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상담실] 수보리의 눈물

지혜의 뜰, 열린 상담실

2007-09-16     관리자

정신과의사 노릇을 한 지가 이제 겨우 10년을 넘었다.

정작 정신과의사가 되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 1975년도였으니까, 그때로부터 따진다면 어언 20년의 세월이 흐른 셈이다.

짧다면 짧은 세월이겠지만, 그동안 나름대로 많은 시련도 있었고 성장도 있었다.

동시에 많은 방황을 한 것도 사실이다. .

더러 사람들이 정신과의사 노릇하기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올 때가 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되물어보면 "정신과의사들은 무엇인가 이상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정신이 돈 사람들과 같아 생활을 해서 그런지 의사들도 약간 돈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을 한다.

그러면서, 말끝에는 "선생님은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지만...."하고 사족을 단다.

'선생님은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다.'는 말에 너무 힘을 주어서 말을 하니까, 나도 더러는 걱정이 되어서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곰곰이 살펴보기도 한다. 10년 동안 나는 과연 어떻게 변했나? 얼굴은 이마에 내 천(川)자의 깊이가 더 뚜렷해진 것 외에는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마음 심(心)자를 얼굴에 샛길 수 있다면 말할 수 없는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환자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가장 큰 듯싶다. .

처음 정신과의사가 되어서는 심한 환자를 보면 일반인들처럼 자연히 '돌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참 안 되었구나! 라고 느꼈고 어떻게 해서든지 고쳐주어야지 라고 다짐을 했었다.

말하자면 환자는 무었인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니까 내가 치료를 해주어야 할 대상(對象)으로 바라보았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자연히 환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우월감을 가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환자를 치료해가면 갈수록 그것은 내가 가진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이 나보다도 몇 배 더 훌륭하고 좋은 점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는 환자가 스승이고 내가 그들에게 배우는 제자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될 정도였다. 
사실 정신이 돈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은 표현이 달라서 그렇지, 그의 티끌 하나만큼의 차이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는 아무리 정신이 돈 사람도 이 티끌 하나를 해결하면 금방 멀쩡해질 수가 있는 반면에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이 티끌 하나에 걸리게 되면 순식간에 정신병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 티끌은 마음속의 티끌을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내가 처와 결혼을 하게 된 데는 정말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 자신도 의과대학을 다닐 때에 돌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났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멀쩡하던 의과대학생이 실연(失戀) 때문에 돌아서 학교는 휴학을 하고, 매일 도서관에 앉아서 먼 산을 뚫어지게 쳐다본다거나 책을 거꾸로 놓고 읽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소문은 인근의 여대생 기숙사에까지 불어 붙듯이 쉽게 번졌다. 

급기야는 이 사실을 전해들은 여대생들이 실제로 현장을 목격하기위해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내려왔는데, 그 가운데에는 지금의 나의 처도 섞여 있었던 것이다. .

내 처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 당시의 나의 모습이 하고 측은해 보여서 기숙사에 돌아가서 하나님께 불쌍한 영혼을 구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까지 하였다고 한다.(그 당시 나의 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나로서는 다 이유가 있어서 한 행동이었지만, 어쨌든 실연(失戀)이라는 티끌에 걸린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
그러나, 그때의 그런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서 나중에 환자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좋은 아내와 친구를 얻는 기쁨까지 얻었으니까,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 다음의 변화를 들자면, 처음에는 외국의 유명한 정신과의사야말로 가장 뛰어난 정신과의사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들이 '프로이드'나 '융'과 같은 분들이었으며, 특히 프로이드의 제자인 '칼 메닝거' 라는 분의 책을 읽고는 너무나 감명을 받은 나머지 미국의 캔서스 주에 있는 그의 연구소에 유학을 갈 결심을 굳히기도 하였다.

몇 년 전에는 칼 메닝거가 90세가 넘는 고령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른다. .
그러나 그 후에도 칼 메닝거는 내가 되어야 할 정신과의사의 표상(表象)과 같은 존재가 되어서 늘 그를 닮고자 노력을 해왔었다. 

그런데 10년이 넘은 세월이 흐른 다음에 내가 가장 존경하는 최고의 정신과의사는 어느덧 프로이드나 칼 메닝거에서 부처님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흔히 정신과 교과서에는 인간의 무의식을 최초로 언급한 사람을 프로이드라고 말한다.
나도 지금까지는 그것을 사실로 믿고 프로이드를 위대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불경(佛經)을 잘 살펴보면 그것은 당연히 수정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프로이드는 인간의 마음을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잠재의식의 세 가지로 나누었는 데 비해서 부처님은 이미 2500여 년 전에 전5식에 제 8 아뢰야식까지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깊이와 방대함에 있어서 어찌 프로이드나 융과 비교가 될 수 있겠는가.

흔히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은 불안이나 공포를호소할 때가 많다. 나는 환자분이 불교에 관심이 있는 경우는 꼭 반야심경에 나오는한 구절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준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공포도 없게 되어 되집힌 꿈과 같은 망상을 멀리 여윈다)라는 구절이다.
마음에 걸리는 티끌을 해결하기만 하면 불안이고 공포고 모든 것이 사라져서 그동안 자신이 거꾸로 보고 있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노이로제나 정신병의 원인과 해결책을 잘 설명해 놓은 교과서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나는 아무리 정신적인 문제나 고민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한 구절의 의미만 바로 깨달아서 실천할 수있다면 어떤 병이라도금방 나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금강경}을 보면 장로 수보리는 부처님께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 깊은 뜻을 깨달아서 "희유하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말하면서 감격의 눈문을 흘렸다.

수보리가 2500여 년전에 느꼈던 그 전율과도 같은 큰 기쁨에 이르는 길이 마음의 눈을 뜨기만 하면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 앞에 그대로 열려 있는 것이다 .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생호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