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의 일상다담] 현진 스님, 등에 짊어진 돌멩이의 무게

2020-09-03     최호승
청주 마야사 현진 스님
이두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0년 사미계를 1988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포교국장, 법주사 수련원장, 청주 관음사 주지, 월간 「해인」 편집위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삭발하는 날』, 『행복은 지금 여기에』,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 『꽃을 사랑한다』 등 여러 책을 냈다.

점점 더 멀어져갔다. 비는 흙을 외면했다. 계절이 가물었다. 장마에도 비는 짧고 굵게 내리고 떠났다. 흙의 기다림은 마른 먼지만 일으켰다.

청주 마야사로 향하는 날은 촉촉했다. 새벽까지 흙은 충분히 갈증을 풀었다. 감로수랄까? 단비였다. 5개월 전 인연의 목마름을 해결했다. 삼척 천은사 포행길을 비와 동행했던 동은 스님의 도반이 마야사에 있어서다. 청주에 있는 동은 스님의 도반을 찾아온 길에 비가 동행했다. 동은 스님의 도반이 가꿔 놓은 마야사 정원에 세 들어 사는 초목도 밤새 목을 축였다. 

시인 정호승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다.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라’고 했다. 비가 물러가고 금세 따가운 햇볕이 내려왔다. 대웅전 처마 끝 풍경이 전하는 바람 소식을 초인종 삼고, 동은 스님의 그리움과 함께 마야사 정원에 들었다. 

사진. 유동영

 

| 눈 어두워서 별이 보인다

현진 스님은 흙이 좋다. 채마밭(채소 심는 밭)이던 이곳에 터를 잡고, 2012년 5월 산문을 열었다. 도량 구석구석 스님의 손길이 닿았다. 대웅전 옆 샛길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의 룸비니 동산, 탑, 갖가지 나무와 꽃, 앞마당 잔디, 주차장에서 정원에 오르는 길에 쌓은 탑이 다 스님의 정성이다. 

스님은 절 이름을 마야사로 정했다. 중생이 아프고 힘들면 토닥이는 포근하고 넉넉한 어머니의 품 같은 절을 상상했다. 그래서 부처님 낳은 마야부인의 이름을 빌려왔다. 한국에 마야사라는 절 이름이 드물어 홍보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며 스님이 웃는다. 

“나이 50이 넘어가니 흙이 좋아졌어요. 신경림 시인이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고 했는데, 그런 나이 즈음에 이곳에 왔습니다. 눈 밝고 기운이 넘쳐 바빠서 여유가 없어 하늘도 못 보고 별을 지나쳤던 시기를 지나서 나이 들어 눈 침침해지고 귀가 어두워지는 그럴 때요. 흙 만지고 꽃 가꾸는 일이 참 즐겁습니다.”

스님은 흙에서 위로받고 명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단다. 스님 말처럼 우리의 손은 종일 흙을 만지는 시간이 거의 없다. 컴퓨터 자판이나 스마트폰 등 공산품에 손을 대고 눈 뜨고 잠든다. 스님이 “마음도 일회용품처럼 상품화 될 수 있다”며 “나를 들여다볼 시간도 없이 하루를 업무 처리하듯 보낸다”고 안타까워했다. 스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생명력이 다른 흙의 무한한 생명력을 느낀다. 

“흙을 자주 만지는 사람일수록 거룩한 모성애가 생깁니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자비심이죠. 그게 충만해져요. 호미 들고 흙을 손으로 많이 만지는 사람은 평화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흙의 거룩한 법문이자 위안입니다.”

 

| ‘풀코스’ 후 설빙 아닌 절빙

사람들이 ‘반농반선(半農半禪, 반은 농사짓고 반은 수행한다)의 수행자’라고 부르는 일을 스님은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반은 흙을 만지고 반은 명상하는 하루하루가 모여 생긴 별칭이다. 사실 말이 좋아 반농반선이지, 스님은 여름이면 태양을 피하며 풀과 씨름한다. 잠깐 게을러지면 온통 풀이 무성하다. 작물을 심어 둔 텃밭은 수시로 찾아가야 한다.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라는 게 작물이니까. 

“고추가 한창 익고 가지와 오이가 달릴 시기예요. 작은 밭을 만들어 심었는데 자주 가죠. 이 아이들이 얼마나 컸나 지켜보는 게 큰 즐거움입니다. 농사짓지 않는 사람은 모르는 재미예요. 하지만 수시로 안 가면 다 풀밭입니다. 풀 뽑고 있으면 종일 그냥 ‘풀코스’예요(웃음).”

그럴듯했다. 정원 여기저기를 다니며 풀 뽑는 일로 하루를 쓰니 ‘풀코스’다. 스님의 작명 센스가 돋보였다. 새벽에 마야사 정원 초목들도 목을 축였다는데…. 스님이 마야카페로 안내했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날 무렵이었다. 스님은 곁에 있는 상대의 마음을 잘 읽었다. 

마야카페는 마야사 주차장 바로 옆에 있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길도 마야사 정원처럼 정갈했다. 카페 인테리어도 과하지 않았다. 곳곳에 배치된 불서와 불교 관련 소품, 창밖 풍경이 카페를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매일 삶은 팥으로 만든 팥빙수로 더위를 식혔다. 

“‘풀코스’ 후에 먹는 ‘절빙(절에서 먹는 팥빙수)’ 맛이 어떤가요? ‘설빙’이 인기던데, 여긴 ‘절빙’입니다. 하하하.”

현진 스님은 매일 손으로 흙을 만지며 그 생명력을 명상한다.

| 비우니 채우고 채우니 비우고

마야카페서 내려다보는 마야사 정원은 아름다웠다. 사람은 때론 사소한 것으로 감동한다. 이른 아침 절 마당의 가지런한 빗질 자국이 누군가에겐 그 절의 첫인상이 된다. 도량에서 정진하는 수행자의 울력과 부지런함을 떠올릴 수도 있다. 첫인상은 도량에 머무는 내내 좋은 느낌을 준다. 마야사 정원이 그랬다. 이른 새벽에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어수선하지 않았다. 스님이 오전부터 부러진 나뭇가지와 떨어진 꽃잎을 치웠단다. 

“끊임없이 질서를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 수행에서도 일상에서도 중요합니다. 반복이죠. 선풍기가 어떻게 바람을 일으키나요. 반복적인 회전입니다. 기도나 수행도 반복이 힘을 만들어요. 정결하게 정리된 공간은 우리 마음 질서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 그 공간이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마야사 정원이 어머니 품처럼 치유의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지요.”

스님은 여백의 연출을 강조했다. 텅 빈 공간이 건네는 위로 때문이다. 가득 찬 공간에 선 존재는 주인공 되기가 어렵다. 여백이 주는 텅 빈 공간에 있는 존재는 온전히 주인공으로 설 수 있다고. 비었기에 채울 수 있고, 채웠기에 비울 수 있다는 공(空)의 법문을 마야사 정원에 연출했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정원은 훌륭한 공연예술이란 말이 떠올랐다. 

 

| 꽃도 순서대로 핀다

“꽃이 금방 핀 것처럼 보이나요? 아닙니다. 저기에 태풍 몇 개, 벼락 몇 개, 비바람 몇 개, 많은 시련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꽃 한 송이 피는 일도 그처럼 힘든데, 사람 사는 역사가 어찌 조용하기만 하고 내 뜻대로만 될까요.” 

스님은 “꽃도 순서대로 핀다”고 했다. 맞다. 온갖 꽃이 한 순간에 피거나 지지 않는다.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가 피고 지는 계절이 다 달라서라는 스님 말씀을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나 일찍 성공해서 자리 잡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지 않을까. 빙긋, 스님이 인자하게 미소지었다. 

“꽃이 언제 피느냐보다 어떻게 피고 지느냐가 중요합니다. 봄에 폈는데 활짝 피지 못하는 꽃은 문제가 있죠. 인생도 언제 성공하느냐보다 얼마나 행복하게 살다 가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현진 스님도 고민이 있나요?”라고 불쑥 물었다. 스님은 한 일화를 들려줬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강을 건널 때 등에 돌멩이를 짊어진다고 한다. 수심 깊고 물살이 센 강의 중간에서 이르렀을 때 몸이 가벼우면 물에 빠질 위험이 있어서다. 돌의 무게로 균형을 잡으라는 것이다. 

“적당한 고민은 인생의 무게 중심을 잡아 주고 활력 있게 살게 하는 즐거운 변수입니다. 너무 무거우면 앞으로 갈 수 없겠죠? 감당할 수 없는 욕심으로 삶이 피곤하거나 지치면 지나친 욕심이 고민을 무겁게 했다는 사실을 알아채야 합니다.”

거닐고 거닐어도 사유의 깊이와 넓이만 확인할 뿐이었다. 스님의 마음 정원에는 어떤 꽃이 피었을까. 답은 간결했다. 친절과 미소다. 불교를 드러내는 지혜와 자비, 지혜는 친절로 자비는 미소로 풀어써야 한단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음 정원을 가꾸려면 스스로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내야 한다고 스님은 강조했다. 우리는 마음 정원에 무슨 꽃을 피워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