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자유화

지혜의 뜰, 삶의 여성학

2007-09-16     관리자

얼마 전 책방에 들렀다가 '전생여행'이라는 책 제복에 눈길이 닿게 되어 한 권 샀다. 불교에서 인과보응의 법칙과 더불어 윤회를 믿고 있는 터이기도 하지만 여성학을 하면서 윤회설에 관해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흔히 여성 지신을 포함하여 이 생에 여자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은 때문이고 그 업보로 구속스럽고 고달프기 짝이 없는 여지팔자를 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앙태도를 가진 사람들의 의식속에는 남자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은 강급이고 여자가 남자로 태어나는 것은 진급이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최면술로서 전생퇴행기법을 통해 20대의 한 남자로 하여금 10여 회에 걸친 자신의 전생을 보게 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한 영혼은 보다 높은 수준의 영적인 공부를 위해 남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다시 여자로 환생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즉 육체와 환경은 영혼의 수행을 돕기 위한 도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딱히 전생에 지은 죄업이 커서 그 죄 값을 하느라고 여자로 태어난다라는 설명이나 영혼이 강급되면 여자가 된다고 하는 것 등은 '여성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남성의 눈으로 본 해석이란 인상이 짙다.
이렇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편리한 대로 여성들에게 뒤집어 씌워 놓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자가 외도를 하면 로맨스가 되고 여자가 행여 동창이든 선후배 간이든 남자를 만나는 것은 탈선이고 죽을 죄가 된다. 옛날 할머니들은 얼굴을 외간남자에게 보이면 안 된다고 해서 외출할 때 쓰개치마를 쓰고 눈만 겨우 내놓고 다닌 적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자 특히 젊은 여자의 바깥출입을 금기시하던 때도 있었다. 이슬람권 여성들의 구속스런 여자살이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여성사에도 있는 이야기다.
여성들이 집밖 출입이 수군거림의 대상에서 벗어나 예사로운 것으로 생각된 것이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다. 지금도 주부들이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이지만 몸의 이동에 자유가 없었다. 지금도 여성들이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유가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여자와 그릇은 밖으로 돌리면 깨지기 쉽다.'는 일방적이고 비합리적인 속담이 여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또한 주부는 일차적으로 집안 일을 하면서 집안에 붙박이로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도 많고 남편들도 많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남편을 포함한 가족들이 여성들의 밤 외출과 여행으로 대표되는 집밖 숙박을 얼른 동의하지 못하는 데에는 '세상이 무섭다.'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금기로 되어 있던 친정집외 집밖 수박이 가능해진 것은 최근 여가 붐을 타고 짓기 시작한 가족호텔-콘도 덕택이다. 여성들이 친구끼리의 여행이 용이해진 것도 가족적인 분위기를 지닌 콘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콘도가 관광지에 위치하고 있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족을 위한 콘도에는 여고생들부터 70대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여자들끼리, 친구, 친척끼리 팀으로 여행을 와서 쉬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주부들이 친구들과 함께 온 경우가 눈에 뜨이게 많다. 콘도에 간다고 하면 첫째 가족들이 '안심을 하고 남편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둔다는 것이다.
동시에 주부들도 여관이나 호텔이 주는 이상한 느낌이나 눈길에서 벗어나 누구로부터 의심받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한 자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집밖 숙박이 주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 콘도에 오는 사람들이 가족단위일 뿐만 아니라 어린이에서부터 대학생,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양한 세대층이 함께 어울려 있어 사뭇 집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때문에 혹시 비밀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아는 얼굴 만날 가능성이 있는 콘도 근처에 얼씬거릴 것 같지도 않다.
이처럼 콘도가 가지고 있는 '누이좋고 매부 좋은'식의 기능은 종교가 여성들의 집밖 출입에 떳떳한 이유를 제공하여 숨통을 트이게 했던 것처럼 제한적이나마 여성들의 여행 자유화의 길을 트는데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콘도라는 징검다리가 없었다면 살뜰한 친구들과 여행을 즐기면 신록이 어우러진 청산을 언제 때맞추어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을까 싶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