까? 영웅과 범인의 차이가 여기서 갈린다. 범인은 좋은 조건을 만나면 그 조건이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더라도 눌러앉지만, 영웅은 자신이 본래 추구했던 목표를 향해 다시 돌진한다. 영웅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지만, 붓다 같은 삶이 우리 수행자의 목표이기에 우리 또한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않으며, 좋은 조건에 만족하지 않는다.    

 

1 『앙굿따라 니까야』 「자기학대 경(Attantapa-sutta)」 『맛지마 니까야』 「깐다라까 경(Kandaraka-sutta)」」
2 밍군 사야도, 최봉수 옮김, 『대불전경(4)』 한언, 2009, 167쪽 참조.

 

동명 스님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지홍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았고, 2015년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후 구족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북한산 중흥사에서 살고 있다. 출가 전 펴낸 책으로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